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되고 싶었던 아이
보컬 수업을 듣고 있던 강의실에 스피커 볼륨을 낮춘 듯 갑자기 정적이 흘렀다. 선생님께서는 하얀색 칠판에 큼지막하게 몇 가지 단어를 적어 내려갔다.
‘하고 싶은 것’
‘하기 싫은 것’
‘돈을 쓴다’
‘돈을 번다’
우리는 한참 동안 아무 말없이 멀뚱멀뚱 칠판만 바라보고 있었다. 침묵이 흐른 후 선생님께서는 약간의 미소와 함께 나지막이 말씀을 이어가셨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간단해. 아마추어는 하고 싶은 것만 하지. 프로는 하고 싶지 않은 일도 해. 프로는 돈을 벌고 아마추어는 돈을 써. 그게 차이점이야. 아마추어처럼 굴지 마. 프로답게 해라.”
‘프로가 된다는 게 정확히 어떤 의미일까?’
그 순간 ‘프로’라는 타이틀이 반짝반짝 빛나 보였다. 깊이 생각해 볼 계기가 없어서였을까? 당시에는 그 말이 치명적이고도 신선한 충격이자 풀기 어려운 숙제처럼 다가왔다. ‘그냥 단순하게 노래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부르면 되는 것 아닌가?’ 이제 갓 연습생이 된 나에게 ‘프로’라는 개념은 생소하고도 낯선 개념이었다.
살을 안 빼면 데뷔할 수 없어
비록 신생 기획사였지만 아낌없는 투자를 약속했기에 나는 함께 하기로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룹의 콘셉트가 바뀌기 시작했다. 연습생들이 하나둘씩 늘어나더니 어느새 7명이 되었고 점점 춤과 비주얼의 비중이 미친 듯이 커지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보컬 퍼포먼스에 필요한 기본기를 배우는 줄 알았다.
다른 연습생들은 동작을 한 번 보면 바로 빠르게 따라 하고 흡수해 나갔지만 거울 속의 나는 항상 진도를 따라가기 바빠 버벅대고 있었다. 춤이라곤 초등학생 때 즉흥으로 막춤을 춰본 기억밖에 없던 나였다. 처음 접해보는 몸의 표현이었기에 거의 모든 동작이 어색하고 서툴렀다. 몸이 기억하고 있는 길이 없으니 새롭게 익히는 건 어려운 게 당연했다. 어느 정도 숙련이 된 뒤에는 느낌이나 감각을 살려내는 것은 곧잘 했지만 동작을 완전히 체화하기까지는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그래서 늘 남들보다 배로 연습해야 했다.
매주 혹은 매달 정기적으로 다양한 평가가 있었다. 그중에는 체중도 포함됐다. ‘살을 빼야 데뷔도 가능하다’는 말에 최선을 다해 나 자신을 갈아 넣었다. 단단한 몸을 만들겠다고 식단을 지켰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냄새나는 지하 연습실과 헬스장을 오가며 연습과 운동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몸을 다듬는 것에만 몰입했다. 이 모든 과정이 결국 좋은 경험이 되어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내뱉는 말 한마디, 시간 약속, 일을 대하는 태도까지 모든 면에 영혼을 담아 치열하게 임했다. 점점 변화하는 나를 본 친구들은 진로에 대한 확신이 없어 방황할 때면 내게 상담을 요청하곤 했다. 더 빨리, 더 많이 빼겠다고 기를 썼다. 혹독하게 살을 빼는 것이 가수로서의 당연한 예의이자 태도고 임무라고 세뇌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감량한 몸을 잘 유지했을까? 너무도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삽질을 반복해야 했다. 그저 참고 견디며 감량과 요요의 빌어먹을 악순환을 반복했다. 그럴 때면 이게 다 프로가 되는 과정을 걷고 있는 것이라며 또다시 스스로를 위안했다. 살을 빼는 것은 프로가 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숙명이라고 말이다.
돈값을 해, 네 열정을 증명해 봐
직장에서 업무로 지친 사람에게 그 정도 힘든 건 배부른 소리니 그만 징징대고 돈값이나 하라고 하면 과연 어느 누가 기분이 좋을까? ‘No pain, No gain’이라는 말이 있다. 고통 없이는 얻을 수 없다는 말이다. 맞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목표를 정하고 꿈을 향해 전진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다. 아주 중요하다. 그러나 미친 듯이 악에 받쳐 완벽만을 좇는 것은 결국 내 삶 이곳저곳의 균형을 깨트렸다. 그때는 몰랐다. 결핍에서 비롯된 독기는 또 다른 결핍을 낳는다는 것을.
‘연예인은 대중의 관심을 받고 돈을 버니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라는 말을 들을 때면 허탈감이 밀려오곤 했다. 나는 심지어 수년간 열정 페이로 일했다. 좋아하는 일만 하며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고통스러운 일만을 감내하는 것이 좋은 프로가 되는 길은 아니라고 본다. 그들도 결국 사람이다. 고통의 역치는 모두에게 다 다르다. 누군가가 내게 돈을 제공한다고 해서 내 영혼과 감정까지 모두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 우리는 자신의 몸과 감정, 시간을 최우선으로 보호할 권리가 있다.
고통스러운 프로와 행복한 아마추어
우연히 한 작가님의 북콘서트에 참석하게 된 적이 있다. 내 이야기를 담아 신청했는데 운이 좋게도 당첨이 됐다. 그 당시 나는 폭식증을 극복하는 중이라 살이 많이 쪄서 힘겨웠을 때였다. ‘걸그룹 때랑 너무 달라 실망하시면 어떡하지?’ 걱정 반 떨리는 마음 반으로 한 카페에 들어섰다. 그곳에서 나는 작가님을 포함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두 곡의 노래도 불러드렸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 많아 서먹서먹하기도 했지만 분위기는 조금씩 편안하면서도 흥겨워졌다. 그날 작가님은 본인이 발매한 음악에 맞춰 행복하게 노래를 부르셨다. 음정이나 박자에 연연하지 않고 그저 음악을 즐기시는 모습에서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났다. ‘아, 나도 예전에는 저렇게 노래를 참 좋아했었지.’ 또 다른 형태의 아름다움과 자신감을 발견한 순간이었다. 작가님은 내게 여러 권의 책을 선물해 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늘 완벽해야만 하는 프로보다 행복한 아마추어로 사는 게 저는 행복해요.”
기쁨과 평온이 가득한 작가님의 음성에는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단단한 힘이 실려 있었다. 그 문장은 단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 없던 나에게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었다.
고통스러운 프로가 될지 행복한 아마추어가 될지는 결국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행복한 프로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고통스러운 아마추어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인생이라는 여정 끝에서 무엇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오직 자신만이 선택할 수 있다. 그날 나는 완벽함과 성공을 위해서만 달려가는 대신 내 안의 유머를 잃지 않고 진정한 기쁨을 바라봐주며 살아가는 여유를 갖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