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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yric May 30. 2021

소소한 고향 일상

2021-05-22


지난 주말 고향에 다녀왔다.

엄마와 아빠는 내가 어릴 때부터 몇 번이고 반복했던 이사 끝에,

나와 오빠를 모두 독립시키고

드디어 그렇게 바라고 원하던 자연 속에 새 둥지를 틀었다.


둘 다 워낙에 신중하고 꼼꼼한 성격이라 당신들 둘의 노후를 보낼 여생의 둥지를 틀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였다는 것을 나는 안다.

오죽하면 멀리 떨어져 있는 내가 언제 이사하냐고 물어보고 그날을 손꼽아 고대했을 정도였으니까.

이사한 집을 보여준 그날에는 사진도 봐가며 로드맵도 찾아가며 함께 설레 했던 기억이 있다.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집 구경도 할 겸 청소라도 조금이나마 도와주기 위해 간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꽤나 시간이 흘렀다.

언제쯤인지 기억이 정확히 나지를 않아 사진첩을 뒤져보니 거의 1년 전이다.


마당에 주렁주렁 열렸던 청포도 덩굴 대신에 닭장이 그 자리를 대신했고,

휑했던 정원에는 아담한 조명이 아빠의 손길을 받아 곳곳에 놓였으며,

우거진 수풀은 모두 정리되고 그 자리에는 내가 좋아하는 며느리밥풀꽃이 자라고 있었다.


중학교 2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의 끝무렵까지 살던 2층 주택의 정원에도

며느리밥풀꽃이 있던 것이 생각난다.

내가 좋아하는 분홍색에 생김새가 묘하고 특이해서 유독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언젠간 그 꽃의 전설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잘 몰라도

아직도 머릿속에서 잊히질 않는다.

분홍색 꽃잎이 며느리의 머리카락을, 그 밑의 하얀 꽃잎은 며느리의 얼굴,

마지막으로 제일 밑에 달린 또 다른 하얀 꽃잎은 주걱에 맞아 얼굴에 붙은 밥풀이라는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를 떠올릴 때마다 나는 저 꽃을 보면 왜인지 울컥하고 마음이 짠하다.


봄에서 여름으로 계절이 변하는 동안 엄마는 수선화를 심었었다고 했다.

수선화가 무언지 아냐고 묻는 엄마의 질문에 나는,

엄마가 좋아하는 노란 꽃이라고 대답했다.

엄마는 내가 당신이 좋아하는 꽃도 모른다고 생각을 했던 걸까?

난 어릴 때 엄마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엄마랑 사나흘이라도 떨어져 있을 때면

매일 밤마다 베갯적삼을 다 적실 정도였다.

그러니 당연히 엄마가 좋아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

한창 내가 튤립에 매료되었던 시기와 같은 때여서 나는 요새 튤립이 너무 좋더라, 하니까 엄마는,

다음 봄에는 그럼 튤립을 심을게, 한다.

그럼 나는 꽃잎이 큰 거,라고 대답한다.

뒷산에는 벌써 둘이서 열심히 가꿔놓은 보물들이 가득했다.

엄마를 도와 쑥도 캐다보면 아빠는 자랑할게 뭐 그리 많은지 말이 끊이질 않는다.

이번엔 딸기를 심었다면서 딸기를 보여주기에 감탄하니, 이따가 따먹자고 꼬신다.

엄청나게 주렁주렁 달린 줄 알았건만, 보니 빨갛게 익은 게 애걔, 3개뿐이다.

실망한 듯한 나를 뒤로 하고 엄마와 아빠는 웃으며 우리 가족 하나씩 나눠먹으면 되지 뭘 그러냐 한다.

맞지 맞지, 하면서 귀한 딸기가 아까워 이따 밥 먹고 후식으로 먹자니 뭐 이걸 후식으로 먹냐면서

싱싱하게 바로 따서 먹어야 한다며 씻어서 입으로 곧장 직행이다.

시중에 파는 딸기보다 확실히 맛이 있다.

딸기를 오물거리고 있자니 아빠가 공들인 모습이 눈에 선하다.

앞마당에는 망고수박과 참외가 자라고 있다.

아직은 열매가 보이진 않지만, 올여름 수박과 참외를 원 없이 먹을 생각에 꿈이 부푼 아빠를 보니

그만큼 많이 열릴 건가보다~ 싶다.


작년에 일을 쉴 때에는 일주일이고 부모님 집에서 머물곤 했었다.

함께 지내다 너무 오래 있다 보면 엄마랑 아빠랑 싸우곤 하는데,

그때가 다시 내가 돌아와야 하는 시기였다.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할 수가 없어서 주말에 잠깐 1박 2일 다녀오는데, 이제는 오는 길이 그렇게 아쉽다.

아빠는 이 주황색 지붕 집으로 이사한 뒤 부쩍 부지런해졌다.

점심까지 늘어지게 잠을 자던 아빠는 해가 뜨자마자 밖에 나가 밭을 가꾸고

이제 이 집에서 가장 늦게 기상하는 것은 나뿐이다.

마당에 있는 덱에서 책을 읽고 커피를 마시는 엄마와

크게 노래를 틀어놓고 뒤에 있는 텃밭을 쉼 없이 가꾸는 아빠,

밖에 나간 아빠와 엄마를 애타게 찾느라 가열차게 울어대는 우리 집 고양이 구월이,

한창 솜털이 빠지고 쑥쑥 크는 오골계 병아리들 소리에 깨곤 한다.


흔히들 시골이 조용하다고 하는데, 시골은 도시와는 색다른 소리로 시끄럽다.

집 앞에는 논밭이 넓게 펼쳐져 있어서 개구리가 무척 많다.

애기 때는 밤에만 들리던 개구리울음소리 때문에 밤에만 우는 줄 알았는데, 대낮에도 시끄럽게 울어댄다.

우는 주기도 따로 있는 듯싶다.

쥐 죽은 듯이 조용하다가 갑자기 한 번에 개굴개굴 울어대면 그 소리가 우렁차다.

거기다 이제 막 자라나는 오골계 병아리들은 말도 못 하게 말이 많다.

쉼 없이 짹짹거리고 돌아다니며 재잘거리는 소리를 들으면 아침에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다.

겨우 일어나서 찬물로 이를 닦고 세수를 하고 머리를 질끈 동여 메고 나오면,

하늘이 눈부시게 파랗고 마당과 뒷산의 나무와 풀들에 햇빛이 뜨겁게 부서진다.

그렇게 나가서 덱에 있는 캠핑용 의자에 누워서 아빠가 달아둔 풍경소리에

내가 사 온 썬 캐쳐가 부딪히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아무리 생각이 많은 나라도 아무 생각이 없어진다.

가끔 내일이 월요일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걱정이 앞서려고 하면

현재에 충실하기 위해 앞선 나를 끌어와서 지금으로 다시 데려다 놓는다.


다시 월요일이다.

지난주는 유독 힘들어서 그랬는지 무척이나 길게 느껴졌다.

오늘 카카오톡 채널을 통해 옥천에 사는 어떤 분이 본인의 시골 생활에 대한 쓴 글을 봤다.

그 글에서 그분은,

오래된 기차가 산허리를 타고 용꼬리처럼 사라지는 곳이야.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참 차분해져.
아빠가 그러시더라고.
아무리 바빠도 사람은 자연에 마음을 두고, 감정을 두고 살아야 한다고.
그리고 모든 생명에 감사함과 동시에 측은함을 느끼라고.
(출처 : https://theqoo.net/1987301365)

말한다.

참 공감되는 말이다.

마당의 덱에 있는 캠핑용 의자에 누워

맞은편의 넓고 큰 도로에서 쌩하고 지나가는 크고 빠른 차들을 보고 있자면

같은 생각이 들곤 하니까.

이륙하는 비행기 창문을 통해 밑을 내려다볼 때도 같은 생각이었다.

발을 동동 굴리며 애쓰던 고민들과 소모하는 것에 그치지 않던 감정들이 한낱 먼지처럼 보였다.

가끔은 그렇게 내가 너무 가까이 마주하던 것들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보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청포도 덩굴이 있던 자리에 닭장이 놓였다. 오른쪽에 보이는 나무 판자가 거의 다 큰 닭들이 있는 곳이고, 왼쪽 하단에 작은 병아리들이 오골계 새끼들이다.
내가 좋아하는 며느리밥풀꽃. 꽃잎이 이미 몇개 졌다. 이미 져버려서 힘없이 바닥에 떨어진 꽃잎은 왜인지 더 서글프다. 옆에는 상추도 같이 자라고 있었네, 이제 알았다.
귀하디 귀한 빨간 딸기가 숨은 그림 찾기 하듯 두 개 숨어있다.
엄마는 잘 익은 딸기 세 개를 씻어서 맨 왼쪽의 가장 크고 빨간 딸기는 나한테, 맨 오른쪽의 빨간 딸기는 아빠한테, 가장 덜 익은 딸기는 당신이 드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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