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8/12 소소한 카페 이야기

집 앞 카페를 나서니, 어느새 우리도 살가운 모녀지간이 되어있었다.

by 손바닥

무더운 날들의 연속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나는 가방에 노트북과 간단한 색채 도구를 담았다. 이런 나를 늘 엄마는 빤히 바라보신다. 평소와 달리, 요즘은 엄마에게 함께 카페가기를 권한다.


"엄마 날이 너무 더워, 시원한 카페 갈래?"

"딸이 커피 사는 거야?"


엄마의 물음에 당연하다는 듯, '그렇지'라는 대답을 하면 엄마도 외출복으로 갈아입으시곤 나갈 준비를 하신다. 엄마는 주로 파란색 옷을 선호하신다. 어김없이 오늘 카페 나들이에도 그 옷이 함께했다. 자주 입는 이유를 물었더니 엄마의 주변 친구분들이 유달리 그 옷을 입었을 때만 '살 빠졌어?'라고 물어보신다고 한다. 엄마도 엄마이기 이전에 여자인가 보다.


엄마의 시원하고 푸른 파란색 옷과 달리, 거리를 나서니 시멘트 열기에 벌써 뒷목이 후끈하다. 몇 걸음 안 떼었는데 등에서 땀이 주룩주룩 흐른다.


"엄마, 너무 더워. 벌써 힘들어ㅠㅠ"

"그러게, 양산 들고 나올걸 그랬나?"


엄마는 더운 날씨 탓에 요즘 들어 분홍 양산을 자주 들고 길을 나서신다. 종종 엄마와 함께 나설 때면 손에 든 양산을 슬쩍 내쪽으로 비켜 들어주신다. 본인 더위보다, 딸 걱정에 그늘막을 양보해주신다.


"가방 줘, 엄마가 들어줄게"


집 앞 언덕을 하나 넘으면 작은 고등학교가 하나 있다. 그 고등학교 아랫목에 '아야'라는 카페가 있는데, 엄마와는 늘 아야카페를 간다. 특별히 음료가 맛있지는 않지만 굳이 그 카페를 가는 데는 이유가 있다. 바로 엄마가 다니는 골프 연습장이 바로 아야카페 위에 있기 때문이다.


"엄마, 오늘도 운동하러 갈 거야?"

"응, 커피 한잔하고 이따가 가야지"





언덕 하나, 어릴 적 다니던 고등학교를 지나 카페에 도착했다.


"뭐 마실래?"

"엄만, 커피"


혼자 카페에 갈 때는 늘 메뉴가 정해져 있다. 진리의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 하지만 엄마와 올 땐 얘기가 다르다.


엄마는 늘 '커피'라고만 말하신다. 그럼 난 메뉴판 앞에 서서 명탐정 코난처럼 추리를 시작한다.

'오늘은 우선 날이 더우니 HOT은 피하고, 시원한 종류 중에 하나로 시킬까... 어차피 내 몫까지 2잔을 시켜야하닌깐, 커피는 나눠 마시고, 시원한 음료 중에서 뭐가 좋으려나.... 탄산은 싫어하시닌깐 빼고...'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하고, 딸기 요거트 플래치노 하나 주세요"



왼쪽은 딸기 요거트 플래치노, 오른쪽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그리고 뒤는 쓴, 단의 매력에 퐁당 빠지신 우리 엄마이다.

빙긋빙긋-

엄마가 음료를 마시면서 무척이나 좋아하신다.


"뭐가 그렇게 좋아?"

"응, 음료가 너무 맛있어"


괜히 뿌듯하다. 메뉴판 앞의 열띤 추리가 실패하지 않았다.


"뭐가 그리 맛있길래?"

"응, 쓴 애 마시다가 단 애 마셔서 좋아"


엄마는 투샷이 들어간 아메리카노를 마시다가 달달한 요구르트를 한입 먹었을 때의 달달함이 너무 좋다며, 두 음료를 번가라 마시며 빙긋 빙긋 웃으셨다.


쓴 단의 매력에 푹 빠지신 우리 엄마, 엄마의 웃음에 괜히 나도 따라 웃었다.


엄마와 집에 있을 땐 같이 TV만 봤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지 않았는데(굳이 얘기를 할 필요가 없으닌깐) 카페에 나오니 억지로 하지 않아도 얘깃거리 투성이었다. 음료 정하기, 커피만 마실지 빵도 먹을지, 운동은 몇 시에 갈지(카페에서 몇 시에 나설지), 지난번 카페에서 있었던 엄마 친구 생일 이야기, 등등 꼬리에 꼬리를 물고 얘기가 이어졌다.


나는 썩 살가운 성격이 아니어서, 집에 있을 때 하는 대화라곤 '엄마 밥 먹자' '드라마 보자' 가 전부인데 괜히 카페에 엄마와 같이 나오니 사이좋은 모녀지간이 된 기분이었다.


"엄마, 아빠는 10년 넘게 이 동네에 사시면서 집 앞 카페 한번 안 가보셨겠지?"

"그렇지"

"다음엔 아빠하고 셋이서도 올까?

"그러자, 아빠가 무척 좋아하시겠다"


벌써 입추라지만, 더위는 가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더운 날이 길어질 수 록 짜증만 늘어가지만, 다음 주말엔 더위를 핑계 삼아 아빠 하고도 살가운 부녀지간 흉내를 내봐야겠다. 당분간은 이 더위가 가시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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