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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바닥 Aug 24. 2023

그림작가이지만, 전시를 쉬기로 했습니다.

목적지를 알지 못한 채, 도착하면 실망만 있을 뿐이다.

글을 안 쓰는 사이, 나는 사실 다른 분야의 작가가 되었다. 그림을 그려서 인스타에 올렸고 NFT로 등록했다. 그리고 단체전에 초대받게 된다. 그렇게 나는 또 다른 작가가 됐다. 그림을 그렸다. 중학교 입시 미술 이후 이렇게나 열심히 그림을 그려본 건 처음이었다.


그렇게 3차례의 단체전을 더하고, 거기에 개인전까지 열게 된다.


내 실력에 전시는 너무 이른 거 아냐?라는 생각이 불현듯 마음을 흔들곤 했지만, 당장 잡힌 전시 일정을 소화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전시를 많이 한 것치곤 한 장의 그림도 못 팔았다. 그야말로 작가는 작가지만, 허울만 있었다. 그래도 좋았다. 어딘가에 내 그림이 걸리고, 누군가 내 그림을 감상한다는 건 이루 말할 수 없는 성취감을 선물했다.


1년 동안 그림을 그리는 족족 새로운 전시장을 찾아 헤맸다. 


집에 액자가 쌓이다 못해 베란다를 가득 채웠다. 그제야, 팔리지 않는 그림이 얼마나 쓸모없는, 예쁜 쓰레기(라고 쓰지만 좀 씁쓸하다)인지 알게 됐다.


올해는 전시를 쉬기로 했다. 그림 스타일도 정비하고, 내가 원하는 작가의 모습은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어찌 보면 무작정 달려왔다. 주어진 기회가 흔치 않다고 생각해, 방향과 갈피를 정하지 않은 채 멀리 가겠다고 악셀만을 밟았다.


정확한 목적지 없이 출발한 길은 가도 가도 끝이 없다. 또, 잘 가고 있는지 조차 알 길이 없다. 


'운전수인 내가 길을 모르는데 남들이라고 알까'


목적지가 없이 길을 나서는 건 무작정 에너지를 소비하기 위해 뛰는 것과 같다. 기름값이 비싼 이 시기에, 의미 없는 소모전을 줄이기로 마음먹었다. 에너지를 아껴 내 몸값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찾기로 했다.


베란다에 그림이 가득 차, 포만감을 넘어서 더부룩할 정도였지만 어쩐지 마음은 체기가 가라앉은 듯 편안했다. 가끔은 이렇게 단호하게 멈춰서, 목적지와 길을 정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내가 가진 그림과 작은 재주로 폰케이스를 만들었다. 생각보다 인쇄가 잘 입혀져, 너무나도 만족스러웠다.


마치 내가 걸어다는 전시장이 된 기분이었다. 출근하자마자 옆자리 선임님께 폰케이스 자랑을 했다.

 

내 그림으로 만든 거라며 말이다.



이렇게 잠시 쉬며, 그림으로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고민하고 정확한 방향을 정해야겠다. 


운전수가 길을 모르면, 그럼 그 누구도 도착지를 알지 못한다. 그 도착지가 운전수에게 만족스러울지 조차.




 그림은 인스타그램에서 구경하실 수 있어요:)

@the_blue_design2

https://instagram.com/the_blue_design2?utm_source=qr&igshid=MzNlNGNkZWQ4Mg%3D%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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