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게 한 없이 부족한 딸로 살아가기
디자이너 5년 차, 계약직에서 정규직으로 가장 빠르게 승진한 선임, 사내 아이디어 공모전 1등, 회사 내 하나뿐인 디자이너, 직장에서 나를 부르는 수식어였다. 아, 물론 긍정적으로만 봤을 때 말이다. 부정적인 수식어는 셀 수 없이 많아서, 브런치를 가득 채우고도 부족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디자인업계와 동떨어진 직장(금융계열)에서 나름대로 실력을 인정받으며 일해왔다. 20대에 입사해, 가장 빛나는 시절을 회사와 함께하고, 30대가 되었다.
'내가, 40살이 돼서도 이 회사에 있을까?'
20대 후반부터 꾸준히 해오던 고민은 답이 없었다. 지금 내가 다니는 회사엔, 내가 닮고 싶은 상사가 없었다. 물론, 다른 회사를 간다고 해서 닮고 싶은 상사가 당장 생길 만큼 인생이 낭만적이지는 않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최소한 나의 40대가 회사에 있는 사람들과 같다면 인생을 잘못 살고 있다고 느낄 것만 같았다.
30살이 지나고 31살이 됐다. 40살까지 남은 시간이 8년 하고 2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티비엔 성공한 사람들이 보인다.
'이래서 연예인 걱정은 하는 게 아니라고 그런 건가'
어릴 땐, 아빠가 연예인 흉을 보는 게 싫었다. 쟤들만큼 편하게 인생사는 애들 없다고. 내가 30대가 되어보니, 아빠의 저 말 속뜻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직장인으로 하는 사회생활엔, 내 것이 없었다. 빈껍데기로 살아가며, 남들 비위와 눈치를 맞추고 들어오는 월급을 날 위해 쓰기보단 미래를 위해 저축하는 삶. 살아가고 있지만 5평짜리 내 공간엔 모니터와 마우스, 컴퓨터 본체보다 더 쓸모 있는 인간이 되긴 너무 힘들었다.
20대 시절, 반짝반짝 빛내며 열심히 디자인을 했다. 회사에 꼭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었다. 낮은 직급과 계약직, 디자이너라는 이유로 회의에 들어가지 못해도 '내가 더 열심히 하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버티고 버텼다. 디자이너라는 직업 때문에 '100번 수정쯤은 군말 없이 해야 한다'라는 무시를 들을 때도 나는 꿋꿋하게 내 직업을 사랑하며, 최선을 다했다.
'부장님은 검정이 싫다고 하셨어'라는 브런치 글에 적었지만, 최근에 다이어리 디자인을 검정으로 정한 것 때문에 회사가 떠나가라 지르는 고함을 들었다.
"디자인에 무슨 검은색을 들고 와! 매출도 안 좋은데 검은색 들고 다니게 해서 상갓집이냐는 소리 나오고 회사 매출에 악영향 미치면 어떻게 책임질래?"
그동안 내가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해왔던 순간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고작 이런 소리나 들으려고 회사를 다니는 걸까. 그 이후 이어지는 회의배제에 결국 나는 회사에 퇴사를 통보했다.
마음이 쓰렸다. 지난 4년 8개월간 회사를 위해 투자한 인생이 아까웠다. 사실 몇 번이고 퇴사를 물리고, 부장님에게 찾아가 납작 엎드려야 하나 고민도 들었다.
'찾아가서 퇴사한다고 해서 죄송하다고 할까. 내가 너무 감정적이었다고 말할까'
퇴사를 앞두고 출근하는 며칠간, 계속 바닷속에 빠진 사람처럼 숨은 가빠지고 정신은 아득해졌다. 숨은 제대로 쉬어지지 않고, 판단력은 흐려져만 갔다. 그때마다, 40살이 됐을 때의 '나'를 떠올렸다. 저 부장처럼 안하무인으로 윽박지르며 직원을 대하는 내 모습이 보였다. 내가 꿈꾸던 40대는 완벽히 저런 모습이 아니었다.
최소한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갖고, 상대의 업무를 존중하며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 이 회사에선 그런 상사를 만날 수 없었다. 팀장은 부장님 몰래 3시, 4시쯤 집에 가버리곤 했다. 차장은 '필요하면 찾고, 결과물은 뺏어가고, 회의는 배제시키기' 바빴다.
그 안에서 내가 4년 동안 배운 거라곤, '일에 진심을 다하면 안 된다' 정도였다. 하지만, 내게 디자인이란 항상 진심일 수밖에 없는 직업이었다. 그래서일까, 부장의 저 검은색 발언에 그만 참지 못했다. 나는 회사에 좋은 영향을 주는 디자이너이고 싶지, 악영향을 주고 싶은 디자이너는 아니었다. 소신껏 퇴사를 말하고 (글 - 부장님, 저는 검은색으로 회사에 해악을 끼치려는 게...) 뒤돌아 섰다. 최소한 내가 디자이너로써 지켜야 할 자존심이라고 생각했다.
퇴사는 저질렀고, 짐은 택배로 붙였다. 최대한 빨리 퇴사를 하고 싶다는 의견이 받아들여졌다(다른 일처리는 느리면서 이건 빠르네). 10월 11일에 마지막 출근을 하고 퇴사를 하기로 했다. 퇴사를 말한 당일, 퇴근을 하고 야간대학원을 가지 않고 집으로 돌아갔다.
울먹이는 목소리와 부은 눈으로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나 퇴사한다고 했어"
설거지를 하던 엄마는 물을 끄고 잠시 황당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다음 회사는 정해졌어?"
엄마는 걱정되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아니...'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엄마는 별일 아니라는 듯 말을 이었다.
"괜찮아, 저녁밥은 먹었어? 밥 줄까?"
엄마가 차려준 밥을 먹으며 눈물을 삼켰다. 한 수저 먹으며, '맛있네', 두 수저 먹으며 '맛있네'를 연신 뱉었다. 내 죄송함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저것뿐이었다.
엄마는 사람이 살면서 '회사를 안 다닐 수 도 있다'며, 별일 아니라고 말해줬다. 뭉그러질 대로 뭉그러져 까매져버린 속이 흐르는 물에 그나마 잿빛으로 변해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아빠였다. 우리 집은 지독히도 가부장적인 집이었다. 아빠의 큰소리 한 번이면, 그게 법이 되고 질서가 되는 게 우리 집이었다.
그렇게 십 년이 넘는 세월을 한파 속에서 살았다. 어릴 땐 살얼음판을 만나면, 그나마 깨지지 않아 물에 빠지지 않는 평화라며 좋아했다. 지금은 약간의 흙이 덮여있는 땅이 됐다. 더 이상 춥지 않다고 하면 거짓이다. 아직도 나는 그때의 추위를 잊지 못하고, 지금도 그 흙이 없어져 얼음이 깨져버리지 않을지 두렵다.
아빠는 늘 회사에 순종하라고 말씀하셨다. 최선을 다해 일하라고, 부장님과 동료들의 말에 숙이고 잘 해 드리라고 그게 네가 살 길이라고. 생각해 보면 나는 미련하리만큼 이 말에 충실했다. 아빠는 늘 '나의 부족함'에 대해 말했고, 나는 그 부족함을 메꾸기 위해 노력해 왔다.
아빠는 내가 다니는 직장을 참 좋아했다. 적당히 번듯한 직장에, 사람들에게 이름을 대면 알만한 곳. 아빠는 부족한 딸이 턱 없이도 좋은 직장을 다니고 있다며 좋아했다. 아무리 좋은 직장을 가도, 내 부족함은 채워지지 않는 결핍 같은 거였다. 아무리 직장에서 인정을 받아도 '내가 잘해서' 라기보단 '부족한 딸을 잘 봐주는 윗분들이 좋은 사람'이어서 였다.
이런 아빠에게 퇴사를 말할 수가 없었다. 아빠에게 나는 부족할 딸이닌깐. 턱없이 좋은 직장에, 좋은 상사에게 부족한 딸이 잘못을 한걸테니 말이다. 아마 내가 디자이너로써 최소한의 존중조차 받지 못했다 말하면, 아빠는 그 조차도 내 부족함에서 발생한 일이라고 하실 거다. 아마 사표가 수리되기 전에 회사에 가서 잘못을 빌고, 사표를 물려오라고도 말씀하실게 뻔했다.
나도 알고 있다. 번듯한 성공을 하지도 않고, 근근이 월급으로 먹고사는 내가 얼마나 부족해 보이는지. 31살에 고작 5500만 원의 연봉. 제대로 된 차나, 집 한 채도 없이 퇴사를 말한 딸이 얼마나 한심하게 보일지. 그래도 회사에 가서 퇴사를 물릴 생각은 없다.
아빠에게 어떤 식으로 내 퇴사를 알려야 할지 걱정이 앞선다. 아무리 머릿속으로 시나리오를 굴려봐도 아빠의 언성이 높아지지 않고, 우리 집이 살얼음판에 한파 속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 상황이 순순히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 감이 오지 않는다.
누군 퇴사 계획서를 작성해 부모님께 드리고, 설득해 퇴사를 했다던데. 나는 그런 걸 적어서 들고 가 봤자 얼굴에 집어던질 모습이 너무 선하다. 나보단, 엄마가 걱정이다. 아마 내 퇴사로 최소한 올해, 아니 내년까지도 아빠에게 시달리시겠지.
디자이너인 내가 회사를 다니지 않으면서 아빠에게 부족하지 않은 딸일 수 있을까. 당장은 떠오르는 방법이 없다. 급하게 디자인 프리랜서 외주용역 사이트에 '3d 컷 모델링 가능'이라는 이력서를 올렸다. 회사를 다니지 않아도 부족한 딸이 그보다 더 부족해지지 않음을 증명해야 했다. 마음은 답답했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뿐이었다.
아빠말처럼, 내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를 실감하는 날이었다. 지금이라도 돌아가서 사표를 취소하고 싶었다. 아빠의 분노가 얼마나 추울지 가늠할 수 없었기 때문에.
4년간 회사를 다니며, 수없이 퇴사를 상상했지만 그때마다 아빠의 분노는 넘을 수 없는 산과 같았다. 내 커리어가 그 회사에서 연장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였다.
도를 넘는 발언을 하는 부장 때문에(지각을 하지도 않았는데 불러 세워놓고 '이런 식으로 출근할 거면 회사 나오지 마' 라며 소리를 치거나, '네가 만든 디자인 보지도 않는다' 며 평가조차 할 이유가 없다고 말하는 등) 퇴사 트리거가 당겨졌다. 돌이킬 수도 없고, 돌이킬 마음도 없다. 이제, 부모님이라는 산을 넘어 퇴사를 말해야 한다. 나는 그게 부장님에게 퇴사를 말할 때 보다, 더 무섭고 더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