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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해 Feb 26. 2016

연기에 대하여

영화연기에 대한 단상들

marlon brando 1924-2004

 내가 연기에 대해 이야기 한다고 해서, 연기를 매우 잘 한다거나, 전문적으로 연기를 배워 본 그런 사람은 아니라는 것만 먼저 알아줬으면 한다. 난 그냥 내가 좋아하는 배우의 자서전 몇 권만 읽었을 뿐이다. 평소 연기에 대해 가지고 있던 나의 막연한 생각들을 두서없이 적어본다. 글이 좀 허접할 수 있다.


 영화가 감독의 예술이라고 불리긴 하지만, 그러한 감독의 예술에 배우가 끼칠 수 있는 영향은 무궁무진하다. 많은 감독들의 연기 연출 스타일은 각각 다를 것이다. 확신하건대 이는 배우의 연기에 큰 영향을 미친다. 자신이 원하는 감정, 신의 흐름 등을 대본에 세세히 적어놓고 현장에서도 배우에게 이렇게 연기해달라 부탁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대본에는 대사만 적어놓을 뿐 아무런 감정 표시를 해놓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 의도는 즉슨, 배우가 알아서 해석하라는 거다. 배우에게 해석의 자유를 주는 이러한 연기 연출은 감독이 생각치도 못 한 흐름이나 감정을 창조해낼 수 있다. 물론 쌩뚱맞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을 감독이 통제를 해주어야 한다는 전제 아래에서 말이다. 이것은 분명 배우에게나 감독에게나 하나의 모험이 될 만한 방법이다. 박찬욱 감독이 보통 이런 방식으로 연기 연출을 하고, 봉준호 감독은 배우에 따라 이런 방법을 사용하기도 하고 사용하지 않기도 한다고 한다. 정답의 연기 연출은 없고 정답의 연기 또한 없다. 자신에게 맞는 연기 스타일을 찾아, 감독에게 혹은 연출자에게 의견을 주장해서 서로 합을 맞추어가는 것이 정답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감독이 자신의 영화를 배우에게 믿고 맞길 수 있는 정도의, 이렇게 텍스트를 스스로 해석할 줄 아는 배우가 진짜 수준높은 연기를 구사하는 배우라 말하고 싶다.


 캐릭터를 창조하는 배우의 뒷모습을 보자. 영화 <다크 나이트>에서 조커를 연기한 히스 레저를 예로 들자. 히스 레저가 6주 동안 호텔방에 틀어박혀서 조커에 대한 자료 조사와 직접 조커의 입장이 되어 일기를 써보는 등 철저하고 광적인 방법으로 캐릭터 창조를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택시 드라이버>의 로버트 드 니로 또한 '트래비스'라는 캐릭터 창조를 위해 하루 15시간 동안 택시 운전을 하며, 몇 개월 동안 정신분열형 성격 장애에 대해서도 연구를 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존재한다. 이렇게 철저한 메소드 기법으로 창조된 캐릭터이니 영화 내에선 명연기로 기억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영화 내에서 강렬한 캐릭터를 구사하는 명연기자가 되려면 모두 저런 방식으로 캐릭터에 몰두해야 하냐. 나는 아니라고 본다. 메소드 연기법을 옹호하는 반면, 반대하는 입장도 많다. 나 또한 마냥 이렇게 몰두하는 것이 전부라 생각하지 않는다.

영화 <괴물>을 예로 한 번 들어보자. 촬영 하루 전날, 주연배우 송강호가 봉준호 감독에게 급히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촬영이 당장 내일인데 봉감독과 '강두'라는 캐릭터에 대해 크게 의논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감독님, 강두가 바보예요, 바보?"

 "음.. 바보는 아닌 것 같아요."

 "바보 아니에요? 그럼 됐네요 뭐. 껄껄"

이렇게 영화촬영이 시작됐다. 그렇다고 송강호가 <괴물>내에서 똥연기를 선보였냐. 그건 또 아니다. '송강호가 천부적으로 연기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이것도 고려해 볼 만한 의견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건, 캐릭터 창조는 그리 어려운 게 아니라는 거다. 어려울 수도 있다. 인물을 복잡하게 형상화 하려고 노력할 때라면 말이다. 여기서 알아두어야 할 것은, 인간의 복잡함은 사실 하나 혹은 두 가지 요인의 단순한 것들로 정의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요인만 충분히 파악하게 된다면 맡은 배역의 형상화는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 <괴물>에서 송강호가 파악한 강두의 요인은 몇 가지 인가. '멍청하지만 바보는 아니다.' '딸을 매우 아낀다.' 두 가지로도 강두가 정의된다. 내가 직접 송강호가 되어 연기해본 건 아니지만, 그냥 내 생각은 이렇다. 단순하게 생각해라. 적지만 꼭 필요한 것들만으로도 생생한 캐릭터를 창조할 수 있다.




 배우의 연기 스타일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 한다. 여기 두 명의 배우가 있다. 이름은 각각 '하배우' '류배우'이고 이들에게 모두 대본을 줬다. 촬영 당일날, 하배우의 대본은 걸레짝이 되어 있었다. 여러 번 밑줄 치며 읽고, 형광펜으로 줄 긋고, 메모하고, 강조할 부분 표시하고.. . 하배우에게 씬에 대한 이야기를 건네면 바로 기계처럼 대사가 튀어나온다. 씬마다의 감정을 완벽히 장착하고 현장에 온 거다. 흠 마음에 든다 굉장히 열심히 하는 게 보인다.

촬영 당일날, 류배우는 대본을 잃어버렸다 한다. 그리고는 현장에서 대본을 다시 받아 뚫어져라 보고 있다. 신에 대해 질문을 하니 그냥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고 한다 지금은 집중해야 된다고. 촬영 땐 잘하겠지 뭐.

(하배우, 류배우는 각각 내가 좋아하는 배우를 토대로 임의로 정한 이름이며, 이 예시는 분명 과장되어 쓰여진 것입니다.)

촬영은 그런 대로 잘 진행됐다. 다만 하배우는 계속되는 반복촬영에 상응하는 다양한 패턴의 연기를 보여주지 못 하였고, 류배우는 다양한 패턴의 연기는 언제든지 가능했지만 가끔씩 대사를 까먹는다. 자기 멋 대로 대사를 바꿔서 치기도 했다.


 내가 과장하여 쓴 '하배우'와 '류배우'의 예시에서 배우들의 연기 스타일을 알아볼 수 있다. 하배우와 류배우의 연기 모두 잘못된 연기는 아니다. 자기 편한대로 연기를 했고, 감독은 그냥저냥 원하는 장면을 건졌으니까. 말하자면 하배우의 연기는 스스로의 확신이 들 정도로 감정을 철저히 준비하는 촬영 당일 날에 자동반사적으로 대사가 튀어나오게 하는 연기고. 류배우는 하배우에 비해 조금 단순하게 그 날 그 상황 직관에 크게 기대어 감정을 창조해내는 연기다. 철저한 준비와 노력으로 구사하는 연기와, 철저한 준비와 노력도 하지만, 감각에 의존하여 연기하는 게 더 큰 연기 말이다. 후자는 재능이 필요하다. 뛰어난 동물적 감각 같은 아주 천부적인 재능 말이다. 전자를 선호하는 감독과 배우가 있는 반면, 후자를 선호하는 감독과 배우도 있다. 이 역시 정답은 없다.


 나는 개인적으로 후자를 더 선호한다. 후자의 연기가 더 무섭다고 느껴진다. 예측 불가능한 연기- 천부적인 감에 의존한 연기는 연기의 테크닉적인 부분을 월등히 뛰어넘기 때문이다.

사진은 그냥 승범이 형이 좋아서


 연기의 테크닉적인 부분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 한다. 테크닉적인 부분은 분명히 필요하다. 하지만 너무 이것에만 의존해도 문제가 생긴다. 때때로 배우들이 자신이 정말로 연기를 하고 있는 건지, 이미 만들어진 배역을 충실하게 흉내내고 있는 건지를,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신은 분명 열심히 연기를 하고 있다고 믿겠지만, 이미 만들어져 있는 배역을 연기하려 노력하는 입장이라면, 그 배우는 표현에 있어서 인습에 묶여 곧 한계를 느끼게 된다. 일부 공중파 드라마에 꼭 나오는 인물들이 죄다 똑같이 보이게 되는 이유다. 그들은 연기를 잘 한다. 잘 배웠고 잘 한다. 테크닉적인 부분은 정말로 뛰어나다. 하지만 문제는 이미 만들어진 배역을 연기한다는 거다.

'내 것'이 없다.

슬픈 장면을 찍는다. 아무 표정 없던 주인공의 얼굴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액션이 떨어지자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다. 서글프게 잘 운다. 정말 프로다. 테크닉적인 부분은 깔 수가 없다. 하지만 이렇게 연기를 잘 하는 사람들은 널리고 널렸다. 그 어느 때보다 개성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슬픈 장면엔 왜 모두가 울까? 미친듯이 웃어봐도 되는 거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는 배우도 충분히 나올 수 있는데 말이다. 배우가 그렇게 느낀다는데 누가 뭐라 할 수 있겠나. (근데 뭐라 하는 사람도 있다.) 정형화된 감정이 아니라, 자신에게 솔직해져 진정 자신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감정과 억양을 전달하는 배우. 그런 배우가 개성있는 배우라 나는 생각한다.



 배우 오달수를 통해 또 다른 개성있는 연기의 예시를 알아보자. 오달수와 박찬욱 감독이 처음 만난 작품은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2003)인데 여기서 오달수의 연기에 대한 박찬욱 감독의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박찬욱: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의 첫 촬영이 아직도 기억난다. 오달수의 첫 테이크를 보는데 이거 어떡하지 싶었다. 정말 족보도 없는 연기에, 누군가와 비슷하다고 억지로 분류하기도 힘든 연기였다. 무엇보다 오케이를 해야 하는지, 다시 찍어야 하는지 연출자로서도 선뜻 결정할 수가 없더라. 전통적인 개념으로는 분명히 NG인데, 일단 재밌으니까 왠지 나중에 편집할 때 쓸 거 같은 거다. 현장에서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이후 오달수는 박찬욱 감독 작품에 있어서 없으면 허전한 배우가 되었다.

이어지는 류승완 감독의 이야기다.

류승완: "연극영화과 실기시험에서는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연기다.(웃음) 당시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 <올드보이>의 오달수도 그렇고, <복수는 나의 것>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오광록 배우까지, 감독인 내가 봐도 문화적 충격이었다. 아니, 어떻게 저런 배우들하고 작업을 했나 하는 생각에, 박찬욱 영화의 모던이라는 측면에 그런 배우들의 연기도 포함되는 것 같다."

도대체 연극영화과 실기시험에서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연기가 어떤 걸까. 어떤 연기이길래 박찬욱 감독과 류승완 감독이 이렇게 말하는 걸까. 모두를 궁금하게 하는 연기다. 오달수가 연기할 때마다 웃음이 터져나와 모니터 뒤로 숨는 한이 있어도 박찬욱 감독은 계속해서 오달수와 작품활동을 같이 해왔고, 또 그가 없으면 허전하다고 한다. 단순하게 연기를 잘 한다는 것보단(물론 뛰어난 연기자임에도 확실하다), 무엇보다 오달수의 연기가 정녕 지구상에서 오달수밖에 할 수 없는 개성있는 연기이기에, 많은 감독들이 계속해서 오달수를 찾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영화 <복수는 나의 것>을 찍을 때의 일화가 있다. 동진(송강호 역)이 자신의 딸을 유괴하고 죽게 만든 류(신하균 역)를 기절시키고 뺨을 때리는 장면이 있다. 신하균이 가장 벌벌 떨었던 장면이라 한다. 매 테이크 마다 동진이 날리는 뺨과 주먹의 세기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매 테이크 마다 동진을 연기하는 송강호의 감정이 어떻게 똑같을 수 있을까. 류를 눕혀놓고 나서 순간 딸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슬픔이 먼저 밀려왔을 수도 있고. 아니면 류에 대한 분노가 먼저 느껴졌을 수도 있다. 때에 따라서 류를 눕혀놓고 그저 울기만 할지, 미친듯이 뺨을 때릴지, 배우의 연기는 달라진다는 이야기다. 연기의 테크닉적인 면에 집중하라. 중요하다. 하지만 자신에게 솔직하며, 순간의 감정에 집중하는 연기가 더 무섭다. 선택은 그 배우의 몫이고, 이 역시 정답은 없다.

<복수는 나의 것>-2002


 내가 좋아하는 여배우가 한 말이 있다.

 "acting is reacting 이라는 말이 있지 않나. 귀를 기울이는 것이 연기의 처음 시작이자 핵심이다."

내가 말을 하려면 일단 상대방의 말을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는 대화의 공식이 연기에도 적용된다는 말이다. 기본적으로 상대방과 말을 주고 받으며 논리적인 대화를 한다는 전제 아래, 배우 자신은 자신의 감정에 더욱 솔직해진 자연스러운 연기를 구사할 수 있다. 상대방의 말을 주의깊게 듣고 이해하면서, 나의 대사에는 타당한 이유를 부여하고 전달하면. 두 인물에게 주어진 상황은 당위성과 논리성을 가진 한 장면의 리얼리티로 표현될 수 있다.

한 줄 한 줄 외우기만 한 대사는 지루한 연설이 되기 쉽다. 먼저 상대방의 말을 듣고, 상황에 대입,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 다음 나의 대사에 내가 이해한 논리성을 부여하고, '말'을 전하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상대 배우와의 커뮤니케이션이다. '잘' 듣고, '말'을 해라.


 모든 연기자들에게는 적이 있다. 바로 긴장이다. 아무리 철저히 연습을 했다 하더라도, 카메라를 들이대면 알 수 없는 긴장감이 흐른다. 몇 십, 몇 백 명의 사람들이 모두 나를 보고 있고, 나의 행동 하나 하나가 그들에게 속으로 평가당한다. 아무리 뛰어난 연기자라 해도 순간의 긴장을 이겨내지 못하면 바보로 변하게 된다. 긴장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겠지만, 그나마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몇 가지의 조언들을 적어본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내가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라는 자의식에서 탈피하는 것.-송강호)

배우가 자신의 행동을 의식하게 되는 순간, 그 연기는 끝이다. 의식하는 순간 마저도 카메라엔 잡히고, 관객의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이 연기는 진실로서 관객을 설득할 수 없다. 내가 무슨 행동을 하건, 이것이 내게 정답이고 절실한 행위라 믿어야 한다.

 (누구로부터 전혀 겁먹을 필요가 없는 것.-마이클 케인)

현장의 그 누구든 배우가 최고가 되기를 원한다는 것을 알아둬야 한다. 배우가 잘 해야 OK컷을 빨리 받아내고, 그래야 다들 일찍 퇴근하니까. 일단 배우가 잘 해야 가능한 이야기다. 단순하게 집에 일찍 가고 싶은 건 누구나 공감하는 것 아닌가.


<지옥의 묵시록>-1979

 내가 살면서 가장 인상깊게 본 연기는 <지옥의 묵시록>에서의 말론 브란도의 연기다. 마침내 만나게 된 커츠 대령. 세 시간 만에 영화 속에서 처음으로 얼굴을 드러냈지만, 그 순간 만큼은 어떠한 영화, 그 어떠한 인물보다도 강렬했다.


 주저리 주저리 떠들었지만 뭐니 뭐니 해도 연기에 정답은 없다. 연기도 예술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냥 자기 옷에 맞는 연기를 하는 게 가장 좋은 것 같다. 어떻게 하든 잘만 하면 장땡.



                                                       ..당신이 어떠한 방식으로 연기를 하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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