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부모 수업
새벽 3시.
잠잠이가 있는 배 안쪽으로 압력이 점점 강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진통이었다. 통증이 거세지는 진통이 오기 전 의료진에게 알렸다. 의사는 아침까지 기다리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 곧바로 당직 마취 담당의사에게 연락했다. 아무 문제 없이 일사불란하게 수술 준비가 되었다. 홑이불 한 장으로 몸을 가리고 있던 나는 잠시동안 수술을 기다렸다. 담당간호사가 들어와 수술실이 바로 앞이니 함께 걸어갈 수 있겠냐고 물었다. 조금 어리둥절하여 석연찮은 표정으로 그러겠다고 했다. 베드에 옮겨질 줄 알았지만, 아직 통증이 오지 않았으니 걸을 만도 했다. 간호사의 에스코트를 받아 오십 보정도 걸었을까. 드라마에서 보던 것처럼 유리창문이 있는 스테인리스 문을 마주했다. 아! 여기구나! 수술실 문은 새로 단장하여 반짝거렸다. 옆으로 문이 싸악 열리자, 설렘과 두려움도 한껏 부풀어 올랐다. 잠잠이가 혹시 다리 사이로 비집고 나올까 종종걸음으로 들어갔다. 수술실은 얼음 냉장고 같았다. 온몸에 찬기가 들어오니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어느새 이까지 부딪히며 달그닥거렸다. 담당 간호사는 친절히 나를 수술 베드에 앉혔고 마취하면 괜찮아질 거라며 위안을 했다.
마취과 의사가 짧게 인사를 했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가늠이 되질 않았다. 마스크와 하얀 가운뒤로 보이는 남자의사는 중키의 깡마른 모습이었다. 사무적이었지만, 전문적으로 들리는 목소리로 마취 과정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믿음이 갔다. 아니 내 믿음을 그에게 실어야 했다. 수술베드에 걸터앉아 담당 간호사에게 몸을 기댔다. 등을 꼽등이처럼 말아야 마취가 잘 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은 터라 최대한 구부리려고 노력했다. 잠잠이로 꽉 찬 배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겨우 겨우 허리를 구부리고 마취를 허락했다. 간호사가 나를 천천히 수술 침대로 눕혔다. 서서히 하체 쪽이 뜨듯해지는 것을 느꼈다. 전신 마취는 여러 번 해 봤지만, 하체 마취를 한 번도 해보지 않았기에 어떤 느낌일지 두려웠다. 막상 마취약이 몸에 들어오니 오히려 좋았다. 하체가 노곤노곤하게 따뜻했다.
수술 베드에 눕자, 내 가슴 팍위로 푸른색 수술 막이 쳐졌다. 환자의 트라우마를 방지하기 위한 일종의 배려막이었다. 치과의사로 일하며 환자를 치료하며 째고, 피나고, 꿰매는 건 무수히 해봤기에 나는 아무렇지 않아 사실 잠잠이가 나오는 과정을 다 지켜보고 싶었다. 하지만 참았다. 병원 방침이니. 남편이 내 왼쪽 머리맡에 자리를 잡고 추워서 떨고 있는 내 왼손을 잡았다. 수술 진들은 손을 빠르게 움직였다. 집기들이 부딪히는 소리, 수술 진들의 짤막한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이 모든 소리는 마치 전신 마취제가 몸에 들어가며 잠에 빠져들기 직전, 귀로 아득히 들리는 소리 같았다. 차라리 잠이라도 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잠도 오지 않았다. 반복되는 아득한 소리와 함께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수술이 진행되는 것 같았다. 나는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웬걸! 천장으로 수술하는 모습이 옅게 보였다. 쾌재까지는 아니었지만, 어슴프레 나마 잠잠이가 나오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되다니. 수술실 천장에는 LED 등이 여러 개가 켜져 있었고 그 아래로 빛을 산란시키는 불투명 플라스틱 판이 등 아래를 덧대고 있었다. 그 주위로 스테인리스 프레임이 둘러져 있었는데, 옆으로 4센티 정도 되어 보이는 프레임에 수술 과정이 반사되어 비치고 있었다.
한 줄의 빨간 선이 그어지고 기구들이 선 안으로 들어갔다. 내 아랫배에서 벌어지는 일이었지만, 통증이 느껴지지 않으니 공감이 되지 않아 두 눈 부릅뜨고 잘 볼 수 있었다. 메스로 짼 선을 벌리자 빨간색의 반달 모양이 되었다. 웃는 모습처럼 보였다. 조커의 입처럼. 기괴해 보일 만도 했지만, 마침내 아이가 나오게 될 구멍이 완성되었다고 생각하니 스마일의 입모양이었다. 수술이 진행되는 동안 마치 누군가 밟고 올라선 것처럼 아랫배에 큰 무게감만 느껴질 뿐이었다. 일분일초가 왜 그리고 길다고 느껴졌는지. 불편하고 싫다는 감정을 뒤로하고 얼른 잠잠이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내 눈의 초점은 멀리 천장에 선명하게 보이는 빨간색 스마일 구멍이었다. 블랙홀 아니 빨간 홀을 통해 지구로 착륙할 잠잠이의 모습을 놓칠세라 천장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수술진들은 바쁘게 기구를 주고받았고, 움직임은 바빴다. 10분쯤 지났을까 아랫배가 당겨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아기의 울음소리가 수술방안에 퍼졌다. 잠잠이가 나왔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들리던 아기의 울음소리와는 사뭇 달랐다. 높은 고음의 이어진 ‘응애응애’가 아니라, 굵고 낮은 저음의 “응애” 한 박자 쉬고, “응애” 였는데 분명한 ‘응애’는 아니었고 좀 더 정확하게는 떨리는 아래턱으로 울부짖는 ‘으애~~’였다. 적어도 아기가 숨을 쉬고 있음이 분명했다. 안심이 되었다.
내 손을 잡고 있던 남편은 얼어 있었다. 남편을 종용하며,
“얼른 가봐!”
“응!”
갑자기 정신을 차린 남편은 아이가 있는 곳으로 갔다.
“자기야, 동영상 찍어!”
내가 남편의 등에 대고 말했다.
남편은 고개를 숙이고 아이를 살피고 있었다.
“으애~~~! 으~~애~~~~!”
잠잠이의 울음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렸다. 아이를 살피던 간호사가 말했다.
“He’s very tall!”
남편이 유독 키가 크기에 아이가 작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지만, 태어났을 때부터 이미 크다니. 예상은 했다.
의사는 내가 들릴 수 있도록 큰소리로 아기가 태어난 시간을 말해주었다.
“You got a healthy boy at 4:15 am on April 15!”
“Oh, he is a tax baby!”
어느 여자 간호사가 너털웃음을 웃으며 뒤이어 말했다. 미국은 4월 15일이 전년도 세금을 정산하는 마지막 날이다. 그날까지 세금보고를 마쳐야 하기 때문에 미국인들의 4월 15일은 잊을 수 없는 날이다. 그런데 아이가 4월 15일 4시 15분에 태어나다니.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아! 그리고 탯줄!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잠잠이의 탯줄은 이미 수술한 의사가 잘랐기 때문에 태반에서 잘려 길게 나와 있었고, 잘린 탯줄을 아이의 배꼽에 가깝게 남편이 한번 더 잘랐다고 했다. 심심했다. 의미 없는 세리머니 같았다고 했다. 태반과 이어진 탯줄을 남편이 자르는 줄 알았더니 아니었다. 뭐 어쨌든 할 건 했으니 그걸로 만족하고 감사했다.
아기를 보기 위해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십 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간호사가 분주하게 아이를 닦아내고 입히고 씌우고 있었다. 너무 먼 거리였는지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의료진이 내 아랫배를 정리하는 동안 남편이 나에게 왔다 갔다 하며 아이가 어떤지 알려주었다. 마취약과 진통제 때문에 통증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아이가 건강하게 나왔다는 사실에 긴장이 풀리며, 가슴속에서 몽글몽글 설렘이 올라왔다. 아이가 어떻게 생겼을까. 누구를 닮았을까. 다들 태어나자마자 얼굴이 빨갛고 부어있고 못생겼고 심지어 외계인 같아서 어떤 아빠는 다시 뱃속으로 집어넣고 싶었다고 했다는데 우리 잠잠이 도 그렇겠지.
아이를 제대로 보지 못한 채 나는 병실로 옮겨졌다. 내 몸의 삼분의 일 만한 투명한 아기 침대가 병실 침대 옆으로 자리고 하고 있었다. 아기가 누울 자리를 손으로 만져 보았다. 아기 침대 바닥은 두껍지만 너무 푹신하지 않은 매트리스가 깔려 있었다. 담당 간호사가 이리저리 나를 살피고 있는 동안 다른 간호사가 내 아이를 데려왔다. 아이를 안아 보고 싶어 아이를 데려온 간호사에게 팔을 벌리며 말했다.
“Hi! Can I hold him?”
“Of course you can!”
떨렸다. 아홉 달 동안 뱃속에 있었지만, 처음 마주하는 아이.
아~
아이가 팔에 안겼다. 생각보다 매우 가벼웠다. 너무 가벼워 떨어뜨릴 수도 있겠다는 무서운 생각이 들어 가슴팍에 가까이 끌어당겼다.
내 손바닥보다 작은 얼굴에, 술 취한 사람처럼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눈은 양수에 퉁퉁 불어있어 누구를 닮았는지 잘 알 수 없었다. 단지 임신 중 찍었던 4D 초음파와 비슷한지 아닌지 정도만 가늠이 되었다. 동양인 신생아 치고 코가 오똑한 건 초음파에서 봤던 모습과 같았다.
설레는 마음이었지만, 어찌할 바를 모를 정도로 아무 생각이 나질 않았다. 이 꼬물거리는 작은 생명체가 내 배에서 나왔는지 아닌지 인지가 되지도 않았을뿐더러 수술 내내 깨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디서 주워 왔는지 내 뱃속에서 꺼냈는지 실감이 나질 않았다. 아이가 태어남과 동시에 나는 엄마, 남편은 아빠가 되었음에도 둘 다 그저 멍할 뿐이었다. 잠을 못 자서 멍한 것인지 한 생명체의 중압감 때문에 멍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이렇게 정신없는 부모 밑에서 자라야 할 이 작고 소중하고 나약한 아이를 바라보고 있자니 몸서리가 쳐졌다. 나와 남편이 아니면 그 누구도 의지할 데 없는 연약하다는 말로도 더 표현이 안될 만큼 더 연약한 아기일 뿐이었다. 우리에게만 의지해야 하는 이 작은 존재의 무거움이 가슴을 짓눌렀다. 가슴이 찌릿하고 정신이 버쩍 들었다. 제대로 준비도 안된 부모가 자기 부모라는 것도 모르고 세상에 태어난 이 아이를 보고 있자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안쓰러운 감정과 함께 오묘한 감정이 복잡하게 뒤섞여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한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아니 그 이후까지 나는 언제나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아이의 필요에 민감해야 하며, 최선을 다해 그 필요를 충족시켜야 한다. 아이의 곁에서 정신적 지주로, 재정적 지원자로, 또 삶의 안내자가 되어야 한다. 사람으로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중압감. 하지만, 기분 좋은 설렘과 버무려진 책임감. 이런 것이 부모가 되어가는 감정인가 보다. 보잘것없이 이렇게 작은 아이가 다 큰 성인의 마음을 모조리 휘저어 놓았다. 이제 내 삶은 이 아이가 있기 전과 후로 나뉘게 되었다. 그렇게 아이가 태어난 날, 내 품에서 새근새근 조용히 잘 자는 아이를 보며 부모가 되어가는 첫 수업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