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책 한 권을 완독했습니다. 매트 리들리의 『이타적 유전자』를 읽어봤는데요.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매트 리들리의 시각이 신선했습니다. 머리를 '띵'하게 만드는 내용들이 많더라고요.
따라서 충격을 주었던 수많은 내용 중 몇 가지를 아래와 같이 공유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인간에 관해 해명해야 하는 것은 인간이 왜 늘 악행을 저지르는가가 아니라 왜 간혹 미덕을 실천하는가이다. 윌리엄스는 이렇게 질문했다. <이미 더 이상 이기적일 수 없는 유기체가 낯선 사람, 심지어 짐승에게까지 자선을 베풀 것을 심심치 않게 주장하고 이따금씩은 실천도 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생식권의 만민 평등주의야말로 인간 사회의 아주 독특한 특징이다. 다른 군체 포유 동물들, 곧 늑대·원숭이·고릴라 등은 생식권을 소수의 수컷이나 암컷에게 양도한다. 그러나 인간은 누구나 어디에서나 생식권을 갖는다. <인간 사회가 아무리 전문화되고 노동이 세분화되어도 인간은 생식 활동을 할 권리만큼은 각자에게 있음을 항상 주장한다>고 리처드 알렉산더가 말했다. 그는 가장 조화로운 사회는 구성원 각자에게 평등한 생식 기회를 부여하는 사회라고 믿고 있다.
트리버스는 동물이나 인간은 항상 사리 추구를 위해 행동한다는 전제를 가지고 연구를 시작했지만, 기대와는 달리 동물 세계나 인간 사회에서 협동이 무척 자주 일어난다는 것을 관찰했다. 그는 이기적인 개체들이 서로 협동을 하는 것은 <호혜성>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호혜성이란 <네가 내 등을 긁어주면 나도 네 등을 긁어주겠다>는 것이다. 동물이 호의를 베풀면 그 호의를 입은 상대는 나중에 그에게 보답함으로써 양쪽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간다. 물론 호의를 베푸는 비용이 받는 비용보다 적은 경우에 한해서이겠지만······. 동물이 서로를 돕는 것은 이타주의가 아니고 이기적인 동기에서 비롯된 상호적 호혜성이다.
인간 사회에서는 호혜주의가 보편적으로 발견된다. 그것이 인간 본성의 불가결한 일부, 즉 본능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은 되새겨야 한다. 우리는 <선행은 선행으로 보답받는다>는 결론에 이르기 위해 복잡한 추론을 거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는 뿌리 깊은 소양이다. 왜 그럴까? 그것은 우리 인간이 사회적 삶을 통해 좀 더 많은 것을 획득하도록 적자생존이 호혜주의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서로에게 선물을 주는가? 그것은 한편으로는 상대에게 호의를 베풀기 위한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아량이 있는 사람이라는 평판을 지키기 위한 것이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선물을 받는 사람을 보답이라는 의무감에 묶어놓기 위한 것이다. 선물과 뇌물 간에는 큰 차이가 없다.
인간에게는 호의를 베풀고 그 호의에 대해 상대방이 보답하는지를 감시하는 본능이 있다······.
사람들은 똑같은 친절이라도 더 큰 노력이 들고 더 많은 불편이 감수된 친절을 더 고마워한다. 그 친절한 행위에 따라 나에게 돌아오는 이득은 같더라도 말이다.
인간에 대해 우리가 확보하고 있는 사례들은 하나같이 개체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집단성을 이용하는 것일 뿐, 집단을 개체보다 앞세우는 것은 아니다. ······ 사람들은 자기의 이익보다 집단의 이익을 존중한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집단이 자기 이익에 부합할 때 집단과 함께 행동할 뿐이다. ······ 우리는 집단성이 지극히 강한 종족이지만 집단 선택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집단을 위해 우리를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해 집단을 이용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인간은 지구상에서 가장 협동적이고 사회적인 생물이지만, 동시에 가장 호전적인 생물이다.
신선한 충격과 새로운 시각을 원한다면 『이타적 유전자』를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