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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 기획자 Jun 27. 2023

영감은 평온한 가운데서 온다

강원도 고성 바우지움 조각 미술관에 가다  

사용자 경험을 전공하면 의료, 제조업, 유통업 등등 다양한 산업체와 함께 산학 경험을 할 일이 있었다. 그중 나는 불편했던 병원 경험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기획자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병원을 별로 가본 적이 없던 내가 병원 경험을 바꾼다는 자체가 말이 안 되었지만 교수님과 학생들에게 민폐는 끼치고 싶지 않아 꾸역꾸역 조사를 하며 과제를 수행했던 기억이 난다. 그로부터 약 10년 뒤 엄마가 갑자기 편찮으시면서 병원에서 잠깐 생활을 하게 되었다. 제3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병원과 내가 직접 경험한 병원의 모습은 너무도 달랐다. 시끄럽고, 분주했다. 나만 이런 감정을 느낀 지는 모르겠으나 병원을 입장하는 순간 두려운 감정이 깊숙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었다. 나를 위로한 건 딱 2가지 밖에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환자였던 엄마 자체가 반대로 내가 위로가 되었고 잠깐 맛볼 수 있었던 자연 풍경이었다. 자연풍경이라고 칭하기도 애매한 하늘과 듬성듬성한 수풀이었지만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던 공간이 좋았다. 



내가 몸소 병원에 있으니 사용성을 개선해야 할 점이 백가지가 넘을 정도로 많았다. 학생으로 과제를 접하거나 일을 할 때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았던 개선 포인트였었다. 환자를 깨우는 방식, 침대를 조절하는 방법, 길을 찾는 동선 등 모든 것들이 개선하고 기획할 과제로 보였다. 병원 생활을 하는 당시에는 정신이 없다가 잠깐 엄마랑 이야기를 하거나 외출을 하며 하늘을 바라볼 때 희한할 만큼 '왜 그동안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인 경험과 장소가 주는 위안, 혹은 잠깐의 휴식이 맞물릴 때 영감은 시작된다. 나는 늘 그렇게 믿고 있다. 장소는 힘이 있어 가끔 나의 마음까지도 변화시킨다. 아름답고 온화한 장소에 가면 그 온화한 기운이 나에게까지 전달되고, 맑은 장소에 가면 맑은 마음이 깃들게 된다. 뭐니 뭐니 해도 나의 마음을 가장 잘 보듬아주는 장소를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소는 다름 아닌 강원도 고성에 있는 '바우지움 조각 미술관'이다. 좁디좁은 진입로를 통과해야만 겨우 다다를 수 있는 공간이지만 시원한 바다, 정적이고 고요한 공간, 감정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조각이 있어 마음은 평온하게 만든다.



독특한 이름을 지닌 바우지움 조각 미술관은 '돌'을 의미하는 강원도 사투리인 '바우'와 미술관을 의미하는 뮤지엄을 합쳐 만든 이름이다. 한때 채소를 경작하던 5000여 평의 땅에 이름처럼 다듬어지지 않은 투박한 돌담이 드리워져 있다. 돌로 만든 미술관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바우지움 미술관은 독특한 건축 디자인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장소이다. 미술관이 터를 잡은 장소는 예로부터 바위가 많은 지역이었는데 동네에 깔려있는 돌들과 공사장의 돌들을 모아 투박한 돌담을 만들었다. 애써 다듬지 않은 돌들을 무심히 드러낸 돌담을 넘어 미술관 안으로 들어가면 잘 다듬어진 조각품들의 전시가 이어진다. 




근현대 조각가들의 작품들이 한데 모아진 장소는 매끈한 곡선이 섬세하게 다듬어진 조각상들을 40여 점 볼 수 있다. 사람들 주제로 한 조각상들은 얼굴의 표정, 행동들이 구체적이게 드러나있다. 투박한 돌이나 시멘트로 사람의 율동감이 어쩜 이렇게 잘 표현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조각마다 묘사되어 있다. 근현대 조각상이 있는 공간은 통유리창으로 이뤄져 있어 자연스럽게 야외 조각미술관과 설악산 자락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근현대 조각 미술관을 지나 밖으로 나오면 거대한 야외 미술관이 이어진다. 약 7만 평이 되는 거대한 정원 위에 꽃과 나무, 광활한 초원이 조각과 한데 어우러져 특별한 멋을 만들어주고 있다. 조각 자체도 훌륭하지만 조경 역시 잘 꾸며져 있어 천천히 걷다 보면 온전한 휴식을 느낄 수 있다. 천천히 조각을 감상하고 정원을 거닐면서 자연을 그대로 느끼는 여유를 얼마든지 만끽할 수 있다. 미술관에 들리는 사람마다 취향에 따라 휴식을 취하는 방식도 제각각이다. 누군가는 천천히 거닐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누군가는 사진을 찍으면서 추억을 박제한다. 어떤 방식이든 미술관은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마음의 여유를 느낄 수 있도록 영감과 자극을 제공하고 있다. 



이곳을 만드신 관장님의 전시까지 감상하고 걷다 보면 아트스페이스와 카페테리아가 나온다. 아트 스페이스에서는 분기별로 한 번씩 기획 전시를 진행한다. 주로 저명한 조각가의 작품 전시를 하는데 공간 자체도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조성하고 있다. 미술관 정가운데 작은 도랑을 만들어 수중 식물이 살아 숨 쉴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자연채광을 그대로 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 공간 자체도 하나의 예술품과 같다. 카페테리아에서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는 순간마저도 예술 같은 휴식을 선사해 마음이 평온해진다.



상황에 따라 누구나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병원에서의 시간은 마주하고 싶지 않은 시간들이었지만 내가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소중한 사람이 힘을 냈었고, 자연을 볼 수 있는 공간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의도적으로 쉴 수 있는 아름다운 공간을 찾아가는 이유 역시 퍽퍽한 생활 속에서 잠깐의 위안을 얻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투박하고 거친 돌로 아름다운 경치를 만들어내듯 투박한 일상 속 어딘가를 예쁜 공간 안에 들어가 다듬고 어루만지다 보면 내 삶도 하나의 조각품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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