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짜???
"아휴.. 집수리 한 번 하기 힘들다. 네 아빠는 왜 그런다니"
엄마랑 아빠랑 또 집수리 문제로 다투셨나 보다. 전화기 너머로 엄마의 한숨 섞인 목소리가 들린다.
"도대체 맨날 어디서 엉터리로 싸게 하려고만 하고.. 한 번 할 때 제대로 해야지 말이야. 이래서는 안 하느니만 못하겠어. 집 볼 때마다 스트레스받고 엉망인 집 보고 있으면 뭐 하나 치우기도 싫다니까... 어휴... 정말..."
몇 달 전부터 엄마랑 아빠는 집수리를 해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를 하셨지만, 세부 내용에 관해서는 도저히 의견 차이를 좁히지를 못하셨다. 아빠는 토목과를 졸업하고 평생 공무원으로 일하셨다. 주변에 건축, 인테리어 하는 아는 사람들이 많으니 재료 값에 품삯만 좀 더 주고 싸고 아는 사람에게 간단하게 하자는 주의다. 엄마는 아는 사람에게 해봐야 할 말도 제대로 못하고 불편하기만 하니 이왕에 할 거 제대로 된 곳에 맡겨 집 전체 수리로 깨끗하게 하고 싶다고 한다. 내가 보기에도 엄마 말이 좀 맞는 것 같은데, 아빠는 그렇게 큰돈 주고 그럴 필요가 뭐가 있냐고만 계속하시니 도대체 결론이 나지 않는다.
엄마, 아빠의 대화를 들어보자면 이런 식이다.
엄마: "도배, 장판을 새로 해서 집이 반짝반짝한데 저 누런 낡은 싱크대가 그대로 있으면 그게 얼마나 이상하겠냐고요. 가구도 저거 다 낡아서 한 번 바꿔야 하는구먼."
아빠: "아니, 싱크대가 어디 내려앉은 것도 아니고 멀쩡한 걸 왜 가져다가 버려. 식탁도 다리도 멀쩡하고 책상도 멀쩡하구먼 왜 죄다 갖다 버리려고만 그래..."
엄마: "우리가 살면 얼마나 더 살겠다고... 잘 살아야 앞으로 한 이십 년이나 살면 갈 텐데! 이번에 정리 한 번 하고 가구도 좀 바꾸고 깨끗하게 하고 사는 게 낫지요.. 지금 할 때 안 하면 언제 다시 짐 들어내고 하겠어요. 늙어서 지저분하게 하고 살면 냄새난다고 손주들도 안 와요."
아빠: "무슨 소리! 앞으로 이십 년 아니라 삼십 년도 멀쩡하게 생겼어. 조금씩 망가지면 고쳐가며 쓰면 되지. 그걸 왜 가져다 버려"
엄마: "어휴;;; 내가 말을 말아야지;;"
엄마가 휙 돌아 앉더니 아빠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말한다.
엄마: "하여튼 네 아빠는 내 인생의 로또야"
나: "응? 아빠가 로또라고?"
엄마 "응, 로또야 로또!!! 평~~~~ 생 절대 안 맞아!!!"
친정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차에서 엄마 편을 들며 남편에게 투덜거렸다. 할 때 제대로 해야지 아빠는 왜 그러시었는지 모르겠다며 구시렁거리자, 남편이 말한다.
"나는 장인어른 말씀이 맞는 것 같은데? 책상 멀쩡하더구먼 왜 버려?"
헙.... 우리 집에도 내 인생 로또가 있었네. 아 맞다. 우리 남편도 20년 된 스탠드도 못 버리는 사람이었지... 초등학교 때 선물 받은 색연필을 아직도 갖고 있는 사람이었지... 반면 집에 물건 쌓아두는 걸 싫어하는 미니멀리스트 엄마 밑에 자란 나는 추억이 담긴 물건을 남겨 놓는 일은 해 본 적이 없다.
서로 다른 문화의 가정에서 20~30년을 살다 어느 날부터 한 집에 살게 되는 게 부부. 모든 게 잘 맞을 리가 없다. 연애하며 서로 좋은 점만 보일 때는 몰랐던 것들이, 함께 살면 하나둘씩 드러나게 된다. 필연적으로 (안 맞아) 로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미니멀리스트 엄마'와 함께 '못 버려 아빠'를 이해 못하겠다며 엄마 편으로 30년을 살던 나는 '맥시멀 리스트 남편'과 결혼해 10년을 살았다. 결혼 초 남편의 맥시멀리즘에 경악하던 나도 이제 작아진 아이 옷도 추억상자에 담아두고, 미국서 쓰던 크리스마스트리까지 다 짊어지고 귀국한 못 잃어 아줌마가 되어버렸다.
아직 (안 맞아) 로또 부분도 많지만, 그래도 조금씩 닮아 가는 것. 그게 우리 부부가 살아가는 모습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