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빗방울
사무치는 그리움이 빗방울이 되어 떨어진다.
톡, 토독.
창가에서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소리가 나는 창가로 향했다. 빼꼼히 고개를 들고 창 위를 올려다보자 먹구름이 그득하다. 떨어지는 빗방울을 따라 닫혀있는 창문에 빗줄기가 그어진다. 오늘 소나기가 온다더니 지금이었나. 흐트러진 매무새를 정돈하고 병실 침대에 누워계신 할머니 곁으로 돌아왔다.
곤히 주무시고 계시던 할머니의 눈꺼풀이 살며시 떠올랐다. 저와 마찬가지로 창가를 두드리는 빗소리에 일어나신 모양이었다. 몽롱하게 뜨인 시선이 허공을 머무르더니 창가로 이어졌다. 비가 오기 시작했으니 자리에서 일어나시려나 싶어 할머니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할머니는 처음 이곳에 오셨을 때부터 비가 오면 어김없이 외출하셨다. 오래된 요양병원이라 존재하는 처마 밑 좁은 자리에 앉아 쉼 없이 쏟아지는 비를 하염없이 바라보셨다. 가끔은 무리하여 지쳐 쓰러지기 직전까지 망부석이 되어 자리를 지키셨다. 걱정이 태산 같은 주변 이들 덕분에 멀리까지 나가진 않으신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할머니의 외출이 길어질 때쯤에 누군가 다가와 할머니께 물었다.
"우리 할머니, 누굴 이렇게 기다리시는 걸까요?"
춥지 않아요? 저랑 이만 들어갈까요? 때가 되면 울리는 뻐꾸기 소리처럼 반복되는 요양보호사의 상냥한 질문에 할머니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고는 다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셨다.
지난 초가을 무렵부터는 몸 상태가 급격히 나빠져 외출이 힘들어지자 병실 창문 앞에 오도카니 서서 비 오는 풍경을 바라보셨다. 다리 골절에 무리가 가기 시작하자 병원 측에서 할머니를 위해 창가에 의자를 하나 놓아두었다. 그 뒤 비가 오는 날에 할머니의 행동은 둘 중 하나가 되었다. 외출을 하여 처마 밑에 앉거나 창가 앞 의자에 앉거나.
평소와 같다면 오늘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유달리 비를 좋아하시던 분이었으니 오랜만에 온 비를 그저 지나칠리 없으리라 생각했다. 더군다나 한동안 밖을 안 나가셨으니 오늘은 나가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했는데, 창가를 바라보는 할머니는 미동이 없으시다.
의자에도 앉지 않으시려는 건가. 의문이 들 때쯤에 할머니의 얼굴에 표정이 실렸다. 의아하게 바라보자 말아쥔 손을 가슴께에 가져가 힘주어 꾹 누른다. 호흡이 떨어오는가 싶더니 감정에 복받친 사람 마냥 얼굴을 우그러뜨린다.
어디가 갑자기 아프신 건지 걱정이 되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파들파들 떨리는 할머니 입에서 울음 섞인 소리가 들렸다. 아주 오랜만에 듣는 할머니 목소리였다. 너무 작고 발음이 샌 탓에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거듭 웅얼거리시는 덕에 조금씩 내용이 들려왔다.
아이고. 아이고. 소리의 높낮이가 너무 다채로워 같은 발음 인지도 몰랐다. 갑자기 무슨 일이길래 앓는 소리를 내는 걸까.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는데 문득 새로운 말소리가 들렸다.
"··· ··· ···오셨네."
아무도 들어온 사람이 없는데.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다른 누군가는커녕 복도에서도 인기척이 없다. 할머니를 바라보자 허공 어딘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계셨다. 비 오는 창가가 아닌 단어 그대로 허공 어딘가. 텅 빈 공간을 바라보며 읊조리고 계셨다. 죽을 때가 되면 저승사자가 보인다던데 혹여나 그런 걸까 싶어 덜컥 무서워졌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누군가를 불러와야지 마음먹은 순간 할머니가 떨림이 가신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우리···. 낭군님 오셨네."
그리움 가득 배어 있는 목소리에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제야 할머니의 흐릿한 시야가 눈에 들어왔다. 아직 잠에 취해 계셨던 걸까. 꿈을 꾸고 계신가. 깨어난 게 아니셨나. 생각이 거듭되다가 결국은 그럼 괜찮지 않을까 싶어졌다.
그토록 그리워하던 할아버지를 보고 계신 듯한데 차마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 기나긴 세월 동안 꿈에서 조차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할아버지 너무 매정하지 않냐고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 까닭도 있다. 그 귀한 얼굴 내내 숨겨놓으시더니 왜 이제야 할머니께 모습을 비춘 건지. 나올 수 있었으면 진즉에 나와야 하는 거 아닌가. 홀로 툴툴거리는데 처음보다 훨씬 좋아진 할머니의 목소리가 느릿하게 말을 이어갔다.
"나는 이제 쭈그렁 할망이 됐는데. 당신은 그 전 날- 그 모습 그대로 여전히 눈이 부시는 구려."
할머니의 목소리는 세월이 무색하게 들떠있었다. 수줍고 설레는 마음을 한껏 드러내는 소녀처럼 푸스스 웃으며 한 마디 한 마디 이어나간다. 오랜만에 듣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무척이나 반가워 누군가를 불러야 한다는 마음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어정쩡하게 있던 자세를 바로 하고 앉아 할머니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오늘은 내가 아닌 꿈속의 할아버지에게 얘기하는 거지만 나는 언제나 할머니의 청자였기에 오늘도 괜찮다고 해주실 테니까. 괜히 허락을 받자고 할머니를 깨우고 싶지 않았다.
언제나 과묵하던 할머니가 수다쟁이가 되실 때가 있다. 할머니가 기행을 부리는 날. 비가 오는 날. 처음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은 날도 오늘처럼 소나기가 내렸다. 포근한 바람이 부는 화창한 날씨에서 변덕스럽게 소나기가 내린 어느 봄 날이었다.
후두둑 떨어지는 빗방울을 피해 급히 처마 밑으로 간 자리에 할머니가 앉아계셨다. 꽃샘추위가 완전히 가신 건 아니었던 탓인지 겨울철에 두를 법한 두툼한 담요를 겹겹이 두르고 앉아계셨다. 그 곁에 앉아 소나기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그날따라 오래 머무르던 소나기에 질릴 무렵, 떨어지던 빗방울에 손을 뻗은 할머니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비가 왜 오는지 아니?"
그냥 때가 되었으니 오는 거 아닌가. 차마 답은 못하고 시큰둥하기 생각만 하는데 할머니는 내게 답을 바라고 한 질문이 아닌 듯 대수롭지 않게 그에 대한 본인의 답을 내놓았다.
"하늘이 땅을 그리워해서 흘리는 눈물이란다."
갑자기? 하늘이 땅을 왜 그리워하지. 멀뚱히 할머니를 바라봤지만 그 뒤로 이어지는 말은 없었다. 그 뒤로도 할머니는 소나기가 지나갈 때까지 한참을 더 자리를 지켰고 떠날 시점을 놓쳐버린 나 또한 얼떨결에 할머니 곁을 지키게 되었다. 끝까지 다른 말은 없었다. 그러나 그날이 이야기의 시작이었다. 그 뒤로 비가 오는 날이면 할머니는 내게 한두 마디씩 말을 건네셨으니까.
말의 내용은 점차적으로 늘어났고 본격적으로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한 건 여름 장마철 때였다. 양갓집 고명딸로 태어났다던 할머니는 무척이나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냈다고 했다. 풍족하고 여유로운 집안에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는데, 폭우가 쏟아지고 천둥이 내려치던 짙은 암흑이 깔린 날 그러니까 일제강점기 때 모든 것을 잃었다고 했다. 그 말을 끝으로 한 동안 말을 멈추셨는데, 이내 그 무렵에는 넋을 놓고 살아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하며 할아버지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할아버지와는 남북전쟁 때 처음 만났다고 하셨다. 그때의 목소리도 지금처럼 설레면서도 행복감과 그리움이 물씬 묻어났다.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첫 만남에도 빗방울이 떨어졌다. 비가 쏟아지려나 싶어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누군가 큰 소리로 외치며 달려와 제 품에 할머니를 와락 껴안았다고 했다. 깜짝 놀라 밀치는데 힘이 어찌나 우악스러운지 꼼짝도 않았더란다. 비명이라도 지르려는데 상대가 먼저 오열을 터트렸다. 그 소리가 너무 슬퍼서 입이 다물리는 건 물론이거니와 버둥거림도 멈추게 되더라. 그러니 상대가 더욱 강하게 필사적으로 껴안더라. 그리고 방울방울 떨어지던 비가 어느새 폭우처럼 쏟아지고 오열 소리가 묻혀가니 상대의 설움을 비가 앗아가는 듯하여 다독여주게 되더라. 그게 할아버지였다.
그 당시 할아버지는 본인을 제외한 가족 모두가 폭격을 당해 사망하여 제정신이 아닌 상태였다. 할머니를 처음 본 순간 할머니를 본인의 여동생이라고 착각을 하여 그리 행동한 것이었다고 하였다. 그 오열하는 소리가 너무 슬퍼서 그리고 그 품이 너무 따뜻해서 할머니는 밀쳐내지 못했다고 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할머니도 눈물이 복받쳐 올랐다고 한다. 한 번 터진 울음은 그간 서러움을 다 토해내기라도 하듯이 더욱 큰 울음이 되었고. 나중에 정신을 차린 할아버지가 반대로 할머니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다독여주었다고 했다. 눈물 콧물 쏟아가며 그렇게 울어본 것이 어렸을 적 이후로는 처음이라 울음을 그치고 나서 당황했었는데. 붕어라도 된 양 눈물로 퉁퉁 불어 터진 할아버지의 얼굴과 마주하자마자 웃음이 터져버렸단다. 그 모음에 할아버지도 웃음이 터지고 이번엔 또 한참을 웃었다고 했다. 주변이 하나도 안 보이고 안 들리고 그저 서로에게 서로만 보였다고 했다. 서로 이름도 모르면서 그 누구에게도 느끼지 못했던 친밀감이 느껴졌다고. 이 사람이 내 사람이라는 것을 운명 같이 느껴졌다고 했다. 그 뒤로 항상 함께 했다.
그리고 가을비 내리던 날에 서로에게 서로가 전부였던 날들을 얘기해주었고. 그 무렵 할머니의 몸은 많이 약해지셨다. 할머니는 비가 오는 날이면 언제나 비를 보셨는데 눈이 오는 날에는 밖은커녕 커튼까지 쳐놓고 꼼짝도 하지 않으셨다. 그 해 겨울 어느 날 기온이 이례적으로 상승하여 눈이 아닌 비가 내리던 날. 빗방울이 창가를 두드리고 할머니는 커튼을 걷어 창가 앞 의자에 앉아 오랜만에 이야기를 꺼냈다. 그토록 사랑하던 이가. 함께 미래를 꿈꾸며 돈을 벌어오겠다던 이가. 자신과 함께 백년해로하자던 이가 백골 가루가 되어 돌아왔단다. 눈이 오면 그 새하얗던 백골 가루를 한 줌 한 줌 강가에 뿌렸을 때가 떠오른다며 눈을 차마 볼 수가 없다고 하셨다. 겨울에 눈 대신 비가 내리지 않았더라면 나는 할머니에게 이 얘기는 결코 못 들었겠구나 싶어졌다.
그리고 초 봄이 되어서야 나는 할머니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늘이 땅을 그리워해서 흘리는 눈물이라던 그 말이. 할머니는 하늘에 계신 할아버지가 아직 땅에 존재하는 자신이 그리워 울고 있는 거라 표현한 거였다. 할머니 이야기들에 따르면 할아버지는 무척이나 정이 많고 눈물도 많은 사람이라 충분히 이해가 됐다. 동시에 그 표현 뒤에는 할아버지를 향한 할머니의 그리움만이 가득했다. 비와 눈은 할머니에게 있어서 할아버지만을 떠올리게 하는 무언가였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떠난 이후로 평생을 할아버지만 그리워하며 사셨다. 그 누구에게도 표현하지 않고 오로지 비와 눈을 보며 속으로 끊임없이 삼키고 계셨던 거였다. 그리고 오늘. 처음 내게 이야기를 시작했을 때와 같은 늦봄. 따사로운 바람이 불어 드는 그 어느 봄날처럼 비가 오기 시작했고 할머니는 사무치게 그리워하던 할아버지를 만났다.
"날 데리러 온 거요? 왜 이제서야 왔어요."
그간의 회포를 푸는 것만 같은 다양한 얘기들 뒤로 나온 물음에 상념에서 벗어나 놀란 눈으로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눈에 띄게 나빠지는 안색에 누군가를 불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매번 괴로워 보이던 할머니의 모습이 너무도 편안해 보여서 누구도 부를 수가 없었다.
"그리웠다오. "
언제나 메말라있던 할머니의 눈가에 물기가 고였다.
"너무도 그리웠어."
그동안 표현하지 못했던 나날에 한이라도 풀 듯 수차례 그리움을 내뱉던 할머니의 호흡이 점차 옅어진다. 눈 감으면 사라질까. 찰나의 깜빡임도 없이 허공을 응시하던 눈꺼풀에 무게가 실린다. 한 번 내쉬는 숨에 주름진 미간이 곱게 펴지고 또 한 번 내쉬는 숨에 입매가 부드러운 호선을 그린다. 마지막으로 뱉어낸 숨을 끝으로 주름진 눈꼬리를 타고 세월이 흘러내린다.
삐-
서늘한 기계음이 여명의 끝을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