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뮤지션
최근,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을 잘 보지는 않는 내가 푹 빠져서 보았던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싱어게인. 이전에 방영했던 케이팝스타나 슈퍼스타케이, 미스트롯 등등 다른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들은 전혀 보지 않았는데, 싱어게인 시즌1에서의 이무진의 “여보세요” 한 소절을 시작으로, 다음 화는 언제 나오나 손꼽아 기다리며 보았다. 회식으로 1차 밥, 2차 술, 3차 노래방으로 가는 우리 민족에게 노래를 잘하는 것은 참 큰 매력포인트가 아닐 수 없다.
기본적으로 내가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를 보지 않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가장 먼저는 순위를 뽑는다는 점에서다. 내가 아는 사람 500명 중에 이름을 가린 채 한 사람과 통화를 하게 되었다고 치자. 그 사람의 이름을 가렸어도 목소리 만으로도 누구일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목소리는 모두가 다르다. 심지어 가수들은 목소리뿐만 아니라 잘하는 장르도 모두가 다른데 그 사람들을 한 줄로 세워 우열을 가린다는 것은 억지라고 생각했다. 마치 미술로 따지면 정물화랑 추상화, 일러스트를 같이 놓고 순위를 매기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대부분의 심사위원들이 취향대로 피드백을 하는 점에서 기분이 나빴다. 사실 한 번도 제대로 프로그램을 본 적은 없지만 종종 뜨는 짤들만 봐도 그 분위기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한국의 음악문화가 오직 케이팝만 있다고 전제를 두고 하는 말들, 이슈가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듯한 그들의 평가내용을 들으면 화가 났다. 그리고 그 평가에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듯한 참가자들의 표정을 보며 심사위원의 생각이 모두의 생각은 아니야! 하고 응원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게다가 한 번쯤은 고음을 멋있게 불러줘야 노래를 잘하는 것처럼 인정해주는 대한민국의 음악문화가 싫어서 오디션 프로그램은 아예 보지도 않고 걸렀다. 낮게 읊조려도 얼마나 좋을 수 있는데! 그랬던 내가 싱어게인을 보았다는 것은 참 신기한 일이다.
싱어게인을 보면서 다양한 장르 음악을 하는 무명 가수들이 자신의 음악을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그 프로를 참여한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런 동일한 마음이 나에게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시즌 1에서 이승윤 가수(1위 가수. 아, 순위를 매기는 게 싫다면서 순위를 말하고 있는 이중적인 나의 모습)가 했던 말, 싱어게인에 출연하게 된 계기가 마지막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사력을 다하고 그래도 안되면 그만두려고 했다는 말이 너무도 와닿았다. 뮤지션이 들어주는 사람 없이, 내 음악의 팬이 없이 음악을 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많은 사람들에게 음악을 들려줄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는 것은 마치 천운과 같다는 걸 나도 지금껏 많이 느꼈기 때문이다. 아무도, 이름을 모르는 가수의 공연을 찾아가지 않는다. 그저 티브이에 나온 가수가 유명한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하게 되고, 탑 100에 있는 곡이 좋은 곡이구나라고 무의식 중에 판단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싱어게인의 또 다른 좋았던 점 한 가지는 그곳의 심사위원들은 참가자들에게 조금 먼저 그 길을 간 선배로, 같은 가수로 생각하고 진심을 다해 피드백을 해주는 모습이 참으로 좋았다. 그런 진심이 담긴 조언들을 통해 자기 음악에 대해 더 고민하는 가수들을 보면 다음 무대가 기다려졌다. 내 음악만 하다 보면 주변이 잘 안 보이거나, 자신을 객관화할 수가 없어서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 어떤 부분을 신경 쓰면 더 멋져 보일 수 있는지 길을 잃을 때가 많다. 그래서 어떤 게 내 매력 포인트인지 잘 모르는 뮤지션들에게 그 포인트를 알려준다는 것은 참 좋은 길잡이가 되어주었을 것 같다.
물론 싱어게인에서도 여전히 그들을 1등, 2등으로 순위를 나누었고 그건 여전히 싫었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공부도 1등이 있어야 하고, 시험도, 각종 콘테스트도 순위가 있는 게 당연한 우리나라에서는 1등을 뽑는 방식을 아예 없앨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1등이 사라지면 프로그램의 극적인 요소도 덜 하겠지 하고 생각하며 동시에 나도 이 대한민국 음악문화에 조금은 적응한 걸까 하는 씁쓸한 생각도 든다. 1위가 된다는 것은 그만큼 더 많은 이들이 좋아한다는 뜻이니까, 많은 사람들이 내 음악을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면 많은 이들의 취향을 이해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음악에 정답이라는 것은 없지만, 유행과 대부분의 취향이라는 것은 존재하니까 말이다.
저 가수들의 마음은 어떠한 걸까, "무명"이라는 타이틀로 나오는 마음은 어떠할까. 그리고 그렇게 티브이에 출연한 후에 달라진 대우를 느끼면서 그저 좋기만 할까? 혼란스럽지는 않을까? 기회가 주어져도, 주어지지 않아도 나는 하던 것을 할 뿐인데. 그렇다면 대체 기회라는 건 뭘까? 나는 나 스스로 어떤 마음의 태도로 나를 대하는가? 나에게 기회가 주어지던, 그렇지 않던 나는 나를 똑같이 대할 수 있을까? 나의 음악과 대중이 좋아하는 음악 스타일은 어떻게 적당히 섞어서 좋은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이게 싱어게인을 보며 하게 된 생각들이다. 여전히 답을 알 수 없는 질문들만 가득하지만 예술이라는 것은 정답이 없음에 그 매력이 있으니,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고 천천히 최선의 답을 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