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lyric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yric Aug 18. 2021

요즘은 일 하기 전에 대충대충을 읊조리고 갑니다.

원체 전반적으로는 뭐든 대충 하는 성격인데, 뭔가 하나에 꽂히면 그 일은 무조건 꼼꼼히, 성실히, 열과 성을 다해 하는 통에 스트레스가 심한 성격입니다.

완벽주의적 성격 탓인지 뭐 하나를 시작하면 매일 꾸준히 정해둔 목표치를 반드시 해내야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서, 한 달 전 요가를 시작할 때도 정말 많은 고민을 했어요.

제게는 뭔가를 시작하는 게 정말 두렵고 그것을 완벽히 해내지 못할까 스트레스입니다.


자연히 제게 주어진 일을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진 않아도 대충 하지를 못해서 늘 하얗게 불태우고 오는 타입인데, 옮긴 지 1년이 넘은 이 학원에서 요새 스트레스가 심하네요.


세상의 어떤 일이 제 마음대로 되겠느냐만은, 제가 마음과 정성을 다해도 반도 따라주지도 않는 아이들에게 서운함도 커지고 속상하기도 하고 좌절감이 부쩍 커집니다. 나는 늘 최선을 다하는데, 나는 이보다 더 잘할 수 없는데, 나는 이 시간을 단 1분도 허투루 보내지 않으려고 늘 애를 쓰는데, 이렇게 매일을 살아도 그것을 아이들이나 학부모님들은 알지 못해요.


기대를 갖고 힘을 내서 으쌰 으쌰 하다가 실망하고 좌절하는  반복이, 작은 교실 안에서 혼자서만 발버둥 치며 사소한 일에  매달아가며 감정적으로 소모하는 일이 요새는 부쩍 힘에 부쳐서 일에 가기 전에 ‘대충 하자.’ 읊조리고 가려고 노력합니다.


대충대충 하자, 아이들에 너무 마음 쏟지 말자, 내가 학부모도 아니니까 그냥 가르치는 일에만 집중하자, 해도 잘 되지 않던 게 1년이 넘어 지쳐요.

이 일을 훨씬 오래 하신 분들에게 1년이라는 숫자가 얼마나 짧겠습니까만은, 아직도 초짜 같은 제게 기대와 좌절의 쳇바퀴를 1년 동안 굴리는 것은 너무 벅차고 힘이 듭니다.

어제는 그게 그렇게 서러워 집에 와 훌쩍훌쩍 울었네요.


대충 하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울까요?

적당히만 하면 되는데, 적당히가 잘 안됩니다.

공부나 미래 설계와 같은 다른 일들은 대충대충 잘만 하면서, 청소는, 빨래는, 운동은, 일은, 아이들에게는 대충이 안돼서 힘이 들어요.


오늘도 퇴근해서까지 일을 생각하고, 아이들을 생각하는 제 모습이 지긋지긋해서 의식적으로 생각들을 멀리 두고 옵니다.

잠깐이라도 텀이 생기면 아이들 생각이 머리에 가득 차요.

그때 그 아이는 왜 내 전화 혹은 문자에 답이 없었을까?

내가 그 아이에게 무슨 말을 잘못한 걸까?

나는 아이들에게 접근하기 어려운 선생님인가?

일을 무척 사랑하는 것도 아니면서, 왜 이럴까요?


제 스스로 생각하기에 저는 아직 어리고 철도 없는 아이인데, 아이들 앞에서 어른스러운 척, 감정적으로 성숙한 척하려니 그게 탈이 난 것 같아요.

나는 아직 애가 맞는데.. 나이는 자꾸 먹고. 이제 군인 아저씨나 군인 삼촌, 군인 오빠, 군인 친구가 아니라 군인들이 다 동생이에요.

새삼 슬프죠, 나이는 자꾸 먹고 내 속은 그대론데, 겉으로는 어른스럽고 성숙한 척해야 한다는 게. 그런 부분이 더 필요한 직업이라 괴리감이 점점 더 커져요.


오늘도 어김없이 일 생각에, 아이들 생각에 마음에, 생각에 여유가 없는 밤입니다.

예전엔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이맘때면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고 음악을 듣곤 했는데.


오늘은 저도 모르게 열심히 살아버렸어요.

모든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했고 모든 아이들을 꼼꼼히 봐줬어요.

이 모든 것을 학부모님들은 물론, 당사자인 아이들까지 모를지라도요.


저, 내일은 진짜 대충 할 거예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