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한 2024 연말을 마무리하며
12월 31일, 어느 때보다 특별하게 아껴지는 이 날.
내면 깊숙하게 던져진 질문과 결이 비슷한 이야기를 찾아 펼쳐본다.
섬세한 통찰력이 담긴 인스타툰, @punj_toon
한 해를 마무리하며, 조금은 어수선할 수 있는 요즘을 정리하고자 이 콘텐츠를 다시 찾았다.
(출처: https://www.instagram.com/p/DDQ-jOAPAzX/?igsh=MXN6dmx4dnY2OXN6dQ==)
'이기적'이라는 말은 어쩐지 나쁘게 들리지만, 인간은 원래 이기적인 존재야.
'나'의 안녕과 평화, 그리고 이익을 본능적으로 좇지.
그런데 그거 알아?
사람마다, 성숙도에 따라 '나'의 범주가 달라져.
사랑하는 이를 만나면서 '나'의 범위가 커질 수 있어.
그래서 지극히 사랑하는 애인을 '자기'라고 부르기도 하잖아.
자아가 좀 더 큰 사람에게는
'나라'가 '나'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고,
어렵고 외로운 이들이 '나'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겠지.
(세종대왕님의 애민정신, 독립투사들의 애국정신)
나아가 인류, 지구상의 생명체들까지 품어볼 수 있을 정도로
'나'가 큰 사람이 있고
내가 사랑하는 이나 내 아이, 심지어 자기 자신조차 '나' 안에 포함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
그래서 어떤 사람의 행동이나 생각이 이해가 가지 않으면
그 사람의 '나'가 어디까지인지를 보면 이해는 할 수 있게 된다.
본질적으로 이기적인 존재인 인간에게 '공감능력'은 어떠한 용도로 주어졌을까.
인간이 600만 년 전 직립보행을 시작한 후, 농업을 시작하며 본격적인 사회화가 시작된 시기는 고작 ‘1만 년’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우리의 뇌가 현시대에 맞추어 빠른 변화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뇌는 아직 600만 년 전의 생존을 위한 수단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고 한다.
600만 년 전 인간의 뇌는 ‘생존’과 ‘종족번식’이 주를 이루었다. 생존을 위해 유리한 선택을 반복했을 것이고, 그 선택은 뇌에 600만 년 동안 꾸준히 기록되었으리라.
공감 능력; 대상을 알고 이해하거나, 대상이 느끼는 상황 또는 기분을 비슷하게 경험하는 심적 현상
그렇다면 ‘공감능력’은 어떻게 현대의 우리에게 잔존해 있을까.
이 또한 생존을 위한 선택을 무한히 반복한 ‘인간’, 즉 우리가 살아남기 위한 능력 중 하나로 꾸준히 작동해 왔을 것이다.
(때때로 이기적인 선택을 할 때면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라는 이야기가 자주 따라붙는다)
우리는 혼자서 살아갈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 사실을 인정하면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단순해진다.
어차피 이기적인 존재인 우리는 굳이 그 이상의 이기적인 선택을 해나갈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우리의 존재가 세상에 날 것으로 던져졌을 때, 우리는 서로 돕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다.
그 과정에서 ‘필요’에 의해 상대를 돕기 시작했고, 나의 도움은 또다시 나를 위한 도움으로 돌아왔다. 이 과정이 반복되며 인간은 나와 다른 타인을 상대할 때도 무의식적인 공감이 자리했으리라 생각한다.
몇백만 년 전의 인간과 현대를 사는 우리는 별 다를 게 없다. 살아남기 위한 하루를 사는 사람이 많다. 삶의 반대를 선택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 또한 그의 반증이다.
다시 말하지만 사람은 절대 혼자 살아남을 수 없다. 상대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과정은 결국 나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내가 나눈 마음이 척일지라도
언젠가 찾아올 나의 슬픔 또한 이렇게 위로받기를 바라며 잠시나마 기도한다
길었던 2024년도 한해도 이렇게 흘러간다.
많이 울고 웃었던 1년이라는 시간이 다시금 뿌리를 내리고, 새로운 시간이 그 위에 씨앗을 심는다.
앞으로 펼쳐질 하루하루는 이 세상 그 누구도 살아본 적 없는 새로운 날들의 연속이다.
너무나 당연할지 모르지만, 불가항력적인 힘든 나날이 평생 우리를 괴롭힐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굳이‘ 사랑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서하며 살아가자.
인생은 단거리가 아니라 장거리 경주임을 잊지 말고, 미래의 내가 감사를 건넬 수 있는 선택을 미루지 말자.
모두 각자 나름의 건강과 온기가 가득한 연말 보내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