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하우스 디자이너가 말하는 인하우스 디자인.
짧은 2년 차 경력을 보유한 디자이너입니다. 계속 인하우스 디자이너로 근무했습니다. 왜 '에이전시를 가지 않았냐'라는 질문을 너무 많이 받는데 디자인 '실력'을 키우기엔 에이전시만큼 좋은 곳이 없습니다만, 그만큼 '흥미'도 쉽게 잃어버릴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왜 에이전시를 안 갔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아래의 답들로도 충분할것 같습니다-
에이전시를 가지 않고 인하우스로 벌써 3번째 회사를 돌고 있습니다. 짧고 잦은 이직이었죠. 사실 다녔던 모든 회사의 연차의 합을 치면 이미 3년째이긴 합니다만, 이렇다 할 경력이 없어서 빼고 생각하겠습니다.
디자인을 할 줄 아는 직장인으로 성장한다는 것
회사는 항상 디자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인하우스 디자인을 하면서 느낀 건, 회사에는 디자인이 필요하지만 디자인이 '항상'필요하진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에이전시는 외부업체의 디자인을 받아서 업무를 수행하지만, 인하우스는 대체적으로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어느 정도 프로젝트가 수행되고 나면 / 사업이 진행되고 나면, 중반 정도부터 디자인을 할 일들이 생깁니다. 중간에 치고 빠지는 느낌이랄까요?
제가 속한 부서는 여러 공공 프로젝트를 수주해서 일하는 팀입니다. 그러다 보니 특정 프로젝트에는 디자인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필요가 없기도 하죠. 대체적으로 큰 프로젝트일수록 외주업체의 손을 빌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디자인할 기회를 뺏기는 것 같아 가끔 좀 슬프기도 합니다. -
그렇다면 저는 무슨 디자인을 하냐, 급하게 필요한 디자인 작업들 위주로 진행합니다. 외주업체에 맡겼지만 피드백이 오지 않은 경우 데드라인을 앞두고 제가 나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밖에 사업 기획서를 쓰기도 하고 피피티 디자인을 하기도 합니다.
회사 내 서비스에 필요한 아이콘을 정리하거나, 누끼를 딸 때도 있습니다. 부서 내 프로젝트 결과물로 나온 디자인들을 컨펌하기도 하죠. '디자인을 할 줄 아는 직장인으로 성장한다'가 더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디자인을 가르쳐줄 사수가 있거나, 함께 움직이는 디자인 팀이 있으면 더 많은 것을 배우며 일할 수 있을 겁니다. 만약 인하우스를 생각하고 계시다면 꼭, '팀'이 있는 곳을 가길 권해드립니다.
디자이너요? 이쁜 이미지 만드는 애들 아닌가요?
네 아닙니다. 그렇게 말하시면 제가 총 들고 쫒아갈지도 모릅니다.
저는 회사에 팀도 없고, 그렇다고 다른 디자이너가 있지도 않습니다. 혼자서 일하죠. 300명이 넘는 공돌이들(데이터 시각화를 하거나 데이터를 분석하는) 사이에서 크리에이티브와 시각적 질서, 서비스 제작에 기획이 필요한 이유를 외치는 디자이너입니다.
힘들어요. 네 엄청 힘듭니다.
이것들은 다짜고짜 와서 '뒤로 가기 버튼 만들어주세요' 하고 갑니다. 디자인을 하시는 분들이면 이게 얼마나 큰 문제인지 바로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특정 웹사이트에 '왜? 뒤로 가기 버튼이 필요한지?', '이게 어느 사업에 사용되는 웹사이트에 쓰이는지?', '이 뒤로 가기 버튼이 사용자 편의성에 필요한 버튼인지' 아무것도 고려되지 못한 상황에서 일을 받습니다. 더 심할 때는 뒷배경이 무슨 색인 지도 모르고 버튼만 만들 때도 있습니다. 거짓말 같죠? 진짜입니다.
그래서 사실 디자이너를 꿈꾸는 많은 분들에게 인하우스는 별로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생각보다 디자이너가 '그냥 이쁜 이미지 적당히 만드는 사람'인 줄 아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사업의 방향성을 보고 디자인을 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디자이너의 모습은 분명한 사업의 방향성을 보고 움직일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인하우스를 할 생각입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지향하는 디자이너의 모습은, 완벽한 크리에이티브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아니라, '사업의 방향과 시장의 기회를 판단해, 소비자에게 필요한 디자인을 하는 사람' 이기 때문입니다.
에이전시에 있으면 다양한 종류의 디자인은 접해볼 수 있어도, '왜 이 디자인의 결과물이 이렇게 나와야 하는지'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단 클라이언트가 원하면 그렇게 디자인합니다. 클라이언트는 '설득'의 대상이 아니라 '만족'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클라이언트를 만나면 '사업의 방향이나 기획'을 '설명'해주긴 합니다. 하지만 설명일 뿐이지 함께 방향과 기획을 설계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고요? 디자이너가 우리 회사 소속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에이전시 디자이너는 에이전시 소속일 뿐이죠.
가끔 에이전시 회사들도 디자인 비딩에 참여해서 사업을 따와 첨부터 끝까지 프로젝트에 함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에이전시라면 저도 이직하고 싶네요. 하지만 그런 에이전시를 찾는 게 더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반면에 인하우스 디자이너로 일하게 되면 '사업의 방향과 기획'에 함께할 수 있는 게 좋습니다. 물론 모든 회의에 불러주시진 않습니다. 처음 방향을 기획하거나 설계할 때부터 함께하면 좋겠지만 안 불러줍니다. 쥬륵.. -바쁘거나, 디자이너를 그 정도로 중요하게 안 보거나 둘다거나.. 제경 우는 대부분 둘 다 였습니다. 제가 바쁘기도 했고 디자인이 중요하지 않은 프로젝트는 첨부터 들어가 있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귓동냥이라는걸 합니다. 어느 정도 사업이 진행되는 방향을 듣고 디자인 방향성을 설계할 수 있습니다. 회사이니 기사나 문서 같은걸 살펴보기도 합니다. 가끔 부장님이 상세하게 설명을 해주시기도 하는데 정말 가끔 있는 일입니다. 그냥 '해오세요'일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회사에 소속돼있는 만큼 많은 부분을 생각하고 만들 수 있습니다. 완벽한 크리이에티브는 끌어낼 수 없지만, 많은 부분은 고려하며 디자인을 할 수 있죠. 가끔이지만 맞지 않은 크리에이티브에 대해 항의할 수도 있습니다. 때론 받아들여질 때도 있어요. 그때의 희열은 뭔가 로또에 당첨된 기분이랄까요?
제가 많은 부분을 고려해서 디자인 시안을 넘기면, 그걸 외주업체가 첨부터 끝까지 다듬습니다. 점점 더 나은 크리에이티브와 완성도가 나타나죠. 모든 디자인을 제 손으로 완성시키고 싶지만, '인하우스'의 한계이자, '팀'없는 디자이너의 짧은 연차 탓이기도 합니다.
아직까진 이렇다 할 완성도 높은 크리에이티브와 디자인을 진행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만들어낸 디자인이 외주업체에서 어떻게 발전되는지를 보는 것도 충분히 재밌습니다.
사업의 기획에 참여하거나, 피피티 내용을 작성하는 일도 저는 생각보다 꽤 재밌었습니다. 이건 디자이너분들마다 다르시겠지만요.
나는 어떤 디자인을 하고 싶은 디자이너인지 정하기
사실 둘 다 중요하긴 합니다만, 둘 다 만족시킬 수 있는 회사를 찾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분법적 시각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디자이너도 2가지 분류로 나눠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1) 크리에이티브에 치중하는 디자이너 , (2) 기획에 치중하는 디자이너'로 말이죠.
개인적으로 저는 '기획에 치중하는 디자이너'입니다. 저처럼 디자인 말고 '사업의 이면'까지 알고 싶다면 인하우스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완성도 높은 디자인을 할 것이라는 기대는 팀이 없거나 사수가 없다면 버리는 게 좋습니다. 가끔 배경색이나 사이즈, 해상도를 모르고 디자인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모든 걸 '기획에 참여한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일할 수 있다', '여러 사업을 접해볼 수 있다'로 만족도를 대체할 수 있습니다.
디자인적 완성도에 대한 욕심이나, 다양한 디자인 분야를 접하고 '크리에이티브에 치중하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면 절대적으로 에이전시를 추천합니다. 인하우스 오시면 1년도 못돼서 나갑니다. 진심이에요.
지금도 주니어 디자이너지만, 사실 너무 쉽게 '인하우스'를 선택해서 디자인을 시작했나 하는 고민이 들기도 합니다. 말했던 것처럼 항상 디자인이 필요하지는 않기 때문에, 연차에 맞는 포트폴리오를 쌓기는 힘들긴 합니다. 워낙 디자인 업계가 실력을 위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이닌깐요.
인 하우스인만큼 일찍 퇴근 하긴 합니다. -에이전시에 비해서- 디자인의 퀄리티나 완성도도 많이 높은걸 바라지 않거나, 바라셔도 컨펌을 해줄 인력이 내부에 없기 때문에, '뭘'들고 가도 잘했다고 해주십니다. -가끔 다들 눈이 발가락에 달렸나는 생각도 합니다- 기본적으로 뭔가 만들어가면 신기해하고 칭찬도 많이 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하우스가 갖는 큰 장점이죠. 학부시절부터 디자인을 하면서 '팍팍하게' 서로의 디자인에 크리틱을 하기 바빴다면, 인하우스는 뭔가 만들어서 들고 가기만 해도 '대단하다'는 눈으로 봐주십니다.
그러다 보니 인하우스 디자인을 더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완성도 높은 디자인, 크리에이티브적으로 디자이너의 모든 혼을 갈아 넣은 디자인은 '개인작업'으로 대체하고 있습니다. -개인작업이다 보니 실제로 사업에 이용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학생 때 작업이랑 다를 바가 없지 않나 라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기도 합니다. 이 생각이 더 짙고 깊어지면 에이전시를 갈 의향이 있긴 합니다.-
저처럼 '(2) 기획에 치중하는 디자이너'가 되어보고 싶다면 인하우스도 추천합니다. 좋은 동료들을 만난다면 꽤 괜찮은 직장생활을 경험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