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일하기. 어떻게 하는 건가요?

by 서하루

내 고용 계약서는 이렇다. 갑(회사)는 을(나)에게 월 110만 원의 급여를 지급한다고 되어있지만 이는 '한 달간 총 20일, 일 4시간을 다 채워 근무했을 경우'라는 조건이 붙는다. 초과 근무를 했을 때는 추가 수당을 지급받게 되어있다. 그러니깐 그날 상윤님은 늦게 출근한 만큼 근무 시간을 채우기 위해 정해진 퇴근 시간보다 최소 1시간을 더 근무해야 되는 거였다. 그런데 내가 초고속으로 청소를 하고 있으니 그도 속이 탔던 거다. 커피와 케이크는 내 청소 속도를 늦추기 위해 사온 의도된 지연 장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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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나는 또 한 번 '바쁘다 바빠 현대 사회'를 역행하는 근무 태도를 요구받는다. 평상시 2인 1조로 근무하지만 퇴실 방이 하나도 없는 날은 한 명만 출근해서 공용공간이나 창고 등을 정리 한다. 그날은 처음으로 내가 혼자 근무하기로 한 날이었다. 배송 온 이불 커버를 캐비닛에 넣고 수건과 바스 타월은 한 장씩 착착 개어 넣었다. 2층과 3층 창고를 정리했다. 언제 사용했는지 알 수 없이 말라비틀어져있는 빨래 비누를 버렸다. 손님이 놓고 간 분실물 중 2주 이상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머리빗과 키링을 종량제 봉투에 정리했다. 공용 화장실까지 청소를 마치니 50분 정도가 지나있었다. 더 이상 할 일이 없다. 그래도 이왕 출근했으니 1시간은 채우고 돌아가자는 생각에 이미 청소기를 돌린 복도 카펫을 돌돌이로 밀었다. 조금 과장해서 맨발로 지나가도 머리카락이 밟히지 않을 정도로 만들어 두었다. 그렇게 1시간 30분을 채운 뒤 나는 일지를 작성하고 퇴근했다. 시간을 더 보냈다간 퇴실 청소도 없는데 돈을 더 받아가려고 어슬렁 거리는 모습으로 비칠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퇴근 후 들른 카페에서 전화를 받았다. 영자 매니저였다.


"하루님 퇴근하셨어요? 벌써 퇴근하시면 어떻게 해요? 도대체 왜 가신 거예요???"


그녀에 따르면 나는 최소한 3시간은 채우고 퇴근을 했어야 했다. 그녀는 설명해 주었다. 수건을 나처럼 빨리 개면 안된다고. 그녀는 덧붙였다. 이미 청소된 빈 방도 다시 들어가서 청소하라고. 그래야 근무 시간을 채우고, 또 때로는 초과 수당도 받을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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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근무했던 갤러리에서 나는 늘 숨 쉴 틈 없이 일하곤 했다. 업무 메일 하나를 처리하고 나면, 최소 세 개의 메일을 더 받았다. 화장실을 다녀오면 그 사이 메신저에 수십 개의 메시지가 '안 읽음' 상태로 떠있었다. 9시, 10시, 11시까지 야근을 하고 모든 일을 처리하고 퇴근했지만 밤 12시에도, 새벽 1시에도 대표는 메일을 보냈고, 다음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수십 통의 메일이 쌓여있었다. 결국 '일을 빨리 끝내는 법은 일을 안 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진리를 그때는 깨닫지 못하고 좀 더 빠르게 처리하면 가능하겠지, 더 빨리! 일에 속도를 내자!라고 다짐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이렇게 살아온 내게 영자님의 말은 도저히 이해하기도, 실행하기도 힘든 가이드였다. 천천히 일하기.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거죠?


사용하는 카트 정리도 시간이 남았을 때 해야 하는 주요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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