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욕적인 연습생의 시작
긴장감이 감도는 싸늘한 대기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뚜벅뚜벅 걸어가 문을 열자 일말의 기대도 없는 몸짓과 차가운 정적이 내 온몸에 스며들었다. 그들의 눈빛에서 나는 이미 답을 봤다. 노래를 시작하기도 전이었지만 그들의 표정에는 귀찮음이 덕지덕지 묻어나 있었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대충 하고 가요 한 곡과 팝송 한 곡을 불렀다. 비트만 있는 MR을 틀어 놓고 직접 쓴 랩도 했다.
이후 카메라 테스트 겸 사진 촬영이 이어졌다. 그들 앞에 가만히 서있는 나의 모습은 앞, 옆, 뒤, 사방에서 찍혔다. 그리고는 오디션이 끝나지 않은 듯 심사위원들의 볼펜이 종이 위로 빠르게 움직였다. 기준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A, B, C, D 등으로 등급을 매기는 듯했다. 땅! 땅! 망치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 순간 나는 정육점의 고기가 된 기분이었다. 오디션은 늘 떨리는 자리였지만 그 떨림 속에서도 그날만큼은 뭔가 다를 거라 생각했다. 그 소리가 들려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들이 내뱉은 깊은 한숨 소리와 귓속말을 듣자 내 기대는 처참히 부서져 내렸다. 그 기억을 말끔히 지우는 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필요할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너 어디 나가 있다가 왔니? 왜 그렇게 얼굴이 벌겋니? 떡집에서 알바해서 그런가? 촌스러워 보인다?”
“몸무게 몇이에요? 가수.. 하고 싶어요?”
“엄마 옷 입은 거예요?”
당시 나는 뚱뚱하지도 마르지도 않은 전형적인 보통의 체격이었다. 수능을 마친 후 평소보다 살이 좀 붙긴 했지만 지극히 평범한 K-여고생의 모습이었다. 또 노래를 부르는 순간만큼은 누구보다도 행복한 소녀이기도 했다.
“58?... 56?.. 쯤일걸요..? 하하”
나는 멋쩍게 웃으며 태어나 처음으로 만천하에 몸무게를 공개했다. 속은 썩어 문드러졌다. 또다시 볼펜이 빠르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너무도 굴욕적이고 수치스러운 순간이었다. 오디션장을 둘러보니 화려한 옷과 화장, 날씬한 몸매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다들 활기가 넘쳤다. 무채색 옷을 입고 고개를 숙인 채 걷는 나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의 분위기였다. 사람을 겉모습만으로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곳에서는 보여지는 것이 필수 조건이자 전부였다. 그날 오후 집으로 돌아온 나는 아무도 없는 거실에서 펑펑 울었다. 여자로서의 자존심을 타인의 손에 빼앗기고 돼지라는 낙인이 찍힌 기분이었다.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굴욕적인 연습생의 시작
총 3곳의 실용음악대학에 지원했지만 실기 시험에서 모두 처참하게 낙방했다. 가고 싶었던 기획사의 오디션은 물론이고 전 국민이 보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도 보기 좋게 탈락했다. ‘재수를 해야 하는 걸까?’ 잠시 고민도 됐다. 한편으로는 ‘앞으로 1년 동안은 다양한 경험을 하며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재래시장의 떡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결혼식 축가를 부르고 다녔다. 그러다 우연히 방음 부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제약 없이 연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비용 때문에 망설여졌지만 감사하게도 가족들은 내 꿈을 지지해 주었다. 어느 날 그 작은 부스 안에서 녹음을 하고 있는데 전화가 울렸다. 고등학생 때 잠깐 다녔던 보컬 학원의 선생님으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옛날에 학원에서 내가 참가했던 작은 공연 영상 하나를 기획사 관계자가 좋게 봤다는 이야기였다.
“우영아. 신생 기획사에서 오디션이 열리는데 한 번 와서 해보는 게 어떻겠니? 네 영상도 좋게 보셨나 봐. 이런 기회가 흔치 않으니 한 번 도전해 봐. 벌써 합격한 다른 친구들은 이미 데뷔조 트레이닝을 받고 있어.”
‘관계자분이 내가 노래하는 모습을 좋게 봤다고?‘
처음 그 소식을 듣자마자 나는 가슴이 두근두근거렸다. 공들였던 그날의 무대가 어렴풋이 스쳐 지나갔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동대문까지 가서 옷을 고르고 준비했던 기억이었다. 머리는 깔끔하게 포니테일로 묶었고 평소에는 하지도 않던 짙은 스모키 화장까지 하며 나름 작전을 짰었다.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며 느꼈던 흥분과 떨림이 다시 떠올라 혼자 피식 미소가 지어졌다.
하지만 선생님의 달콤한 제안에 나는 선뜻 ‘할게요!’라는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한껏 멋지게 꾸미고 자신감 넘치는 공연을 마쳤던 그날. 그렇게 공들였던 무대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나는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여 텅 빈 눈으로 표정 없이 걸었다. 공연에 참가했던 다른 사람들은 저마다 하나둘씩 친구나 가족들과 함께 웃으며 어디론가 돌아갔는데 나는 혼자였다. 날 보러 와준 친구들도 있긴 했지만 다들 바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 텅 빈 집에 돌아왔을 때 무대 아래에서 나를 향해 소리 지르며 환호해 준 사람들은 없었다. 예쁜 화장을 하고 멋진 옷을 입은 채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박수갈채를 받다 적막이 감도는 집에 홀로 덩그러니 남겨지니 마음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허전했다. 보이지 않는 그 공허함과 허무함에 압도되어 나는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감정들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라 한참을 끙끙대다가 바닥에 엎드려 엉엉 울었다.
전속 계약을 향한 도전
노래를 부르는 것은 좋아했지만 가수는 생각지도 않았다. 셀러브리티들의 삶에는 어딘가 어두운 기운이 감도는 것 같았다. 유명해지면 사생활도 존중받지 못할 것 같았고 왠지 모르게 먹는 것을 포기해야 하는 직업처럼 보였다. 게다가 떡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자연스레 떡을 자주 먹었더니 평소보다 장난꾸러기가 되어있었다. 공연 영상 속의 날씬했던 나와는 거리가 멀었기에 살이 쪄 있는 나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가수라는 직업은 당시 나에겐 연예인과 같은 존재였다. TV 앞에 서려면 자신의 끼나 장점을 남다르게 드러낼 줄 알아야 하는데 사실 나는 그런 것을 잘하지 않는 성향이었다. 그래서일까? 가수라는 길이 나에게는 잘 맞지 않는 옷처럼 느껴졌고 오디션을 보러 갈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음악을 듣는 것이 즐거웠고 무엇보다 노래를 부를 때 행복했다. 무대가 끝난 뒤 혼자 남겨진 방은 싫었지만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것은 여전히 좋았다.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었다. ‘1년 동안 다양한 경험을 해보자’고 했던 나와의 다짐을 떠올렸다. ‘그래, 다시 한번 부딪혀보자.’ 그렇게 다시 오디션장으로 향한 것이다. ‘살이야 빼면 되지 뭐!’라고 생각하니 발걸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지금이 어떻든 간에 무엇이든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도전하면 된다는 각오와 열정이 샘솟았다. 그때의 나는 살이 쪘다는 이유로 나를 탓하지 않았다.
빠르게 움직이던 심사위원들의 볼펜과 찰칵찰칵 울려 퍼지던 카메라 셔터 소리가 멈췄다. 오디션이 끝났음을 알려주는 순간이었다. 결국 ‘살’ 때문에 7년 전속 계약이 아닌 단기 연습생 계약이라는 찝찝한 합격을 거머쥐었다. 나의 꿈과 재능이 고작 체중으로 평가받고 있다는 현실이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그 몇 킬로그램은 단순한 몸무게가 아니라 나의 가능성과 열정 그리고 미래까지도 옭아매는 족쇄 같은 존재였다. 그렇게 첫 소속사에 발을 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