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탐 씨

원칙 / 해결 / 당황

by 은숲

우리 셋은 저녁 식사를 하고 항상 호수 주변을 산책했다. 산탐 씨는 노을을 좋아해서 일몰 시간에 맞춰 나가면 기뻐했다.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노을을 보며 산탐 씨는 자신의 행성을 떠올렸다.

"붉은색은 원칙과 전쟁을 의미했어요. 붉은색만 보이면 늘 긴장했죠. 지구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아서 신기해요."

내 사수인 경호 선배는 당황하지 않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고 투어가이드는 저래야하는 구나 하고 나도 경호 선배를 따라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몇 광년이 떨어진 곳에서 온 그들에게도 조용함이 위로가 될 수 있겠구나 하고서.

산탐 씨는 두 팔을 벌렸다. 나와 경호 선배가 입은 유니폼인 검은 슬랙스에 청셔츠와 다르게 산탐 씨는 민소매 티셔츠 차림이었다. 산탐 씨는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다고 항상 최소한의 옷을 고집했다. 드러난 겨드랑이로 촉수 몇 가닥이 삐져나와 있었다. 말릴까 하다가 말았다. 이 역시 위로의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은 짧고도 길었다. 나는 산탐 씨에게 정이 꽤 들었다. 자신의 속내를 담담하면서도 궁리없이 말하는 그가 좋았다. 떠나는 날, 나는 편지를 챙겼다. 펄프로 만든 종이가 산탐 씨가 있는 곳에서 산화될 지 그대로 일지 모르지만 진심 어린 선물을 주고 싶었다. 내가 무언가를 해결해 줄 수는 없겠지만 지구에서의 시간이 도움이 되었기를 바란다는 내용이 담긴 편지를 건넸다. 산탐 씨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은 채 편지를 받고 지구를 떠났다.

나는 투어가이드 회사에서 일 년 남짓 일하고 그만두었다. 만남과 이별의 반복을 적응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퇴사할 때 쯤에는 번 아웃이라기 보다 번 허트처럼 가슴이 뻥 뚫려버린 것 같았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서 우연히 경호 선배를 만났다. 가벼운 안부 인사 몇마디와 함께 경호 선배는 산탐 씨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산탐 씨가 왕이 됐대."

"네? 왕이요?"

"응. 통일을 했다나봐. 그 태조 왕건 같은 사람 아니, 외계인이 된 거지."

마침 경호 선배는 직장 동료와 일이 있다며 자리를 떠났다. 으레하는 밥 먹자는 얘기도 하지 못하고 나는 생각에 잠겼다. 붉은색을 보면 긴장하던 산탐 씨. 그런 그가 내내 붉은색을 보며 정복해 나가다니. 그쪽도 정복이라는 개념이 있기는 한 건가? 너무도 먼 공간, 먼 존재들의 얘기라 더는 상상할 능력이 없었다. 다만 지금부터라도 그에게 붉은색이 없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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