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km 바깥부터 줄지은 행렬은 더듬더듬 길을 짚으며 야금야금 나아가고 있었다. 연휴 당일이라 그런지 차가 유난히도 많았다. 죽은 자들을 보러 가는 산 자들의 행렬이라니, 아이러니하다.
그곳, 그러니까 하늘나라에는 할머니가 잠들어있다. 올해로 벌써 3년째다. 누군가의 부재가 세상의 어느 한 귀퉁이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사실은 마음을 저릿하게 했다.
작은 항아리에는 한 사람의 인생이 담겨있었다. 한 사람의 육신, 한 사람의 영혼. 벽 한 칸을 빼곡히 메운 수십 개의 항아리들. 그들은 정말 저기 존재해있을까, 산 사람들이 하는 얘기들을 그들이 정말 저 작은 곳에 들어앉아 듣고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며 할머니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증명사진 속의 할머니는 젊었다. 엄마 말을 빌리자면, 씩씩한 사내아이 같기도 하더랬다. 억척 같이 살아온 인생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굳센 모습이었다. 나와 같이 찍은 사진 속의 할머니는 엷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옛날 휴대폰 카메라 특유의 보정 효과 탓인지 유독 부드러워 보였다. 앳된 내 모습 옆의 할머니는 입을 꾹 다물고 입꼬리만 살짝 올린 채 웃고 있었다.
할머니, 내가 왔어, 잘 지냈어?, 나는 잘 지내, 속으로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되풀이하며 가만히 바라다보았다. 저기 정말 할머니가 있을까, 내가 말을 굳이 내뱉지 않아도 내 안부를 듣고 있을까. 할머니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믿기지 않을 때가 있다. 한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십, 수백만의 숨결 중 일부에 가담했다가 어느 순간에 사라진다는 것이, 이제는 더 이상 이 세상에 그 사람의 숨결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평소에는 까맣게 잊고 살다가 명절이면 죽은 자들이 모여있는 곳에 산 사람들이 찾아간다는 것이, 한 사람의 숨결이 끊어지고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 도사리던 그곳이 시간이 지나면 슬픔이 무뎌지고 왁자지껄하기까지 하다는 것이, 닿지도 않을 말들을 산 사람들은 안팎으로 다 꺼내어두면서 죽은 자들에게 맞닿기를 바란다는 것이, 그 모든 것들이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이었다. 죽음과 삶이라는 게 한 끗 차이라는 것이 묘하고 신비로웠다.
평소에 아예 잊고 사는 것은 아니었다. 지갑 안에 사진이 들어있으니 현금과 카드가 오고 가고 버스를 타고 내릴 때마다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3년 전 그 날의 슬픔보다 많이 무뎌진 것은 사실이었다. 누군가의 부재가 내 삶의 단 한 부분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도 사실이었다. 다만 그 부재 자체가, 그 사람이 존재하고 있어야 할 공간이 비어있다는 것 자체가, 존재가 부재로, 삶이 죽음으로, 산 자가 죽은 자로 바뀌었다는 사실 자체가 내 마음을 공허하게 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할머니는 꽃을 좋아해,라고 말하는 엄마 말에 몇 마디를 주고받다 우리는 조용히 그곳을 빠져나왔다. 여기 너무 추운 것 같아,라고 말하면서. 음달이라 너무 춥다고 말하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니 나 외에도 그 서늘함을 느끼는 이들이 많은 듯했다.
건물 안과는 다르게 바깥은 봄 날씨 같았다. 바람과 그늘이 차갑긴 해도, 해가 따뜻하고 대기가 온화한 미세먼지가 그득한 봄 날씨. 밑에 차를 세워두고 걸어 올라온 터라 터벅터벅 높은 경사를 내려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장사를 이루었고 몇몇은 제를 지내기 위해 마른 생선을 가지고 오기도 했다.
추워 추워, 하면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차 안으로 들어오는 햇살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다. 얼른 봄이 오면 좋겠다, 고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할머니, 잘 있어, 또 올게.
추우니까 여기 너무 오래 있지 마,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