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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향문 Jul 22. 2024

3. 교정고는 고래도 수치스럽게 한다



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첫 번째 교정고가 도착했다.

거기에는 내 글을 읽은 편집자님의 소감과 수정·보완점도 함께 첨부되어 있었다.

(*통상 '리뷰'라고 한다)


내 글의 매력이 무엇인지. 그 글을 읽으며 어떤 기분을 느꼈는지.

어느 부분이 늘어지고 어떤 부분이 너무 급박하게 진행되는지.

어떤 표현이 반복되는지, 어떤 내용이 빠지거나 추가되면 좋을지. 


장장 6페이지에 걸친 리뷰를 읽고 나니 그야말로 만감이 교차했다.


가장 큰 감정은 '수치심'이었다.


물론, 나도 눈이 있는 이상 내 글이 얼마나 졸작인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나 혼자 알고 있는 것과 타인의 입으로 직접적으로 듣는 건 수치심의 차원이 달랐다.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갈 때마다 온몸에 소름이 돋고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칭찬은 칭찬대로 오그라들었고, 조언은 조언대로 송구스러웠다.


나는 마음 깊이 반성했다.


이따위 글을 잘도 투고씩이나 했구나. 어디서 포도알이나 받아먹을 글로 애먼 사람의 직업만족도에 악영향을 끼쳤구나. 인두겁을 쓰고 못할 짓을 했구나.


스스로에 대해 그렇게 깊이 반성해 본 건 아마 그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두 번째로 느낀 감정은 편집자 님에 대한 경외심이었다.


이따위 글을 읽고도 싫은 소리 한마디 하지 않고 정성껏 조언을 해주신 편집자님이 마치 성자처럼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편집자님의 프로페셔널함에 감탄하기도 했다.


나머지 감정은 굳이 순위를 매길 필요도 없다.


이런 글을 받아준 출판사에 대한 감사, 

그런 출판사를 잠깐이나마 의심했던 것에 대한 성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약에 성공했다는 안도, 


뭐 그런 것들이 오십 보 백보 수준으로 뒤섞여 있었으니 말이다.



그때만 해도 몰랐다.

리뷰는 그저 예고편이었을 뿐, 교정고야말로 진짜 수치심의 절정이라는 것을.



출판사마다 다르지만, 교정 작업은 보통 두 번 정도 이루어진다.


먼저 맞춤법이나 오타, 비문, 설정 오류 등을 편집자님이 짚어주면 그 내용을 확인한 후 수정한 원고를 다시 편집자님께 보낸다. 이게 1차.


그 다음, 그 전에 못잡아 낸 부분을 다시 체크한 원고가 들어오면 1차 때와 마찬가지로 수정할 부분을 수정하고 또 편집자님께 보낸다. 이제 2차.


그러고 나면 모든 수정 사항을 다 반영한 최종 편집본이 들어온다.

여기서는 보통 추가로 수정할 부분이 없다. 간혹 내가 수정했지만 반영되지 않은 부분, 앞선 과정에서 발견하지 못한 오타 등이 있을 순 있지만, 대부분 출간할 완성본을 미리 받아보는 개념이다.


아무튼, 내 첫번째 교정고는 그야말로 빨간색 천지였다.


맞춤법에 맞지 않는 부분과 빼먹은 문장기호는 물론, 매끄럽지 않은 문장과 대사, 설정상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까지, 이 정도면 거의 글을 다시 쓰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원고는 온통 빨간 표시 투성이었다.


나는 눈물을 머금고 표시된 부분을 모두 수정했다.


이렇게 말하니 그 작업이 꽤나 힘든가 보다 할 수도 있지만, 사실 교정고 자체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수정할 부분은 이미 원고에 적혀있고 나는 그대로 고치기만 하면 되니까.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오늘은 월요일이였(었)다. 나는 수업이 끝나고 친구와 떡볶이를 사ˇ먹었다,(.) 떡볶이가 매워서인지 물을 많이 마셔도 입 안(입안)이 얼얼했다. 내일은 금요일(앞에서 월요일이라고 쓰셨는데 그럼 내일은 수요일이어야 맞지 않을까요?)이라 떡볶이 대신 순대를 먹기로 했다."


문제는 고칠 것이 단순 오타나 맞춤법 등이 아닌, 다른 부분에 있을 때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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