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인생을 대신 사는 것 같은 기분.
어제 장인어른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60대이신 장인어른께서는 종종 저와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곤 하십니다. 알고 보니 저와 장인어른의 고민은 '삶' 이었습니다. 문득 대화를 나누면서 생각이 들었습니다.
삶을 뒤돌아 보니 내 인생이 아닌
남의 인생을 대신 살았던 것 같다.
어린 시절에는 누군가의 아들로 살아갑니다. 학교에 들어가면 몇 학년 몇 반 어떤 선생님의 학생이 됩니다. 누군가의 친구로 삽니다. 동아리에서는 동아리의 일원으로 살게 됩니다. 학생회를 할 때는 학교에 소속되어 학교를 위해 일하는 것에 삶을 바칩니다. 그러다가 군대를 갑니다. 군대에서는 제 삶의 모든 것을 통제받았습니다. 군대 제대를 하게 되면 무언가 달라질 줄 알았는데. 이렇게 무언가가 제 인생의 길을 정해버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삶의 주인은 제 자신이라는 점이니다. 저는 '김준태' 자신이고. 제 삶에 대한 책임은 제가 스스로 지게 됩니다. 말은 이렇지만 실상 살다 보면 이렇게 되지 않을 때가 대부분입니다. 그렇게 쳇바퀴가 돌듯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새 머리가 하얗게 되는 세월은 분명 오게 됩니다.
대학원을 졸업하면서 더 이상 남의 인생을 산다는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참여했던 조직의 수를 줄이고 사람을 만나는 횟수를 줄였습니다. 시간이 많아지기 시작하자 저 자신을 스스로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것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삶이었습니다.
누군가가 요구하는대로 살다 보면. 분명 그것은 제 삶의 일부를 상대방에게 주는 것과 같습니다. 시간이 될 수도 있고. 노동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누는 것은 제 삶이 온전할 때 더 풍요로울 수 있습니다.
제 삶이 퍽퍽하면. 나눌 수 있는 것도 거의 없습니다. 만약 오늘 당장 죽을 것처럼 힘든 상황에서 무리하게 나눈다면. 바로 번아웃 현상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뒤돌아 보면 인생은 번아웃의 연속이었습니다. 그 연결고리를 끊고 싶어서 개인 시간을 늘려보고 있습니다.
아내와 저는 이야기를 나눕니다. 우리 둘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서로 자신부터 행복해야 한다고. 그래서 한 명은 원하지만. 한 명이 원하지 않는 일은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각자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각자 하기도 하고. 함께 할 수 있으면 그것은 보너스처럼 누리는 삶을 살기로 말이죠.
나라에 충성하고, 조직에 순응하며. 가족에게 무한 희생했던 우리 삶을 떠나 개인이 행복한 삶. 이 삶은 어쩌면 낯설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개인이 행복하면 그 행복은 분명 옆의 사람에게 퍼지고. 모두에게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이 행복한 삶이라고 하면 왠지 이기적인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개인이 없으면 조직도 없고 조직이 없으면 나라도 없습니다.
이젠 우리 개개인이 행복할 차례이고. 그 행복을 나눌 때입니다. 그것이 진정 모두가 행복한 세상의 초석이 되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