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나눈 술만큼, 나는 우리가 깊은 사이가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인사해, 내 여자 친구야"
썩 반갑지 않은 자리, 몇 년을 알고 지낸 친구 옆에 내가 모르는 여자가 앉아 환희 웃으며 자기소개를 한다.
"안녕하세요? 말씀 많이 들었어요"
흔히 말하는 남사친, 여사친으로 그 친구와 인연을 맺은 건 대학생 때였다. 유쾌하고 가벼운 농담을 즐겼던 친구는 술자리마다 부르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그중에 물론 나도 포함되어있었다. 술자리에서 주고받는 쉬운 농담만큼이나, 나는 그와 쉽게 친구가 되었다.
같이 나눈 술만큼, 그 사이가 깊어진다는 건 맞고도 틀린 말이다. 알코올의 농도가 짙어질수록 오고 가는 대화에 진심의 농도도 짙어지지만, 술이 깨고 나면 잊히기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그를 처음 본 그날도 내 몸속의 알코올은 꽤 많이 쌓여있는 상태였다.
"안녕, 야 너 못 보던 얼굴이다?"
왁자지껄한 호프집- 개강총회에 떠들썩한 호프집에서 그는 나를 또렷하게 보며 말했다.
"뭐야, 너네 모르는 사이야? 그러게 A, 너 술자리 잘 안 나왔지?"
주변 친구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꽂혔다. 술은 좋아하지만 과 행사에 잘 참여를 안 한 나에게 화살이 돌아왔다. 다음엔 자주 나올게라는 말로 어영부영 넘어가 보려 했지만 이미 술자리의 타깃은 나로 정해진 후였다. 그렇게 마신 술로 정신이 몽롱해져가고 있었다.
"나 잠깐 술좀 깨고 올게"
술을 깨고 오겠다는 핑계로 슬쩍 호프집 밖을 나섰다. 자욱한 안개만큼이나 퍼져있는 담배연기, 여러 무리의 남학생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많이 마신 술 때문인가 담배냄새에 구역질이 올라오고 있었다.
'빨리 자리에서 벗어나야지'
잰걸음으로 호프집 앞을 벗어나고 있을 때, 누군가 뒤에서 내 이름을 크게 불렀다.
"A야!"
휙 고개를 돌리자, 너는 내 이름을 크게 부르며 손을 흔들었다.
"집 가는 거야? 데려다줄까?"
"아니, 술 깨려고 산책- 먼저 들어가"
가볍게 말하고 다시 돌아 걸어가려는 내게 달려와서 '그럼, 나도 같이.' 라며 뻔스럽게 말하곤 그는 내 발걸음에 보폭을 맞춰줬다.
술기운 때문인지 대화 주제는 끝없이 이어졌고 처음 본 사이 같지 않게 우리는 친해져 있었다.
그 뒤부터 너를 보러 가는 건지, 술이 좋아 가는 건지 나는 과 행사며, 술자리며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그때마다 나는 너를 찾았고 네가 없는 자리엔 술자리를 핑계로 자연스럽게 전화를 걸어 너를 불러냈다.
같이 나눈 술이 많아질수록 우리는 깊지만 얕은 관계를 계속 지속해갔다.
-
시간이 꽤 흘러 나는 졸업을, 너는 아직 대학생인 지금- 이전만큼이나 너를 자주 보지 못하는 사이가 되었을 때 너는 갑작스러운 전화로 나를 불러냈다.
"오랜만에 술 한잔?"
"그래 콜- 어디서 볼까?"
간단한 약속 장소와 시간을 정하고 전화를 끊었다. 오랜만에 술자리라 설레는 건지 너를 봐서 설레는 건지 들뜬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며 약속 장소로 향했다.
딸랑딸랑- 호프집의 문을 열자 반갑게 문 위에 달린 종이 울었다. 눈으로 네가 어디 있는지를 찾았지만 선뜻 발걸음을 떼기 어려웠다. 굳은 표정으로 네 앞에 앉자, 반가운 목소리로 너는 옆자리에 있는 낯선 여자를 소개했다.
"인사해 내 여자 친구야"
"안녕하세요. 말씀 많이 들었어요"
무슨 표정을 지여야 할지 몰라 하염없이 웃고만 있으니 네가 마치 나를 다 안다는 듯 '애가, 낯을 좀 많이 가려'라고 속삭였다.
"너 소개하여주고 싶어 데려왔어 괜찮지?"
"아, 그렇구나."
짧은 인사를 주고받고는 어색함을 없애기 위해 우리는 함께 술을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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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의 술자리들과 달리 오늘의 술자리는 썩 유쾌하지 못했다. 술자리가 끝나고 나에게 '혼자 갈 수 있지?'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 너는, 다정하게 여자 친구의 손을 잡고 멀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지워지지 않는 찝찝함과 함께 길을 걸었다.
같이 마신 술만큼이나 친해진다는 말은, 맞고도 틀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