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꿈꾸는 이성의 존재는 저마다의 성판타지를 가지고 있다.
<오디션>은 음에 속하는 영화다. 음과 더 극단적인 음으로 말이다.' 42세의 애 딸린 남자가, 오디션을 통해 두 번째 부인을 뽑는다' 라는 스토리를 가진 이 영화는 얼핏보면 남성관점 예술의 끝을 달리고 있다는 인상을 가지게 한다. 하지만 내가 볼 때 이 영화는 페미니스트 영화다. 이것이 다가 아니다. <오디션>은 단순한 페미니스트 아트를 넘어서서, 인류의 역사와 함께, 예술의 역사 전반에 잔존하는 고전적인 남성성의 흔적들, 그것들을 영화적인 공포로서 전복시키는 영화다.
기본적으로 이때까지의 남성성은 은연중에라도 마초이즘이 불편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남자로 태어난 것이 마치 여성을 지배하기 위한 특권인듯 행동하는 일련의 증상들 말이다. 영화가 자극하는 성적 판타지는 바로 이런 곳에 있다. 이것은 정복성, 왕이라도 된 마냥 오디션에 지원한 여성들의 프로필을 보며 므흣하게 자신의 두 번째 신부를 고르고 있었던 주인공의 모습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극의 초중반까지는, 영화는 이러한 마초이즘에 기초한 성적 판타지를 잔잔하게 따라간다. 너무 얌전해서 그냥 로맨스 장르인 것 같은 느낌도 있다. 허나 중반부 이후로의 이 영화의 장르는 완전히 색다른 공포로 뒤바뀌어버린다. 기괴한 음향과 캐릭터, 스토리가 점점 드러나기 시작하고 영화 초반, 요즘 괜찮은 여성들이 없다며 푸념하던 양심없는 남성성의 도피를 자아낸다. 영화 전체에서도 그렇고, 이 분야의 단연 압도적인 부분은 바로 꿈 시퀀스다.
주인공 아오야마가 오디션에서 뽑은 젊은 여자 아사미가 술에 탄 약을 먹고 쓰러질 때, 아오야마는 꿈을 꾼다. 쓰러지는 동안 아오야마의 머릿 속, 무의식의 필름에 담겨있던 영상들은 추하기 그지 없다. 아사미부터 시작해서 전 부인, 직장 동료, 아들의 여자친구 등 여러 젊은 여자들과의 섹스 판타지와 기괴한 의식의 흐름들이 연속적으로 그려지는데, 이렇게 파노라마 형식의 독특한 편집으로 남성의 무의식적 욕망의 세계를 마음껏 휘젓는 연출이 이 영화의 백미다. 이렇게 강렬한 시퀀스가 끝나고, 영화는 작품 본래의 전언에 맞게 아주 잔인해진다.
아오야마가 쓰러지고, 아사미는 아오야마를 고문한다. 딱히 묘사하고 싶지는 않다. 존나 잔인하다. 고문을 하면서 아사미는 이런 말을 한다. "오디션을 통해 여자를 모은 뒤, 결국 섹스를 하고 싶었을 뿐. 모두 똑같아." 하지만 영화에선, 아오야마가 자신의 재혼 상대를 찾기 위해 오디션을 모집했다는 것을, 그것을 아사미가 알아가는 과정이 나타나지 않는다. 마치 아사미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말을 내뱉는다는 말이다. 영화 내에서 서사의 논리성이 붕괴하는 순간이지만, 감독은 그런 것을 전혀 개의치 않아하는 것 같다. 아사미를 귀신으로 묘사했다 하더라도 이상하지가 않다. 딴 거 다 필요 없고, 그냥 널 조지겠다는 마인드 같다. 이 영화를 보는 남성들이 기대했던 성적 판타지 말이다.
일반적으로 고전적인 여성성은, 남성의 일부로서 존재해왔다. 어떤 경우엔 마치 소유물인 것처럼.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아사미는 여기에 대한 아주 직설적이고 한이 맺힌 말을 한다.
"난 그 일부가 되는 게 싫어요."
강렬하다. 공포스럽다. 그만큼 다시 보기는 어려운 영화다.
평점 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