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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yric Jul 04. 2018

새벽 4시 47분, 7월 4일 수요일

브루클린에서


미국에 왔다.

남들 다 하는 공부도, 인턴도 아닌 순전히 여행으로.

그것도 무려 한 달 가량을, 그것도 심지어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서 말이다.


그 어느 누구에게도 떳떳하지 못한 시작이었다.

누군가 내 여행에 대한 소식을 듣고 물으면 늘 경비 출처에 대한 질문들 뿐이었고, 그 때마다 나는 대답을 찾지 못해 의도치 않게 말 끝을 흐려야만 했다.


졸업한지 5개월 차에 접어든 지금, 제대로 된 직장을 찾지 못했고, 그 와중에도 남들처럼 살기는 싫다며 그 흔한 회사들에 온 힘과 정성을 다해 지원해보지도 않았다.

현재 아는 언니가 운영하는 꽤 많은 학생들이 있는 공부방에서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고 있으며, 그것만으로는 당연히 부족해 카페와 함께 투잡을 병행 중이었다.

그러나 두 일 모두 파트타임이었기에 수입에는 한계가 있었으며, 생활비 마저도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고 있었다.

내 주변의 다른 친구들은 스스로 돈을 벌어 조금씩 은혜를 갚아나가고 있을 시기였다.


그러던 중 미국 여행을 결심했다.

안 그래도 빌어먹고 사는 주제에 무슨 미국여행이겠냐만은, 한켠으로는 나중에 다 갚으면 되니까 지금 손 벌릴 수 있을 때 벌리고 내 인생에 도움이 되는, 뜻 깊은 일을 하고자 했다.

미국 여행을 결심했을 당시, 카카오톡에 가입한 고등학생 이후 난생 처음으로 탈퇴를 할 정도로 큰 심경 변화가 있었다.

뜻밖의 일들을 계속해서 벌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공부방에 일을 하러 나가던 버스 안에서 죽기 전에 센트럴 파크에 한 번 가보자 하는 마음에 엄마에게 선포했고 그 이후로 내 결심은 바로 행동으로 이어졌다.

표를 사기 전 한 달이나 자리를 비울 공부방 일이 걱정돼 같이 하는 언니에게 먼저 가능여부를 물었고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자마자 아빠에게 요청해 바로 비행기 표를 끊었다.

(내 부모님의 가장 큰 장점은 여행과 같은, 인생에 정말로 도움이 되는 일에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지원해준다는 점이다.)

7월에 갈 여행의 표를 3월에 끊었기에 표를 끊은 이후로 여행 준비는 잠시 정체 중이었다.


그러나 여행이 코 앞으로 다가오자 비자, 교통, 환전, 여행일정 등 수많은 일들을 혼자 해결해야했다.

그동안 태국, 호주, 일본에 몇 차례 여행을 다녀왔지만 그것들은 모두 친오빠나 가장 절친한 친구 한명과 함께한 여행들이었다.

오롯이 혼자 하는 여행은 처음이었기에 준비해야할 부분이 너무나 많았다.

게다가 한 달이라는 장기적인 일정 때문에 항공과 숙소 경비가 굉장한 부담이었고 따라서 끊임 없이 검색하고 찾아보고 비교하며 아낄 수 있는 부분에서 최대한 아끼는 것이 관건이었다.


몇 차례 여행을 다녀오고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것이 있어서인지 항공권을 끊은 후 숙소, 비자 등 많은 일들이 잘 진행되는 듯 싶었다.

그러나 여행이 코 앞에 다가오자 차차 해결해야하는 환전, 짐싸기 등이 정말 스트레스였다.

본래 6월 말쯤 환전을 하려했는데, 뜻밖의 국제정세로 달러 환율이 몇개월만에 최대치를 돌파해 1100원에 달했다.

더 오르기 전에 해야겠다고 결심했고 1080원 대에서 우선 써야할 부분을 환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환전한 뒤에도 문제는 따라왔다.

그 큰 돈을 모두 현금으로 지니고 다니면 당연 문제가 생길 것이기에 이미 환전한 달러를 체크카드처럼 쓰고자 여기저기 방법을 알아봤다.

또한 비상으로 한국돈을 환전하거나 인출, 사용하기 위해 또 다른 서비스를 신청하고 카드에 가입해야했다.

그 모든 은행 관련 업무를 해결하기까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하루는 이 은행 저 은행 옮겨다니며 취소하고 해지하고 가입하느라 은행에서만 5시간을 투자한 적도 있었다.

환율 때문에 계속 신경을 곤두세우고 눈치를 본 것만으로도 모자라 해외에서 사용할 카드와 외화통장 문제로 골머리를 앓다보니 이미 지칠대로 지쳐있었다.

그러나 웬걸, 아직 여행은 시작도 하지 않았고 가장 큰 문제인 짐 싸기가 남아있었다.

거의 한 달에서 3주 전부터 짐을 싸기 시작했는데, 생각나는대로 싸다보니 짐이 점차 늘어났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과하다 싶어 빼고 넣기를 여행 전날까지 수십번 반복한 끝에 22키로짜리 캐리어 하나 10키로가 안되는 가방 두개로 줄여냈다.


본래 예민하고 피곤한 성격이라 여행을 준비하는 동안에도 스트레스가 심했고 여행 전날에는 호주에 갔을 때 심하게 겪은 비행기 멀미와 혼자 갈 생각에 불안감을 떨쳐낼 수 없어 눈물을 뚝뚝 흘리기도 했더랬다.

여행을 준비하는 동안 왜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 과정은 매 여행마다 반복됐다.

여행을 하기 위해서 이 정도 고통은 반드시 제물로 바쳐져야 하는가보다,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그 고된 과정 속에서도 가장 힘든건 내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나는 끊임 없이 무섭다고 말하고 있었다.

‘괜히 여행을 간다고 해서...’

‘잠깐의 충동 때문에 이 고생을 하는지...’

이런 생각들이 끊임 없이 밀려왔고 불안감과 두려움에 떨며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스트레스성과 날씨 때문에 피부까지 뒤집힐 지경이었고 나는 내가 하고자 벌려놓은 일에 대해 후회하며 과거의 나에게 연신 질타를 쏟고 있었다.

출국 전날 눈물을 뚝뚝 흘리며 가기 싫다고 말하던 내 모습을 보면 아마 다른 이들은 누군가 억지로 보내서 가는가보다,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내 결정이었고 내가 책임져야했다.


나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까짓것도 혼자 못하면 앞으로 아무것도 못해.’

‘더 강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해내야 한다.’

계속해서 되뇌이며 이 여행이 얼마나 중요한지, 얼마나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는지 되새기고 또 되새겼다.


그리고 그렇게 미국에 도착한지 이틀이 지난 지금,

늘 하던 비행기 멀미도 없었고 지난 번엔 멀미 때문에 입도 못 댔던 기내식을 다 먹어치웠다.

이코노미는 별 수 없이 잠자리가 불편하다보니 그정도는 감수해낼 수 있었다.

장기 비행과 시차 적응의 후유증에 대한 피곤함은 첫날 푹 자는 것으로 단번에 해결됐고 어제는 많이 걷고 많이 보며 여행을 즐겼다.

이 곳에 온 뒤에는 여기 사는 친구의 도움을 많이 받았기에 오롯이 혼자라고는 할 수 없지만, 오늘부터는 혼자만의 여행을 제대로 시작해볼까 한다.


더 강해지고 더 달라져서 내 인생에 조금은 도움이 될 수 있는 여행을 만들고 싶다.

남들과는 다르게 아직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있어도, 남들보다 좀 더뎌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 직업으로 삼을 때까지 나는 끊임 없이 자문할 것이다.


너무 많이 걸은 탓에 피곤함에 지쳐 일찍 잠들었다 깬 후, 다시 잠들지 못하던 7월 4일 새벽 5시 24분, 브루클린의 537번 집에서 아침을 맞으며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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