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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yric Jul 14. 2018

좋은 말을 먹고 자라는 아이처럼

나는 아직도 크는 중


1.

미국 여행 전 고향에 들렀었다.

앞서 언급되었듯이 여행 준비로 인한 극심한 스트레스로 몸이 말이 아니었다.

속이 울렁거려 아무것도 먹지 않으면 위는 배가 고프다고 소리를 쳤고, 그렇다고 곧장 음식물을 들여보내주면 다시 울렁거려 제대로 먹지 못하던 날들의 반복이었다.

그러던 중 고향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고 오랜만에 재회한 엄마와의 장보기 중에도 몸은 말을 들어주지를 않았다.

맛있는 것 좀 해먹이겠다고, 뭐 먹고 싶은게 있냐고 연신 물어대는 엄마에게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고 그저 카트를 끌며 몸을 맡긴 채 잠시 엎드려있거나 주저앉기 일쑤였다.

그 모습을 본 엄마는 저녁 나절에 아빠가 직접 손질한 전복을 통째로 갈아넣어 죽을 만들어 내주었다.

비릿한 음식은 원체 먹지를 못해 해산물을 싫어하는 내게 그 좋다는 내장까지 간 전복죽의 비린내는 당연히 참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정성에 보답하기 위해 연신 먹어댄 뒤 집에 포장까지 해왔다.

그리고 이튿날 카페에서 일을 하던 중 엄마로부터 집 주소를 묻는 연락이 왔고 나는 정신 없이 일하던 중이라 아무 의식 없이 주소를 곧장 보내줬다.

저녁에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상해서 왜 주소를 물었냐 물어보니 홍삼을 보냈다고 했다.

고향에 들렀다 돌아가는 날, 홍삼 사는걸 깜빡했다는 엄마의 말을 그냥 흘려들었는데 그 길로 바로 구매해서 택배로 부친 모양이었다.

참, 이토록 젊은 나이에 엄마 아빠 돈으로 여행하는 것도 모자라서, 홍삼까지 먹어가며 다니라는게 지금 말이나 되냐며 타박을 줬지만서도, 짠한 마음은 영 가시질 못했다.

그로부터 바로 다음 날 카페에서 일하던 와중에 택배가 왔다.

빨간 홍삼 박스보다도 더 눈에 띄던 편지 한 장.

편지를 읽고 또 읽다가 눈물이 날 뻔 했더랬다.

‘먼저, 너의 용기있는 도전에 엄마는 박수를 보낸다.’
‘네가 할 수 있는 한까지 열심을 다하되 네가 할 수 없는 어떤 우연이라던가 신의 섭리에 들어가는 정도의 일이라면 깨끗이 받아들이는 것도 삶의 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딸은 잘 해낼거야. 은근 독한 면이 있으니까.’
‘p.s. 다시한번 너의 도전에 한없는 응원을 보낸다.’

매일 홍삼 한 포 보다도 더 힘이 날 것 같아 다이어리 사이에 꼭 껴둔채 가지고 와서 함께 미국을 누비는 중이다.



2.

이틀 전, 내가 지내고 있던 숙소로부터 불과 여섯 블럭 떨어진 곳에서 16살짜리 소년이 총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내가 묵고 있는 지역이 다소 위험한 지역이라는 말에 해가 지기 전에 귀가하는 등 각별히 조심하고 있던 중이었다.

사건이 일어나던 그 때, 나는 자유의 여신상을 보던 중이었다.

그 날도 일정을 마친 뒤, 어김 없이 늘 내리던 지하철역에서 내려 15분 남짓한 거리를 올라오고 있었다.

중간 지점 쯤에 두 블럭 정도가 폴리스 라인으로 막혀있었다.

이상한 낌새에 두리번거리니 소방차가 함께 와있길래 불이 난 줄만 알았다.

그러나 그 날 저녁 뉴스를 찾아보니 16살짜리 소년이 총에 맞았고 병원에 이송되었으나 숨졌다는 소식이었다.

물론 한국에서도 수많은 범죄와 살인이 일어난다지만, 눈 앞에서 이런 사건을 보니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밀려오는 공포심에 조언을 구하고자 여기저기 소식을 전했다.

(엄마 아빠에게는 차마 말할 수가 없어서 말하지 못했다. 금요일에 미국 중부에 친구를 보러 잠시 다녀왔는데, 월요일에 뉴욕으로 돌아오는 비행기가 자정에 도착했다. 공항에서부터 집까지는 공항 철도와 지하철, 도보로 1시간 가량을 소모해야했고, 밤 늦은 시간에 미국을 돌아다니는 일은 다들 삼가는 일이기 때문에 잔뜩 긴장하며 엄마에게 연락을 남겨뒀다. 한국과 시차가 반나절이 나다보니 그렇게 연락을 남겨두고 이튿날 아침 자느라 연락을 받지 못하던 내게 엄마로부터 연락이 불이 나게 와있었던 것이다. 아무 일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연락이 안되는 내가 걱정이 되서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는 말에 너무나 미안한 마음이 들어 이 사건에 대해선 일절 말하지 않고 있다.)

그 누구도 도움이 되는 말을 해주지 않아 실망하던 와중에 영국인 친구가 냉정한 태도로 얘기했다.

한국에서도 사건 사고는 많이 일어나며, 아무 죄 없는 사람이 총에 맞는 것은 논리적으로 희박하다며 촌철살인을 날렸다.

안 그래도 여행이 시작된 후부터 내내 나는 그 친구에게 너무 걱정된다면서 칭얼댔던 것이 사실이었고 그 때마다 그는 내게 지나친 걱정으로 여행을 망치지 말라고 충고해주었다.

게다가 그 어떤 충고보다도 덧붙여 해준 말이 내 두려움과 걱정을 정말 완벽하게 해소해주었다.

‘You’re too sensitive and worried about EVERYTHING, it’s time to grow up and think logically.’

맞다, 나 성장하러 온거였지.

뭔가가 바뀌기를 기대하며 온 여행이었지.

더 이상 애처럼 굴지 않으려고, 마냥 순진하지만은 않으려고, 강해지려고 온거였지.

내 여행의 목적을 다시금 다잡아준 한마디.

너무 안전불감증이 되지는 않되 너무 유난 떨지도 말고 의연해지자.

무소의 뿔처럼 우직하게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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