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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수현 Feb 02. 2021

모든 예비살인자를 위해서: Extraction

프로 살인자 햄식이의 넷플릭스 살인 일기

  몇 년 전 EBS 강사가 '군대는 살인을 배우는 곳'이라는 말을 해서 굉장한 이슈가 된 적이 있다. 본인이 보기에 맞는말이라 그렇게 말했겠지만 살인이 목적이 아닌 불가피한 수단으로 활용되는 현대의 국방체계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말임은 물론, 국가공인 노예제도 a.k.a 군 복무를 강요받는 대부분의 대한민국 남성들에게 큰 상처가 되었던 말이다. 그 발언이 더 상처였던 이유는 결국 군대에서 배우는 것들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은 살아남아 적의 생명을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빼앗는 기술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때문에 나는 전쟁영화를 꽤 선호하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총이 등장하고 군인이 누군가를 쏴 죽이는 장면에서 순간순간 군생활의 트라우마가 되살아남을 경험한다. 직접 전쟁을 경험하진 못했지만 같은 상황에서 똑같이 행동해야할 의무와 책임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나의 군생활을 함께한 모든 사람들, 그리고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모든 군인들을 보면 항상 묘한 기분에 휩싸인다. 잠재적 살인자 혹은 작품 안에서 확정적 살인자인 그들은 당연히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있고 예정된 살인에 대해 정당화를 하기 위해 애를 쓴다. 탓할 생각은 없다. 나부터도 전시 상황이 되면 징집되어 무기를 들고 국가 수호를 위해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물론 지킨다는 이름으로 포장된다) 그러기 위한 많은 지식과 기술들을 2년남짓한 시간동안 배웠다. 하지만 많은 진실들이 그렇듯 알지 않아도 좋았을 것들도 분명 존재하니까.


  이런 맥락에서 익스트랙션이라는 영화는 어찌 보면 참 공감대를 얻기 힘든 영화이다. 크리스 햄스워드, 햄식이, 토르 등으로 불리는 이 배우는 작품 안에서 림프종으로 6살 아들을 잃은 전직 해병이다. 그냥 해병은 아닌지 전투기술과 상황판단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 방글라데시의 한 도시를 혼자서 쑥대밭으로 만들면서 미성년자를 제외하곤 무차별 살인을 일삼는다. 본인의 미션인 마약왕의 아들을 지키기 위해서.


  본인 아들의 죽음에 대해서 그렇게까지 집착하고 슬퍼하는 군인이, 그 많은 전쟁을 뚫고 살아 돌아온 군인이 어떤 경유로 용병이 되었는지 계속 의문을 품었다. 답은 생각보다 아주 간단히 제시된다. 첫째, 배운게 도둑질이라. 둘째, 죽고 싶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살아남기 위한 본능에 휩싸인 몸을 멈추지 않아 도리어 수많은 사람들을 죽인다. 죽임당하는 이들에는 경쟁 마약조직원들도 있지만 그와 결탁한 현지 경찰과 군인들도 대다수 포함되어 있다. 작품 안에서 어떻게든 해명 혹은 해법을 제시하리라 생각했지만 사실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들을 투영시킨 미션목표를 보호하기 위해서라곤 하지만 흘려버린 피가 대충 영화 아저씨나 존윅시리즈에 버금가는 학살극. 모두의 손에 피를 묻히고 그 피를 아무렇지 않게 지나칠 수 있는. 어쩌면 최근 몇 년간 가장 잔인한 영화. 익스트랙션, 살인자를 위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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