고등학교 때. 새옹지마라는 말을 들었다. 좋은 일은 나쁘기도 하고. 나쁜 일은 좋기도 한. 알쏭달쏭했던 이야기. 그때 당시에도 지금도 잘 믿기지 않지만. 경험할 수록 사실이란 생각이 든다. 먼저 우리는 오늘 일어난 일에 대해서 기뻐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한다. 그런데 과연 알고 울거나 웃는 것일까?
나는 IMF 라는 가정형편에 치명타를 입었다. 그러나 새로 이사오게 된 동네에서 운명의 친구, 스승, 아내까지 모두 얻었다. 그로 인해서 외로움을 느끼지 않아도 될 정도로 분에 넘치는 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엔 몰랐다. 단지 경제적 어려움이 내 인생의 비극인줄 알았으나 결국 그때의 눈물은 허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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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매일이 눈 앞의 일에 웃고 우는 우리의 인생. 그런데 과연 그게 나에게 득이 되는 일일까? 내가 수십년 동안 살아오면서 기쁜 일인줄 알았던 것이 나에게 현재도 기쁨을 주고 있을까? 다 해결될 줄 알았고 기대했던 일들은 해결되었을까?
단지 내 기분에 의해서 해석이 되었을 뿐. 그저 흘러가는 대로 흘러왔을 뿐이란 생각이 든다. 기분이 좋고 나쁘다. 이게 정말 중요한줄 알았고. 그래서 내 기분이 늘 행복에 넘치길 기도했지만. 울고 웃는 것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정말 그 일은 나에게 슬픈 일이었을까?
그때 당시엔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너무 슬픔에 잠겨서 여러가지 대단한 기회를 놓친 적도 많다. 반대로 너무 기쁜 나머지 눈에 보이는 것이 없어서 다가올 위기가 코 앞에 와도 몰랐고. 완전히 박살이 나 가루가 되었을 때 깨닫게 된다.
결국.
멀리 보면 볼 수록. 좀 시야가 트인다. 큰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큰 시야가 필요하다. 긴 시간도 필요하다. 빵이 구워지는 동안 기포 하나가 올라왔다고 해서 완성된 빵이 기포 투성이가 되는건 아니다. 기포가 올라오다가 터져버려서 흔적도 없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미리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이다.
그렇다면 대비없이 살면 될까? 그냥 방 바닥에 누워 지내면 될까? 이런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스스로 알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왜 그런 질문을 할까. 어차피 사람은 가만히 있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완성된 그림에 쓸데 없는 점 하나 찍는게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잉 준비 중이다.
오늘의 실패는 명예의 훈장이다. 누군가 알아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나중에 어떻게 적용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게 5년뒤 10년뒤. 30년 뒤가 될지 모른다. 그렇다고 먼 미래를 생각하며 30년 뒤에 일어날 일에 대해 오늘 행동을 의미 부여하기엔 사람의 생이 너무 짧다. 그러니 그냥 그런 생각 자체를 안하고 그것을 하는 것에 웃는 편이 낫다. 차라리 바보가 되는것이 낫다. 30년치 변수를 계산한다고 생각해보자. 3년뒤 인생도 모른데 30년이 왠말일까.
과거, 현재, 미래는 결국 하나다.
오늘 너무 힘든 일이 있다고 해도. 과거와 연관지어 후회하게 되면 스스로가 너무 힘들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어찌나 시간이 빨리 가는지. 그런 생각이 떠오르면 그날 잠은 다 잔 것이나 마찬가지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현재와 같은 것이다. 미래가 다가오게 되고 내가 그자리에 있으면 어차피 현재다. 현재 눈을 뜨고 보면 다 뻔하다. 내가 밥을 먹고 있거나, 일을 하거나, 누군가를 만나거나 쉬고 있거나. 정말 두려움에 떨 정도로 전쟁터에서 목숨하나 붙들고 떨고 있을 일은 과연 얼마나 될까. 거의 없다. 그럼에도 사소한 현재에 불과할 미래를 그렇게 우린 두려워 하고 있다.
과거가 현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맞는 일이다. 그러나 과거는 생각으로 기억이 보존될 뿐이지. 이미 다 지나가 버렸다. 30년전 아이스크림이 50원이었다고 해서. 지금 슈퍼에 가서 50원에 달라고 해보자. 상대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과거는 그런 것이다. 내 상상 속에서 생생할 뿐이지. 실제로는 30년전 아이스크림 가격 처럼 비현실적인 일들이다.
오늘 일어난 일을 누군가 심각하게만 여긴다면.
그냥 웃고 넘기자.
어차피 둘중 하나다.
1. 내가 까먹거나
2. 미래에 좋은 일로 바뀌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