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포기의 순간은 오고야 말았다. 마냥 현실도피를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사실 처음 포기를 결심했을 때는 얼마 못 가 다시 돌아갔다. 더는 안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집안 형편도 좋지 않을 때라 취업전선에 뛰어들기로 했다. 어학시험을 먼저 보고 원서를 썼다. 아직 정신 못 차리고 있던 나는 대기업만 골라 넣었다. 그래야 고시 실패가 조금이나마 만회될 것 같아서. 그래야 덜 창피할 것 같아서. 원서를 쓰는 건 고역이었다. 쓰면서 내가 얼마나 해놓은 것 없이 허송세월했는지 직시해야 했다. 내가 너무 한심하고 비참하게 느껴졌다. 나는 자기 PR을 진짜 못 하고 안 그래도 내세울 게 하나 없는데 원서를 쓰려니 어떻게든 나를 포장해야 했다. 자소서에 쓸 내용이 없었다. 그래도 꾸역꾸역 써서 열 몇 군데 원서를 넣었지만 서류전형에서 줄줄이 탈락했다. 나이는 많고 학점도 그다지 높지 않고 이렇다 할 경험도 없어서 자기소개서도 특징이 없고. 떨어지는 게 당연했다. 낮춰서 지원할 생각은 못 하고 취업전선에 발끝만 잠깐 담갔다가 다시 고시로 돌아갔다. 역시 이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 년 뒤 역시 이 길은 내 길이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을 뿐이었다.
대기업에 들어갈 수 없다는 건 이제 알고 있었고 작은 회사에 들어가기는 싫었다. (물론 나중에는 정신 차리고 소기업도 감지덕지하다고 생각하게 됐지만.) '유학까지 갔다 와서'라는 생각에 뭔가 그럴싸한 데 들어가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생각한 게 그나마 7급 공무원 시험이었다. 그런데 준비를 시작하고 몇 달 지나지 않아 위염에 역류성 식도염이 와서 거의 일주일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온몸이 더는 공부를 못하겠다고 거부했다. 결국 공무원 시험도 포기했다.
막막했다. 뭘 해야 할지 뭘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시간을 벌고 싶었다. 뭘 할지 생각해 보고 알아볼 시간. 그래서 일 년 동안 임시로 영어학원에서 일했다. 보수는 낮았다. 4대 보험도 지급되지 않는 곳이었고 월급에서 매달 얼마씩 떼어간 돈을 모아서 퇴직금이라고 줬다. 내가 직접 수업을 준비해서 하거나 과외를 했으면 그보다는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었을 텐데 그러고 싶지 않았다. '유학까지 갔다 와서'라는 생각은 끊임없이 따라다니며 나를 괴롭혔다. 유학까지 갔다 왔는데 원어민에 가깝게 영어를 유창하게 하지 못하는 자신이 그때도 그 후에도 늘 부끄러웠다. 몇 년 살다왔다고 당연히 원어민처럼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나는 늘 그걸 부끄럽게 여겼다. 안그래도 영어에 자신이 없는데 영어 강사를 본격적으로 할 생각은 전혀 없었고, 근무시간 외에도 뭘 준비하기에는 능력도 여력도 없어서 그런 게 필요 없는 곳을 찾았다. 대우는 형편없었지만 일이 비교적 쉽고 따로 준비할 게 없어서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어쩔 수 없이 고시를 포기했지만 한순간에 깔끔하게 포기되지는 않았다. 언젠가 쓸 일이 있지 않을까, 다시 고시에 도전하고 싶어지지 않을까 하는 미련에 공부하던 책과 자료들을 한동안 버리지 못하고 끌어안고 있었다. 시간이 좀 지나고 어느 날 이제 정말 저것들이 필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와서 고시를 다시 도전하기에는 너무 늦었고 더 이상 도전하고 싶지가 않았다. 한 때는 그것만이 내 길이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길이 아니면 안 될 것만 같았는데. 그제야 그 길이 정말 내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정말 내가 원한 길이 맞기는 한지 그전까지 애써 외면했던 의심도 직시하게 됐다.
책을 내다 버릴 땐 기분이 좀 이상했다. 몇 년간의 내 인생을 내다 버리는 것 같기도 하고 인생의 한 막이 끝난 것 같기도 했다. 다 갖다 버리고 후련하기도 했다. 지난 시간에 진짜 안녕을 고하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끝내 열심히 해보지 못한 것만은 계속 아쉬웠다. 정말 열심히 싶었는데 결국 그러지 못했다. 단 한순간도 열심히 하지 못한 채 끝이 났다. 어떤 보상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결과가 어찌 되든 그저 한 번만이라도 내 모든 걸 쏟아붓고 최선을 다해보고 싶을 뿐이었는데 그게 왜 안 되는 걸까 생각했다. 내가 그토록 동경하는, 무언가에 미쳐서 노력하는 사람들은 나와는 완전 다른 종류의 인간인 걸까. 아무리 동경하고 따라가고 싶어도 그들처럼 될 수 없는 게 억울하기까지 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이제 나는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