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지것이 바라보는 섬사람

by 에린하

제주는 단순히 ‘지방’이라는 말로 묶기에는 분명히 다른 결을 가진 곳이다. 한 달 살기 유행이 있을 정도로, 누구나 한 번쯤 살아보고 싶다고 말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고 자란 곳이 아닌 이상, 어디든 마찬가지겠지만 선뜻 내려와 살아보라고 권하기는 어렵다.


이른 봄이 시작되는 3월 말부터 10월까지, 제주는 일교차가 크지 않고 대체로 따뜻하다. 차로 조금만 나가면 바다와 숲이 있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자연 속으로 스며들 수 있다. 이 시기의 제주는 그 자체로 사람을 느슨하게 만들고, 머무르고 싶게 만든다. 하지만 10월 중순이 지나면서 분위기는 급격히 달라진다. 매서운 바람과 짧아진 해가 일상을 잠식하여 야외 활동은 눈에 띄게 줄어든다.


나는 일부러 11월, 그러니까 제주 생활이 가장 쉽지 않은 시기에 이곳에 왔다. 날씨가 주는 행복에만 기대다가 겨울이 오면 더 크게 흔들릴 것 같아서, 미리 그 계절을 겪어보자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제주의 겨울은 단순히 춥기만 한 계절이 아니었다. 유독 외로웠다.


이미 제주에 지인이 있어 주말이면 사람을 만날 수 있었지만, 흔히 말하는 ‘동네 친구’는 없었다. 학교를 같이 다녔거나, 오랜 시간 함께 일하며 자연스럽게 이어진 관계도 이곳에는 없었다. 일상적으로 기대어도 괜찮을 관계의 부재가 겨울의 공허함과 맞물려 더 크게 느껴졌다.


다행히 사무실에서는 좋은 동료들을 만나, 일에만 파묻히지 않는 적당히 즐거운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형성된 관계의 고리 안으로 들어가는 일은 쉽지 않다. 가벼운 인간관계라면 러닝 크루나 취미 모임을 통해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 ‘일’을 하며 기반을 만들어가는 문제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사업이 안정되기 위해서는 결국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이곳에서는 특히 그렇다. 동네 친구가 하는 곳, 학교 선후배가 하는 곳이라면 일부러라도 찾아가 소비해 주는 것이 자연스러운 정서다. 도시라고 다르지 않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선택지가 많은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


굳이 이 지역 사정을 잘 모르는 외지인이 운영하는 곳을 찾기보다는, 한 다리 건너 아는 사람이 하는 곳으로 발길이 향한다. 시장 자체가 좁다 보니, 서비스의 미묘한 차이를 비교하기도 쉽지 않다. 서울처럼 경쟁 속에서 차별화를 고민해야 하는 환경과는 또 다른 구조다. 어떤 면에서는 경쟁이 덜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외지인이 끊임없이 유입되고 떠나는 곳이기에, ‘육지 사람’과 ‘제주 사람’을 구분하는 일 또한 자연스럽다. 도시처럼 관계가 느슨한 구조가 아니다 보니, 누가 누구의 친구이고, 언제 결혼을 했고, 그 배우자가 누구의 동생인지까지 어렵지 않게 알게 된다. 애써 알려고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공유되는 정보들이다.


익명성이 보장되던 도시에서의 삶과 달리, 이곳의 삶은 어딘가 더 노출되어 있고 밀도가 높다. 그래서인지 여전히 낯설고 어색한 순간들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이곳에 완전히 속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애초에 의지만으로 해결될 문제도 아니고, 시간이라는 과정이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마음조차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


도시에서는 내가 아는 사람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었고, 그만큼 나는 나를 적당한 선까지만 드러내면 충분했다. 그 이상을 요구하는 관계도 드물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런 ‘적당한 거리’가 오히려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누구나 어느 정도는 쓰고 살아가는 가벼운 연극들이, 이곳에서는 어색하고 불필요하게 보인다.


나는 여전히 이곳 사람들의 눈에는 ‘육지 사람’일 것이다. 그 경계 역시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선이 또렷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싫지만은 않다. 완전히 속하지도, 완전히 분리되지도 않은 그 상태가 지금의 나에게는 오히려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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