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서/ 배종관

by 이광

초서

배종관

태초의 강을 건너

새 한 마리 날아가고


글이 된 짐승들은

해독이 어려웠다


아득한

상형의 피가

화선지에 흐른다.



시인은 초서체로 쓴 서예 작품을 감상하고 있습니다. 초서란 글자를 간략하고 빠르게 흘려 쓰는 서체이지요. 사람마다 개성을 발휘할 여지가 많은 초서는 문자가 지닌 실용성을 넘어서서 예술의 영역으로 나아가는 교량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세상 만물은 자연에서 비롯됩니다. 한자와 같은 글자 또한 자연을 모방하는 과정에서 그림으로 출발하여 상형문자의 형태를 갖추며 생기게 된 것이죠. 초서체를 바라보며 시인의 상상은 ‘태초의 강’에 가 닿습니다. 강과 함께 강을 건너 날아가는 새 한 마리가 글자의 첫걸음이 되어주고 날개를 달아주었을 것입니다. 서예 작품 속 ‘글이 된 짐승들’을 살펴보면 알 만한 모습이 보이는가 하면 전혀 짐작이 가지 않는 모습도 존재하지요. 해독은 어려웠지만 시인은 한 폭 화선지에서 원시의 생명력이 숨 쉬는 ‘아득한//상형의 피’를 느낍니다.


글자는 세상 만물을 구분하며 그 의미를 기록하는 역할로 문명을 이끌었습니다. 그 기록의 심미적인 행위가 서예라면 이를 마음의 화선지에 옮겨 적는 작업이 시작 행위일 것입니다. 둘 다 붓으로 행하던 시절에는 시와 서예는 한 뿌리인 그림과 더불어 아주 밀접한 사이였지요. 하지만 요즘 시인들은 거의가 자판을 두드립니다. 그래도 그 가슴에는 여전히 상형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