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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바닥 Nov 26. 2022

기록의 의무

한때 글 쓰는 게 너무 좋았다. 작가가 되야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내 작은 재주로 여러 편의 글을 써냈다. 짧은 정보성 글이지만 매일같이 글을 쓰고 퇴고하고 거기에 디자인을 입혔다. 


업무가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갈 수 록, 내 일상을 기록하던 소소한 재미는 잃어갔다. 하루 8시간, 주제를 정하고 글감을 찾고 문장을 수집한다. 수집된 문장을 가공해 마치 내가 쓴 것처럼 글을 꾸며낸다. 


회사에 입사한 지 3년 8개월이 흘렀고, 나는 최소 330여 편의 글을 적어냈다. 


요즘은 흰 종이와 자판을 볼 때면 그런 생각을 한다. 


'더 이상 쓸 말이 없어. 이제 다른 일을 하고 싶어' 하지만 나는 안다. 결국 돌고 돌아 다시 글을 쓸 것이라는 걸. 


기록의 의무를 저버렸던 몇 해간, 내 삶은 더 풍족해지기보단 더 척박해졌기에 그리고 다시 '제법 괜찮았던 나'로 돌아오기 위해선 나를 위한 글쓰기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 


유달리 어렵고 힘든 몇 년간이었다. 너무 열심히 살면 '뭘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라고 말하던데, 지금이 딱 그런 시점이다. 기록의 의무를 다하지 않아서 휘발되어버린 생각들과 엉겨 붙은 일들은 떨어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돌고 돌아 다시 키보드 위에 손을 얹었다. 내가 나를 위해 살아갈 수 있게, 작은 기록이지만 글을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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