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병자리

도서관 / 별자리 / 이불

by 은숲


그녀는 자신이 물병자리라고 말했다.

그날, 나는 친구를 따라 도서관에 갔다. 800번 책장에서 친구가 책을 고르는 동안 나는 700, 600, 500번 순으로 복도를 거닐었다. 숫자가 적어질수록 책장 사이에서 골똘히 서 있는 사람들도 줄었다.

100번 ‘철학’에서 걸음을 멈췄다. 검은 머리카락이 어깨까지 오는 어떤 여자가 쪼그려 앉아있었다. 그녀는 길게 늘어진 앞머리를 귀 뒤로 꽂으며 아래층 선반을 훑고 있었다. 100번 대에서 사람을 보는 일은 흔하지 않았다. 호기심이 들었다. 그녀가 어떤 책을 찾는지 알고 싶었다. 나는 그녀 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별자리’가 들어간 제목의 책을 집었다.

나도 모르게 짧은 탄식이 나왔다. 별자리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자리를 떠나진 않았다. 그녀에게서 풍기는, 막 세탁을 끝낸 이불에서 나는듯한 포근한 냄새가 좋았다. 옆에 꽂혀있는 다른 별자리 책을 골랐다. 그녀의 시선이 내 손에 있는 책 표지에 닿았다.

“별자리에 관심 있나 봐요?”

그녀가 말했다.

“네? 예에…….”

나는 말끝을 흐렸다.

“저는 물병자리인데.”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입술만 달싹였다. 지금까지 나의 세계에선 별자리는 빈칸이었다. 볼이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그녀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먼저 떠났다. 나는 우두커니 혼자 서 있다가 손에 집은 책을 빌렸다.

친구를 먼저 보내고 열람실에 앉아 책을 펼쳤다. 나는 물고기자리였다. 물병자리를 찾아보았다. 지적이고 개성이 강하다고 적혀있었다.

책을 덮고 도서관을 나왔다. 해가 반쯤 저물었지만 바깥은 뜨거운 여름 공기로 가득했다.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보도블록에서 신발을 막 떼려는 순간, 멈칫했다. 그녀가 선 채로 책에 빠져있었다. 다가가서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물고기자리에요, 저는.”

그녀가 나를 알아보고는 싱긋 웃었다.

“혹시 같이 산책할래요? 아니면 아이스크림이라도.”

부는 바람에 머리 위의 무성한 나무에서 사라락, 사라락 소리가 났다. 떠는 내 목소리 같았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건너요.”

그녀가 먼저 걸었다. 물기를 가득 머금은 공기가 우리를 감쌌다. 마치 커다란 물병 안에 있는 것 같았다. 물병이 수조가 되는 세계였다. 나는 물고기가 되어 헤엄치듯 그녀를 따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