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을 위해 ‘디자인을 하는가?’
디자이너로써 디자인을 짝사랑하고 있습니다.
잘하고 싶은데 솔직히 디자인 잘하기 쉽지 않아요.
디자이너에 대한 흔한 오해 중 하나가 ‘너는 하고 싶은 일을 한다’와 ‘너는 그 일이 재밌어서 하잖아’입니다. 대부분 이런 이유로 디자이너의 연봉은 후려치기가 되거나 후려치기가 되죠. -참 안타까워요. 개인적으로 아직 사회에 입성하기 전인 디자이너라면, 무조건 몸값은 높게 시작해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네요- 저는 이 일이 재밌어서 합니다. 디자인이요? 솔직히 잘하는 편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밌습니다. 꼭 잘해야지만 재밌는 건 아니잖아요? 낮은 연봉도 감수할 만큼 저는 이 일을 좋아합니다. 평생 짝사랑할 대상을 찾은 기분이랄까요?
처음에는 기획을 했습니다. 기획을 하다 보니 ‘말장난’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뭔가 실행되거나 만들어지지 않는 것에 대한 한계를 느꼈고 ‘만들고 제작하고 실행에 옮기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디자인을 시작했습니다. 생각보다 적성에 잘 맞았고 꽤 재밌게 디자인을 배웠습니다 -과제에 치여 죽는 줄...- 기획과 디자인을 같이하기 시작하니, 갈증이 점점 채워지는 것 같았습니다.
사회에 나와서 디자인을 하면서 스스로 디자인에 대한 한계를 느낄 때도 많습니다. 그리고 사회가 디자이너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한계가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단순히 ‘시각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디자인이 잘 된 디자인’이라는 시선, ‘디자이너를 그저 이쁜 이미지를 작업하는 사람’으로 보는 시선에 치여 사실 디자인을 그만둘까도 생각했었습니다. 평생 짝사랑할 대상을 잃고 방황하기도 잠시, 결국 저는 다시 디자인을 시작했습니다.
디자인을 한다는 것.
‘무엇을 위해’ 디자인을 한다는 것.
저도 처음엔 이 일이 재밌어서 시작했습니다. 만들어 놓고 보면 뿌듯하고 쓰이는 걸 보면 기분이 좋아서 이 일을 계속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기쁨’과 ‘즐거움’만을 가지고서는 버티기 어려운 상태가 오더라고요. 저는 안 그럴 줄 알았는데, 평생 재밌게 디자인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죠.
그렇게 일하다 보니 번-아웃 상태가 왔습니다. 너무 힘들었죠. 힘듦의 모든 이유를 디자인과 회사로 돌리며 ‘아 다신 디자이너 하지 말아야겠다’라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다음 직장은 원래의 전공을 살려 기획자가 되어야겠다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면 마음이 홀가분해질 줄 알았습니다. 오히려 더 무기력하고 우울해졌습니다. 그렇게 열정적으로 재밌게 해오던 일이 ‘순식간에 하기 싫은 일’이 되어버렸으니 말이죠. 방황을 하다가 다시 ‘일러스트’를 켰습니다. 그동안 해온 제 작업물을 쭉 돌이켜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때는 이런 마음으로, 이때는 이런 기분으로, 또 이때는 이런 상황으로’ 쭉 작업물을 보니, 제 작업물은 제 인생을 담고 있었습니다. 밤샘과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생각하고 기획해서 만들어냈던 그 모든 시간들이 ‘디자인’이라는 이름으로 묶여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디자이너가 ‘문제를 정의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작업물을 돌아보니 대부분 ‘디자인을 보거나 / 읽는 사람들’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할 때, 항상 그들이 읽기 쉽거나 보기 쉬운 방향으로 최대한의 직관성을 살려 디자인을 해왔다는 것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제 디자인의 중심에는 ‘소비자’가 있었던 거죠. 소비자를 위한 디자인, ‘누구나 쉽게 보고 이해할 수 있는 디자인,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디자인’을 꿈꾸는 것, 그게 바로 제가 가져야 할 디자이너로써의 신념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왜 디자인을 하는 걸까요? ‘단순히 재밌어서?’ 아닙니다. 때론 맞기도 하겠죠. 하지만 각자 서로 다른 이유에서 분명 디자인을 하고 있을 겁니다. 디자이너로써 방향을 잃었을 때 역으로 디자인이 분명하게 ‘제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위해 디자인을 해왔는지’ 말해주었습니다.
단순히 좋아하는 것과 일에 신념을 가지게 된다는 건 많이 달랐습니다. 불분명하고 발전이 없을 것만 같던 디자인에서 정확한 목적과 방향성을 갖는 디자인을 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비록 저도 신념을 갖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 믿음이 성장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 믿어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