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람
조경선
한 번쯤 사람으로
살았으면
됐지 뭐
한 번쯤 눈에 띄는 곳
서봤으면
됐지 뭐
한 번쯤 자리 지키다가
녹았으면
됐지 뭐
이 작품을 읽으며 최승호 시인의 ‘눈사람 자살 사건’이 생각났습니다. ‘눈사람 자살 사건’은 말 그대로 눈사람의 자살을 다루고 있는데 읽는 사람마저 무력감에 잠기게 하더군요. 작품의 기조가 쓸쓸하여 그랬을 것입니다. 조경선 시인의 눈사람 또한 죽음을 앞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잔잔한 미소로 마음을 포근히 감싸주던 눈사람이 눈 쌓이듯 눈 녹듯 살아가는 우리 생을 다독여주는 느낌입니다.
초장을 보면 ‘한 번쯤 사람으로/살았으면/됐’다는 눈사람의 자기성찰이 담겨 있습니다. 헛된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고 사람답게 살았다고 자부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중장의 ‘한 번쯤 눈에 띄는 곳/서 봤’다는 건 열심히 살아 주목받은 사실을 추억하며 그 시간을 음미하는 모습입니다. 종장에서는 마치 달관의 경지에 이른 듯 자리를 지키는 역할을 다하고 조용히 물러나는 누군가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하는군요. 종말에 연연하지 않는 초연함이 돋보입니다.
독자는 눈사람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집니다. 시인 또한 눈사람을 바라보며 묵상의 시간을 가졌기에 이런 시가 빚어진 것이겠죠. 눈사람의 짧은 생애도 그만의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가 떠난 자리에 동그랗게 고인 눈물이 사람의 발끝을 촉촉이 적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