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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건강을 꼭 챙겨야 해요?

눈에 보이지 않는게 가장 무섭다

by lay

살다 보면 그만 들어도 되겠다 싶은 지겨운 말들이 몇 있다.

그중 대표적인 말은 '건강이 최고'라는 말이 아닐까 싶다. 몸의 건강이든 마음의 건강이든, 건강과 관련된 말들은 왜 이렇게 잔소리처럼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공부 열심히 해야 좋은 대학 간다는 선생님의 잔소리, 편식 안 해야 키 큰다는 엄마의 잔소리에 "나도 다 알고 있다고요!" 하는 대답이 나오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지 않을까.

우리의 마음이 괴로운 건, '아는 것'보다 '하는 것'이 어렵고, 그 과정을 이겨내지 못하는 나를 마주하고 싶지 않기 때문일 테다.


나 또한 평생 '건강'과는 먼 생활을 해왔고(자랑이 아니지만, 누구보다 건강하지 않은 삶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당연하게 건네지는 건강 관련한 이야기를 모두 잔소리처럼 쳐냈다.


(과거의) 나를 포함한 세상의 절반 이상의 사람들이 건강이 중요한 것을 '알기만'하지, 실천으로 옮기지 못한다. 원래 눈에 보이는 것이 가장 쉬운 법이다. 겉으로 드러난 염증 치료는 쉬워도, 속에서 곪은 염증은 알아차리기가 어려운 것 처럼 말이다. 근육 또한 그렇다. 겉의 근육을 키우는 데만 집중하지, 대다수가 속근육엔 관심을 기울이지 않지 않는다.


우리 몸은 하루하루 늙어간다. 어제보다 오늘 더 소진된다. 오늘 무언가 하지 않아도 내일을 보내는데엔 큰 차이가 없다. 그 하루와 하루가 쌓여 일년이 지나는 것을 간과하고, 당장 오늘의 편안함에만 집중하고 있진 않은지 부디 스스로에게 질문할 필요가 있다.



부끄럽지만 채소 편식을 고친 지 아직 1년도 채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자연스레 평생 채소를 편식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햄버거를 먹을 땐 양상추와 양파, 피클은 쏙 빼고 밀가루빵과 패티만 골라 먹었고, 친구들은 빵 사이에 패티 하나만 들어간 햄버거를 보고 '마카롱'처럼 생겼다고 별명을 지어주었다. 고기를 구워 먹어도 정말 고기와 밥만 먹었고, 평생 샐러드를 입에 댄 적도 없었다.

얼마나 심각했느냐 하면, 김밥이나 볶음밥에 있는 야채도 보는 눈이 없다면 골라먹을 때가 많았다. 나 그래도 어른인데... 써놓고 보니 굉장히 부끄럽다.


그땐 지금보다 젊었으니 건강에 큰 이상은 없는 듯했다. 그래서 친구들과 어른들의 걱정이 나에겐 잔소리였다. '채소를 잘 먹어야 건강에 좋은데..' 하는 말에 노이로제가 생겼고 '그건 나도 알아' 하며 당연한 말은 안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생각만 하면 좋았을 텐데 표정에서도 드러났을테다. 편식 관련한 잔소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들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줄어드는 잔소리, 이제는 잔소리해 주는 사람이 귀하단 걸 알게 되었다)


사실 크게 아픈 적이 없었을 뿐, 정말 자주 아팠다. 수면 장애가 있어 잠도 거의 못 잤고, 영양분 섭취도 골고루 되지 않은 상태에서 늘 무리하며 일정을 소화하니 늘 잔병치레가 잦았다. 한 달에 한 번은 수액을 맞았다. (돈 없던 대학생 시절, 밥값 대신 병원비를 썼다) 모든 게 편식 탓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편식을 고칠 생각을 안 했던 나. 그냥 나라는 사람은 채소를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규정해 놓았던 탓이다. 누군가 '육식공룡'이라며 귀여운 별명을 지어준 탓도 있다고 생각한다. 육식공룡인 내가 그렇게까지.. 싫진 않았던 것 같다 ^_ㅠ


무튼, 이런 내가 요즘은 누구보다 '건강'무새가 되었고 내 생활은 모두 건강에 초점을 맞추어 돌아가고 있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근육량이 없던 내가 주 3회 이상 운동한 지는 3년이 넘어가고, 편식을 고친 지는 반년이 넘었다. 그뿐이랴. 혈당 관리를 위해 매일 애사비를 챙겨 먹고, 식사를 할 땐 식이섬유-단백질-탄수화물 순서를 지키고 있다. 아침에 출근하면 따뜻한 물을 2L 통에 받아 보리차 티백을 넣고, 하루에 한통 반 이상은 마신다. 이런 습관을 가진 건 자그마치 일 년이 되었다.


반년 전, 그저 체지방을 줄이고 싶어서 시작한 PT. 운동을 지속한 3년 동안 피티도 여러 번 받아봤고, 인바디도 셀 수 없이 재봤지만 내 눈은 늘 골격근량과 체지방률만 주시했지, 한 번도 체성분을 확인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 N번째 피티를 시작한 날, 웬일인지 내 눈에 체성분이 들어왔다. (선생님이 경악하신 탓도 있다^^;)

선생님의 진심이 섞인 표정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lay님.. 정말 채소 드셔야 해요. 어려워도 쉬운 것부터 드셔야 해요. 운동보다 중요한 게 식습관이에요. 운동해 봤자 안 챙겨 먹으면 소용없어요"


그날, 집에 가는 길에 그나마 먹어본 적 있는 채소를 '처음으로' 샀다. 정말 못 먹겠는데도 참고 먹었다. 피티 선생님에게 사진을 보내야 하기에 억지로 며칠을 먹었다. 그러다 보니 그 맛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일주일만에, 평생 고치지 못했던 채소 편식을 고치는 '시작'이 시작된 것이다.


건강한 생활습관을 반복하니 평생 꿈이었던 복근도 가져보고, 수면의 질도 전에 비하면 굉장히 좋아졌다. (수면 관련해서도 할 말이 참 많다) 평생을 모르고 살았는데.. 잠을 자니 시야도 넓어지더라.


외적인 변화 보다도 가장 큰 변화는 '잔병'이 사라졌다는 거다. 이 또한 자랑이 아니지만 2023년도의 나는 두 달에 한번 감기에 걸려있었다. 위염+장염 1+1 세트는 너무나 당연했고, 내 자리에는 늘 약이 쌓여있었다. (안타깝게도 '면역력이 바닥인 나' 또한 내 정체성인줄 알았다..) 그러던 내가 2024년도엔 단 한 번도 감기에 걸린 적이 없다. 외상 외엔 병원을 간 적도 없다는 게 나에겐 정말 큰, 어쩌면 가장 큰 변화이다. 잔병 걱정 없는 일상이 이렇게 잔잔하고 에너지가 넘치는지 몰랐다.


무엇이든 필요를 느끼면 행하게 된다더니, 평생 꺼져있던 스위치를 켜니 나의 삶이 180도 바뀌었다. 이제 알았다. 스위치를 켜는 것보다 중요한 건 스위치를 켜야 하는 '필요'를 느끼는 것이었다.




너무 지겹기만 했던 그 말을 이제는 내가 하고 있다.


'힘들어도 운동은 꼭 해야 해요', '하루에 물은 2L 이상 꼭 마셔야 해요', '면역력 높이려면 따뜻한 물이 제일 좋아요', '식습관이 건강해야 살도 잘 빠져요', '밥 먹고 10분 이상은 꼭 걸으세요'


나열해 놓고 보아도 참 흔해빠진 말들이다. 어릴 적 나와는 전혀 상관없던 이 말들이 놀랍게도 지금은 내 삶을 지탱하고 있다. 나에게 이 말을 해준 사람들은 모두 잘 실천하며 살았는진 모르겠지만,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해보니까 알겠다. 건강은 시간을 내서 열심히 챙겨야 한다. 우리가 오늘 해야 할 업무를 분배하고 하나하나 쳐내는 것처럼, 건강도 그렇게 틈틈이 챙겨야 한다.

왜 이렇게 자잘하게 해야할 게 많을까 싶다가도, 출근해서 일하고 지인 생일부터 먼 친척 경조사까지 모두 챙기는 마당에 내 건강 챙기는 것만 귀찮아하고 있진 않나 생각을 해볼만 하다.


할 이야기가 많아 다음 편으로 미룬다. 원래 늦게 깨달을수록 후폭풍이 강한 법.

나 혼자만 건강한 건 아무 의미가 없다. 단 한 명이라도 더 건강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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