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맛있는 스페인

라이킷 3 댓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여행하는 기획자 Apr 12. 2019

마드리드에서 하몽! 하몽! 하몽!

메르카도 하몽 이베리코 (Mercado Jamón Ibérico)

스페인 친구에게 하몽을 사기 위한 장소를 추천해 달라고 하면 누구에게 선물 할 것인지를 먼저 묻는다. 하몽의 종류가 워낙 다양해 3000원짜리 싸구려 하몽부터 수백만 원짜리 최고급 하몽까지 다양하기 때문이다. 하몽은 돼지의 종류, 숙성 정도에 따라 비용이 천차만별이다. 가족에게 선물할 하몽이라고 이야기 하자 가격대도 합리적이면서 맛있는 것으로 유명한 ‘메르카도 하몽 이베리코’를 추천해준다.

산 미구엘 시장을 나와 왕궁으로 가는 길에 ‘메르카도 하몽 이베리코’가 보인다. 외관 타일에 크게 하몽이 그려져 있어 멀리서 봐도 하몽을 파는 가게임을 알 수 있다. 타일에 새겨진 하몽 그림이 워낙 감각적이어서 스페인 사진을 찾으면 이곳 사진이 나올 정도이다. 눈에 띄는 하몽가게를 그냥 지나치기 아쉬워 길을 건너 가게에 들어가 보았다. 여느 하몽 가게처럼 수십개의 하몽이 대롱대롱 매달려 숙성되고 있다. 숙성되는 냄새가 다소 역하기도 하지만 구경을 하다보면 금새 냄새가 적응된다. 하몽은 돼지 뒷다리를 바닷소금으로 절인 뒤 그늘에서 2~5년 동안 숙성을 시키면 더욱 품질이 좋아져 하몽을 전문적으로 파는 가게나 바에서는 이렇게 천장에 메달아 숙성을 시키곤 한다.

스페인의 전통 햄 하몽도 종류가 다양하다. 흔히 우리가 하몽과 한 단어처럼 붙여서 기억하는 ‘이베리코’는 스페인 북부 살라망카 지역에서 기르는 흑돼지 품종이다. 잡종이나 백색 돼지에는 ‘이베리코’라는 단어를 붙여 쓸 수가 없다. 물론 가격도 ‘이베리코’ 돼지에 비해 훨씬 저렴한 편이다. 메르카도 하몽 이베리코에서 파는 하몽에는 이베리코 돼지만을 사용했다는 마크가 모두 새겨져있다.

워낙 스페인 사람들이 사랑하는 음식인만큼 '이베리코 돼지'에서도 또 등급이 나뉜다. 이베리코 하몽 중 가장 등급이 높은 것은 벨로따(Bellota) 등급으로 취급한다. 벨로따는 스페인어로 ‘도토리’라는 뜻으로 '도토리만 먹고 자란 이베리코 돼지'라는 의미이다. 이 벨로따 등급의 하몽은 맛도 훌륭하지만 비린내나 누린내도 안 나는 것으로 유명하다. 비린내가 나지 않는 하몽일수록 고품질이며 가격도 비싸진다. '메르카도 하몽 이베리코'에는 벨로따 등급의 하몽을 취급하는 곳이라 곳곳에 도토리 그림도 그려져 있다. 한 팩씩 포장이 된 채 왼쪽 위에는 도토리 마크가 크게 붙어있다. 하지만 역시 최고급 등급일수록 가격은 쭉쭉 올라간다. 맛보고는 싶지만 가격때문에 살짝 망설이며 한 팩을 잡았다, 놓았다를 반복할때 가게 상인이 맛을 보라며 하몽 한 조각을 저며 건네준다. 아무리 돼지 품종이나 부위에 따라, 숙성 정도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고 하지만 이렇게 하몽이 고소할 수 있는지 처음 알게 되었다. 가끔 하몽을 맥주와 함께 먹으려 할때 맛보다 역한 향이 먼저 느껴질때가 많았는데 그런 역한 냄새가 나지 않았다.

하몽만큼이나 하몽과 관련된 식기구도 발전되어 왔다. 하몽을 먹기 위한 도구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대표적으로 하몽을 고정시키는 홀더가 있다. 어느 레스토랑을 가든 쉐프가 하몽의 발굽 부근을 안정적으로 홀더에 고정해 한점 한점 얇게 저미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아주 얇게 저미기 위한 칼도 별도로 있고 얇은 한점, 한점을 옮기기 위한 별도 집개도 있을 정도이다. ‘메르카도 하몽 이베리코’는 실제로 이런 도구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옆에서 자세히 볼 수 있다.

한쪽 구석에는 간단히 맥주를 즐길 수 있는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다. 이미 ‘벨로따’ 하몽에 마음을 뺏긴 사람들이 다들 몇팩 하몽을 구매해 맥주를 한잔과 함께 먹으며 피로를 풀고 있었다. 시원한 맥주와 쫄깃하면서 고소한 하몽과 함께라면 어떤 피곤한 하루라도 꽤 기분좋게 마무리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 이 맛에 사는 것이지! 사는 게 뭐 별거인가?’ 입은 고소하고, 목청은 시원해지고 코는 벌겋게 익어가는 이 순간에 온몸으로 스페인 문화를 즐기고 있다는 사실에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