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행하는 기획자 Aug 18. 2023

공간 자체도 예술인, 남원 시립 김병종 미술관

남원시립김병종 미술관



여행 콘텐츠를 만들면서 외부 기관에서 강의를 할 일이 제법 생기게 되었다. 매주 한 번씩 금요일 저녁이 되면 어떻게 여행 콘텐츠를 만들 수 있었는지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게 되었다. 철저히 개인적인 방식과 경험이라 이런 것까지 공개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사소한 이야기도 많지만 참석하시는 분들의 궁금증을 최소한 해결하기 위해 아는 범위 내에서는 솔직하게 전달을 하려고 노력한다. 그중에서는 가이드북을 만들기 위해서는 하루에 대략 1000장 정도의 사진을 촬영하고, 이동을 하면서는 심심할 때 메모를 하거나 내용을 정리한다는 이야기를 전달하기도 한다. 이 방식이 모든 여행 작가들이 하는 정답이 아닌지라 말씀드려도 될까? 싶은 걱정도 되면서도 매번 강의를 할 때마다 솔직한 경험을 전달해야겠다는 다짐 때문에 솔직하게 내 방식, 내 경험을 전달한다. 그러다가 한 번은 이런 질문을 받았다.


"여행 다니시면서 취재를 하시고, 사진을 촬영하시면 진정한 여행의 즐거움을 못 느끼시는 것 아닌가요?"


질문을 받고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난감했다. 솔직한 심정으로 가끔은 여행을 하는 건지 노동을 하는 건지 가끔 나조차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즐거운 추억을 만들기 위해 여행을 하러 온 건데 왜 나는 더 매일마다 피곤한 건지 스스로 고민했던 부분도 분명 있었기 때문이다. 한동안 뜸을 들이다 생각을 정리해 대답하였다.


"여행에도 많은 종류의 여행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제 여행은 많이 채우고, 배우는 여행이었던 것 같아요. 채우는데 초점을 맞춘 여행이었기에 상대적으로 여유, 쉼은 없었던 것 같지만 이것도 여행의 다양한 면모라고 생각합니다." 


대답은 이렇게 했지만 집으로 오는 내내 계속 채우기만 한 여행을 하는 건 아닌지, 나한테 여행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하여다. 어떻게 보면 내 일상 자체가 빼곡히 채우려고 애를 쓴 게 아닐까, 천천히 느긋하게 생각하고, 사람과 사물을 관찰하고, 떠올리기보단 당장 코앞에 닥친 마감이 있었고, 마음은 늘 조급했기 때문이다.



남원 역시 음미하기보단 하나라도 취재하기 위한 여행이었다. 춘향전의 배경이 된 무대, 남원의 맛집, 카페들을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남원의 모든 정보들을 취재하고자 노력했다. 남원의 간판 '광한루'까지 취재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가려는 무렵 시간이 남아 취재 대상에 없던 '시립 김병종 미술관'을 찾아가게 되었다. 


광한루에서 제법 떨어진 위치에 미술관이 있어 '찾아오는 사람이 있으련가...' 싶었지만 그런 우려와는 별개로 공간의 첫 느낌은 우아하고 단정했다. '직선'을 우아하게 느꼈던 적이 언제였었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율동감이 넘쳤고, 무엇보다 자연과 어우러져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전체적으로 번잡하지 않고 미술품을 담는 공간답게 고고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남원 출신의 김병종 작가는 남원의 자연을 보면서 화폭에 그림을 남겼다고 한다. 미술관의 외관은 비움이 있다면 내관에는 채움이 있다. 김병종 작가가 기증한 작품 외에도 2천여 권의 인문학, 예술 도서가 충분히 비치되어 있어 지적 사유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작가가 북아프리카, 남미 등을 다니면서 어떤 색깔을 보고 어떤 장소에 머물렀는지 작가만의 시선을 담아 화폭에 남겼다. 해외를 다녔지만 그의 정체성은 남원 사람이기에 남원에서 구할 수 있는 색채, 재료를 활용해 그림을 그렸다. 70세까지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며 남긴 작가의 작품 약 400여 점은 그의 뜻대로 기증되어 이곳 '남원 김병종 미술관'에서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작품도 훌륭하지만 미술관의 건축물 역시 감각적이다.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중간에 휴식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놓았는데 미술관에서 주변을 내려다보는 풍경은 또 하나의 예술 작품을 엿보는 것만 같다. 산, 정원, 예술이 한데 어우러져 장소를 감상하는 사람의 감정에 따라 공간의 해석은 얼마든지 자유롭게 할 수 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경사면을 따라 자갈 호수를 조성하고 있다. 물 위에 은은하게 건물과 산, 나무, 구름이 비쳐 공간을 투영하고 있다. 투영되고 있는 모습을 들여다보면 잠시 현실에서 벗어나 조용한 공간에서 자연과 예술을 마주하며 현실을 복기하고 숙고하게 된다. 


미술 작품을 보는 이유는 나를 직시하고 싶어서 결국은 내가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일 테다. 때론 위로를 받고 싶고, 때론 어두운 마음을 비워내고 싶어서, 아름다움을 느끼며 나도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어 예술을 감상한다. 인간은 감정적으로 아름다운 것에 끌리고, 감정적으로 다가간다. 미술 작품 저마다 심미적 가치가 있다. 여러 미술작품을 한꺼번에 모아놓는 미술관의 역할은 무엇일까? 공간이 갖추어야 할 심미성과 기능성은 어떠할까 생각해 보았다. 결국 공간 자체가 나를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 장소가 내 마음에 영감을 불러일으켰던 이유는 절제된 공간 안에 숲, 바람, 사람 등이 조화를 이뤄 사유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기 때문이다. 


남원은 춘향전의 모태가 되는 도시이다. 어찌 보면 춘향전은 수백 년간 이어져내려 오는 우리나라의 고전문학이다. 수백 년간 사랑을 받는 작품들은 시대를 관통하는 생각거리를 던져주는데 내가 사랑하는 공간 역시 내 사유가 끼어들 틈이 있는 공간들이다. 김병종 미술관 역시 공간의 기능적 역할을 충실히 하면서 충분히 공간을 탐미하고,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절제된 아름다움과 비움, 자연과의 조화로 사람들에게 빽빽한 채움이 아닌 여유를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춘향전처럼 수백 년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사유할 수 있는 힘을 전달하기를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책러버들의 성지, 삼례 책마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