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어떤 틀에 갇힌 것 같았고, 의미 있는 것을 쓰지 못하면 쓸 가치가 없다고 느꼈다.
솔직해지기가 두려웠고, 모든 것을 가감 없이 적어 내려 간다는 행위가 어려웠다.
지난 금요일 저녁 퇴근 후 충주행 버스에서 어둑어둑한 창 밖을 바라보며 정말이지 오래간만에 사념에 빠졌었다.
예전엔 버스나 기차를 타서 창 밖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하는걸 정말 좋아했는데, 이제는 좀 어려워졌다.
1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한자리에 앉아있는 게 엉덩이에 좀이 쑤시고 지루했고, 창밖을 봐도 별 생각이 들지를 않아 휴대폰을 들여다보곤 했다.
버스나 기차에서 노래 듣는 것을 제일 좋아라 하던 내가 이제는 그것마저 지겨웠다.
그런 와중에 정말이지 오래간만에 그런 즐거움이 찾아온 것이다.
어릴 때 동네 놀이터에서 늦은 밤 그네를 탔던 기억이 났다.
요즘은 나이가 들수록 겁이 많아져 그네를 타도 조심조심 발을 구르고 어느 정도 높이가 되면 가슴이 답답할 정도로 무서워져서 격하게 타지는 못한다.
그런데 그때는 좀 달랐다.
그때의 나는 밤 중에 그네를 타면서 시선을 밤하늘에 고정하고 열심히 발을 굴렸었다.
밤하늘에 박혀있는 별을 눈으로 헤아리면서 높게 뜬 그네에 몸을 맡기면 마치 그 밤하늘로 빠져들 것만 같았다.
그래서 더 열심히 발을 굴리고, 그럼 정말 몸이 쑥 날아가서 그 밤하늘에 꽂힐 것 같은 상상을 실컷 하면서 행복했다.
나이가 들수록 겁도 많아지고, 땅바닥에만 시선을 고정하는 벼처럼 점점 수그러들고 있는 것만 같다.
철은 들고 있지만, 그럴수록 엄마 아빠 앞에서도 솔직한 모습을 내비치기 어려워진다.
사소한 말들에 진지해지고, 장난으로 넘길 수 없다.
무얼 하든 못마땅해하면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더 이상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안 괜찮아도 괜찮다고 하게 되고, 엄마랑 약속했던 브런치를 못 먹게 되어도 이젠 금방 마음을 접는다.
피치 못할 사정이니 어쩔 수밖에, 하게 된다.
생떼 부리고 싶지 않아 지고, 점점 원하는 것을 쟁취하고 싶지 않고 포기하고 싶어 진다.
시간이 흐르면서 내 감정은 점점 안정을 찾아가고 있지만, 그래서 나는 예전보다 덜 불행하고 덜 슬프지만, 예전보다 더 행복하지는 않은 것 같다.
감정이 어느 정도의 기본에 고정되어 기복이 없는 느낌이다.
그래서 글을 쓰기가 더 어려워졌다.
감정을 느끼기가 어려우니 글에도 감정이 사라지는 것 같다.
예전엔 지나가는 플라타너스 나뭇잎만 봐도 저 플라타너스가 내 인생 같다는 생각에 글감이 떠올랐다면, 지금은 더 이상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다.
최근에는 자격지심이 큰 문제였다.
그게 누구든 간에 상대에게 자격지심을 느끼는 바람에 모든 관계가 힘들게만 느껴졌다.
자격지심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더 드물겠지만, 이 감정으로는 더 이상 사람을 대할 수가 없었다.
정상궤도로 다시 돌리려면 감정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자격지심을 느끼는 초라한 내 모습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마음이 복잡하다.
이러저러한 일들은 자꾸만 생겨나는데, 조리 있게 정리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요새는 글이라기보다는 일기를 더 자주 쓰고 있다.
일기는 조금 더 솔직해도 되고, 조금 더 가벼워도 되니까.
오늘은 두서가 없었어도,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마음에 있는 이야기를 털어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