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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해 Feb 01. 2016

위플래쉬

하드보일드 액션영화의 진가-

 영화에는 리듬과 템포가 존재한다. 보통의 리듬과 템포는 신 각각의 지속시간이 만들어내는 길이감, 신 내에서의 컷의 수, 신 내에서의 인물이 행하는 액션의 속도감에 의해 형성된다. 일반적으로 영화 후반작업, 편집기술을 통해 이러한 리듬과 템포의 강약이 조절되는데, 이미 우리의 눈에는 그 대강의 형태가 익숙해져있는 상태다. 영화 <위플래쉬>는 이러한 상업영화의 전형적인 리듬과 템포를 아주 독창적으로 변주하여, 새로운 영화적 쾌감을 관객에게 때려박고 있다. 게다가 드럼영화라는 장르적 특성을 이용해 아주 영리하게 리듬과 템포를 가져오면서, 서사의 굴곡이 짙은 기존 극 영화와의 차별점을 두고, 작가 나름의 메시지인 열정과 갈망, 광기의 테마 또한 선명하게 그려내고 있다. 지금부터 리듬과 템포의 강약조절, 영화가 그것들을 어떻게 채찍질 하는지 알아보자.


 리듬과 템포는 관객이 인물에 대해 알아갈 때 유용하게 쓰이곤 한다. 보통은 느린 리듬과 템포로 여유롭게 인물을 관찰하게 함으로써 캐릭터가 지닌 뉘앙스나 특징을 파악하게 하는데, <위플래쉬>에서 처음 앤드류와 플레처의 관계가 묘사될 때도 이런 것들이 잘 나타난다. 나긋나긋하게 긴장 풀고 드럼실력좀 보여달라고 하는 장면에선 영화의 리듬과 템포가 한결 여유롭지만, 앤드류가 드럼을 치기 시작하고 플레쳐가 앤드류를 조지기 시작할 때 영화의 템포는 급격하게 빨라진다. 의자를 내던지는 것부터 시작해서, 뺨을 때리고, 온갖 욕설에 패드립까지 내뱉는 등, 앤드류에 대한 플레쳐의 전혀 다른 모습을 빠른 템포로 보여준다. 이는 앤드류와 플레쳐 사이의 관계, 심리상태 같은 것들을 각각의 상이한 양상에 따라 서로 다른 리듬과 템포를 가져옴으로서, 영화 전체의 흐름에 다양한 변화를 부여하는 작업이 일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말이다.

"쪽수 신경쓰지말고 즐겨봐, 앤드류." 이 장면에선 잔잔한 배경음도 깔리지 않는다. 모든 상황이 여유롭고 편하다.
플레처는 기다렸다는듯이 앤드류를 막힘없이 갈군다. 전체적인 리듬은 변한 것 없지만 프레임 내 템포가 빠르다.


 그렇다고 영화 전체의 들쑥날쑥한 굴곡이 그대로 드러나는 건 아니다. 이러한 변화에 살을 붙여주는 것이 이차적인 작업이다. 끊임없이 드럼 비트를 애용하는 영리한 연출_ 리듬과 템포로 인해 관객이 느끼는 피로감이나 답답함을 최소화시키는 효과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영화의 속도감 또한 딱히 정의할만한 게 없는 게, 전체적인 속도감은 빠른듯 하지만 여유롭게 짚고 넘어갈 부분은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기 때문이다. 가령 앤드류가 니콜과 이야기 할 때, 플레쳐가 잔잔한 재즈 음악을 틀며 션 케이시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앤드류와 플레쳐가 잔잔한 재즈음악이 흐르는 바에서 이야기 할 때를 보면, 전체적인 서사나 드라마 부분에서는 느린 템포로 집중하는 시선을 가져, 관객이 이야기의 깊은 뜻에 심취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다소 여유로운 템포로 집중했던 <위플래쉬>의 드라마, 어떤 것들이 있을까. 대표적으로 션 케이시에 관한 이야기, 조용한 재즈 바에서 앤드류와 플레쳐의 대화같은 것들이 있다. 이는 열정과 노력, 재능에 대한 집착(혹은 재능 조까), 천재를 갈망하는 광기의 테마로 밀어붙치는 이 영화에서, 그나마 인간적인 부분이 아니었나 싶다. 션 케이시 부분에서는 플레쳐의 눈시울이 살짝 붉어지기도 하고, 재즈 바에서의 나긋나긋한 대화도 이 영화의 전언을 대표하고 있는듯하다.


난 지휘하려는 게 아니야. 어떤 병신이라도 박자에 맞춰서 팔 흔드는 건 할 수 있어.


난 정해진 한계를 뛰어넘게 하고 싶었어. 나는 그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봐. 그러지 않으면 우린 제 2의 루이 암스트롱이나 제 2의 찰리 파커를 못 본다고.


"그정도면 됐어, 잘 했어" 그러면 이야기는 끝난 거야. 나한테는 엄청난 비극이지. 영어에서 가장 해로운 말이 바로 "그만하면 잘 했어"야.


내가 생각하는 이 영화의 가장 인간적인 부분

 이렇게 나긋나긋하고 여유로운 리듬과 템포로 드라마에 집중한 후에, 영화는 이제 점점 속도를 올리기 시작한다. 점층적으로 쌓아올려왔던 감정과 이야기의 끝을 마무리 하려는 움직임이다.




 중후반부부터 영화의 속도가 명확하게 드러나기 시작한다. 느린 부분은 느리게 가고, 빠른 부분은 빠르게 가고. 재즈바에서 앤드류와 플레쳐의 대화부터가 시작이었을 것이다. 우연히 플레쳐와 만나게 된 앤드류는 플레쳐로부터 JVC 페스티벌 오프닝 공연 드럼 플레이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게 되고, 앤드류는 이를 수락한다. 여유로운 리듬과 템포로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예고하는 감독의 마음과도 같다. 관객도 이를 기대하게 되고, 앤드류 또한 긴장하게 된다.

그런데 이게 웬 걸. 감독은 우리에게 빅엿을 선사한다. 우리는 앤드류의 화끈한 드러밍으로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멋지게 장식해주길 바랐는데, 플레쳐가 앤드류를 엿먹임으로서 이는 무마된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에 대한 우리의 기대 또한 무너지는 순간이다.

다시 드럼스틱을 들게 되는 앤드류, 우리는 앤드류와 같이 영화의 마지막에 대한 기대감을 품게 된다.
"내가 등신으로 보이냐? 네가 한 거 다 알아."  플레쳐는 앤드류에게 빅엿을 선사한다.
앤드류는 개망신을 당한다.


 허나 이건 일종의 도움닫기였다. 어떻게 보면 쾌감을 배로 증폭시켜주는 감독의 페이크. 집으로 가려는 움직임을 보이던 앤드류는 무언가 결심을 한듯, 다시 무대로 올라와 제 멋대로 드러밍 독주를 선보인다. 플레쳐 대신 밴드를 지휘하면서, 앤드류의 진짜 드러밍이 시작되고, 이때부터 감독은 기다렸다는 듯이 영화의 리듬과 템포를 극한으로 밀어붙치기 시작한다. 마지막 5분, 이는 끝끝내 폭발하고야 마는 무시무시한 영화의 괴력이다.


인물의 관계를 묘사하는 듯한 카메라의 움직임으로 오케스트라 하모니의 절정을 담아내면서, 더블 타임 스윙 주법으로 질주하는 독주부분을 난사적인 장면전환으로 완성시키는 연출이 일품이다. 또한 순간의 컷 지속시간이 만들어내는 활동적인 연출패턴, 절대 남용은 아닌 달리와 패닝의 과감한 사용, 같은 리듬으로 편집 불가능할 정도의 속도감, 부감과 앙각-와이드-풀-익스트림 클로즈업 등 음악의 선율과 리듬을 다양한 사이즈로 변주하는 화면 구성까지. 화려한 테크닉의 쉐이키 캠만 빠졌을 뿐이지, 이건 그냥 액션영화라 해도 무방하다. 우리의 나태함을 두드려패주는 문어머리와, 우리가 정말 바라는, 혹은 혐오하는 인간상이 빚어내는, 진짜 하드보일드 액션영화 말이다.


평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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