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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 Feb 25. 2022

내 맴이 내 맴대로 안되네

뮤지션의 일일일


  나의 주된 일은 곡을 쓰거나 편곡을 하거나, 공연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는 일이다. 이 일은 대부분 고정적으로 하는 일이 아니라 프로젝트 단위의 일이라, 여느 프리랜서들처럼 바쁠 땐 확 바쁘고 한가할 땐 무진장 한가하다. 보통 연초는 일이 많지 않은 편인데 올해 우연히 연초부터 일이 많아서 무척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요즘 내 일상은 완전히 일이다. 틈틈이 스트레칭도 하고 쉬기도 하지만 아주 찰나의 시간일 뿐, 대부분의 시간을 뮤지컬을 위해 곡을 쓰고, 연주를 위해 곡을 카피하고(음악을 악보로 만드는 것), 공연을 위해 피아노 연습을 하면서 보낸다. 그리고 지금은 약간의 여유가 생겨서 지금 나의 썩 좋지 않은 상태를 글을 쓰면서 되짚어보려고 한다. 그러니까, 사실 이 글은 지금의 나를 위한 글이기도 하다.






  곡을 쓰는 일은 다른 일보다 정신적인 소모가 많다.  많은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책상 앞에 앉아서  작업을 하는 동안뿐만 아니라  마감기한까지의 모든 시간 동안 거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여기를 이렇게 멜로디를 하는   좋을까,  리듬이 배우에게 어렵지는 않을까, 너무 가요 같지는 않을까, 너무 지루해지지는 않을까 등등 여러 가지 생각이 들어서  곡을 수없이 고치게 된다. 밥을 먹다가도, 외출 준비를 하다가도 계속 머릿속에서 마음에 걸리는 부분에 대해 고심을 한다. 그러다 보면  이상   없어질  있다. 다행인 것은 나의 기억력이 짧기 때문에   시간만 잊고 지내면 새로운 마음으로  곡을 대면하게 된다. 그러면 조금  나은 길을 찾기도 한다. 물론 완전히 잊어버릴 정도로  기억력이 짧은  아니지만, 두세 시간  정도면 내가 애쓰던 부분조금 넓은 시야로 보 되고, 지금의 나는  시간 전의 나보다 조금  나은 사람이기 때문에(?)  좋은 길을 찾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그런 식으로 곡을 의뢰자에게 넘기기 직전까지 보고  본다. 진짜 이게 최선인가,  멜로디가,  반주가, 나에게서 올 수 있는 최선인가를 고민  고민한다.




출처: 불개미상회






  편곡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작곡과 다른 점은  생각보다 작곡가를  많이 고려하게 된다는 점이다. 작곡가는 정말 고심해서  멜로디를 썼을 텐데, 나는 어떻게 하면 이걸  돋보이고  전달력 있고 듣기 좋게 곡을 만들  있을까 시연을 하기 직전까지 고민한다. 아니, 녹음이나 공연을 올리기 전까지 고민하는  같다. 결과물이 나오기 직전까지. 아무래도 작곡이나 편곡은 정답이라는 것이 없는 일이기에 최선의 답을 찾는  끝까지 고심하게 된다.






  연주를 준비하면서 드는 생각은 아주 솔직하게 말하자면 관객, 같이 연주하는 사람들에게 뭔가 약간 미안하다는 마음이다. 내로라하는 뮤지션들은 이미 거장의 위치에서도 매일  시간씩 연습을 한다는데  같이 벼락치기나 하는 연주자는 무대에 서면    같다는,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솔직히 든다. 물론 연습이 다가 아니지만  귀를 따라오지 못하는 손은 답답하고  별로다. 귀로는 완벽하게 끼워 맞춘  정확히  자리에 있어야  것만 같은 라인을 연주해 내는 거장들의 음악을 들으며 감동하지만,  손은 아무리 고심해도 따라가지 못하니 답답할 뿐이다.  연주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잘하는데요? 너무 멋져요!라고  때도, 언제나 나는  연주에 만족하지 못한다. 스스로 오늘은 쬐금  낫고, 오늘은 쬐금  별로고의 차이이지, 오늘 연주가 100프로 맘에 들어서 기분 좋다 하는 날은 지금껏   번도 없었다. 그런데 이건 연습을 많이  때도 그랬다. 끝없는 자기비판과 성에  차는 연주가 스스로를  아지게 만든다. 그러면 연습도 하기 싫어진다. 얼마 전에 외국인들이 한국사람들이 자신의 능력보다 스스로를  낮게 보는 경향이 있다고 하는데, 나는 한국사람이라 이런 생각이 자꾸 드는 건가, 뮤지션들은 원래  그런 건가,   해당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가 종종 나는  살고 있는 건가 하는 인생의 난제에 부딪히게 된다. 그건 갑자기 찾아온다. 너무 바쁠  갑작스레 불현듯이  마음에 바람처럼 슬쩍 지나가는 척하다가  난제는 마음에서 점점 크게 돌풍으로 변한다. 아무에게도 내색하지 않고 바쁘니까 잠시 접어둔 듯한 모양으로 생활 하지만, 이대로 괜찮은가 하는 생각은 바쁨이 오래 지속될수록 점점 심각하게 머릿속에 번진. 그런 생각이 들면 막막하고,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렇게 힘들게 일하나 하는 생각 때문에  때려치우고 싶어 진다.



출처: 에비츄



  지금의 상황으로  쉽게 설명해보겠다. 이미 돈독하게 신뢰가 쌓인, 가족 같은 팀에 내가 객원으로 참여해서 공연을 하게 되었다. 굉장히 좋은 기회로 함께 하게  것인데 이게 생각보다 적응하기 쉽지 않은 일이라 팀원들의 아주 작은 말로도 의미를 크게 부여하게 되고, 쉽게 지쳤다. 처음 그럭저럭 넘어갈만한 마음이었는데 어느  갑자기 마음이 예민해지면서 위축되고 부정적인 감정에 빠진 나를 발견하게 됐다. 사실은 숨은 의미가 있는 말들이 아닌데, 그게 부정적인 것으로  안에서 변질되어 스스로를 자꾸 다치게 하고 우울하게 만들고 있었다. 처음에 내가  팀을 들어올  가졌던 마음은 “팀원들에게 위로가 되고 싶다 마음이었는데  마음에 점점 내가 매몰되고 있었다. 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가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좋은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결국 팀원들의 말에 크게 의미부여를 하게 되면서 도리어  마음을 다치게 하고 있었다. 이걸 알게 되고는   편안하게 마음을 먹기로 했다.



‘모두가 원하는 것은 일단 이번 공연을 잘 마치는 것이고, 그 과정 중에서 함께 즐거우면 그걸로 됐다. 그리고 그 이후의 일은 내 손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너무 연연하지 말고 기도하자.’



  지금도 가끔, 나 잘 적응하고 있는 건가? 하는 마음이 나를 위축되게 만들 때가 없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그럴 때마다 그 마음을 떨쳐버리고 일단 이번 공연을 즐겁게 잘 끝내자라고, 더 크게 보는 마음으로 이겨내려고 한다.




  남들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깐깐한 뮤지션이 되지 말고 더 너그러운 뮤지션이 되고 싶다. 그러면서도 재밌고 톡톡 튀는 뮤지션이 되고 싶다. 이 나이를 먹고도 아직도 되고 싶은 게 있다는 게 놀랍기도 하지만, 되고 싶은 게 더 좋은 인간이라 다행이다. 계속 더 멋있게 나이 드는 뮤지션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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