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5일, 임신 37주 차가 되던 월요일 새벽 1시였다.
막달의 루틴대로 잠을 뒤척이며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배 속 아기는 더 강렬한 발차기와 함께 잠을 깨웠다. “잠잠아, 엄마 자야 되니까 그만해!”라고 의미 없는 호통을 쳤다. 매일 그랬듯이 그러고 나면 조금 잠잠해지는 배 속 아이가 참 기특했다. 하지만, 그날 밤은 달랐다. 발차기가 더 세졌다는 느낌이 들었고, 금세 고요해 지기를 바랐지만, 나올 때가 다 되어서인지 아이의 움직임은 더 강했다.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또 한 번의 세찬 발차기! 와 함께 다리 사이로 뜨거운 액체가 쏟아졌다.
‘오줌을 쌌나? 화장실 갔다 온 지 5분도 안 됐는데, 오줌이라니!’
잠깐 사이에 많은 생각이 스쳐갔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다시 화장실로 갔다. 변의와 상관없이 다리 사이에서 맑은 물이 쏟아져 내렸다.
‘이게 말로만 듣던 양수라는 거구나! 양수라면 지금 당장 응급실로 가야 해. 아이가 언제 나올지 모르잖아!’
남편을 깨웠다.
“자기야! 나 양수 터진 것 같아!”
어젯밤까지 남편은 옆 방에서 자고 있었다. 남편의 코골이가 점점 심해져 잠이 충분치 않은 임산부와 함께 자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해 각방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 밤은 왠지 함께 있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남편을 옆에 재웠다. 양수가 터져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던 잠깐의 순간에도 남편은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며 잘 자고 있었다. 큰 소리를 내며 남편을 한 번 더 깨웠다.
“자기야! 나 양수 터졌다고!!!”
“뭐?! 잠깐만! 어떻게 해야 되지?”
“병원 짐부터 챙겨야 되지 않을까?”
사실, 병원 짐이 준비가 되지 않았다. 고령의 임신이라 38주 차에 이미 수술을 예약해 놓은 상태였기에 병원을 출발하기 전 날 짐을 싸기로 마음을 먹고 있었다. 37주에 양수가 터지리라고는 상상 밖이었다. 다리 사이로 물이 줄줄 새고 있는 상황에서 짐을 싼다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아니야! 이대로 지갑만 들고 가자!”
“알겠어!”
어차피 집과 병원이 십오 분 거리였기에 무엇이 필요하면 다시 오면 그만이었다. 흘러내리는 양수를 틀어막기라도 하듯 두꺼운 위생 패드를 꺼내 차고 조심조심 차에 올라탔다. 처음 가보는 동네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가는 십오 분이 왜 그리도 길던지. 애써 침착하려 노력했다. 긴장과 초조함 때문이었는지 우리 둘은 말이 없었다. 남편은 침묵을 뚫고 배가 아프지는 않은지 물었다. 희한하게도 배는 아프지 않았다. 진통이 함께 오는 것은 아니었나 보다. 급한 대로 응급실에 전화를 했다. 양수가 터져서 가는 길이라고 했더니, 전화로는 환자 등록이 안 되니 일단 오라는 말뿐이었다.
응급실에 도착하고 등록을 마치자, 건장한 체구의 까만 턱수염 난 아저씨 한 사람이 휠체어에 나를 태우고 분만센터로 향했다. 새벽 졸음이 가득한 응급실 접수원들의 메마른 인사를 뒤로 하고 긴장을 풀어 보려 했다. 휠체어가 가는 길에는 한국의 80년대를 연상시키는 형광등이 켜져 있었다. 하얗고 푸르스름한 빛을 받으며 아무도 없는 기다란 복도를 휠체어를 탄 나와 남편 그리고 병원 직원 한 명이 뚜벅뚜벅 걷고 있었다. 급하지만 조심스럽게 그렇지만 느리지 않게. 1분쯤 긴 복도를 가다 보니 요즘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묵직한 나무로 된 두 개의 문이 닫혀 있었다. 병원 직원이 문 가까이 설치된 손바닥만 한 정사각형 금속 버튼을 눌렀다. 커다란 두 개의 문이 자동으로 천천히 열렸다.
문이 열리고 새로 들어선 복도는 점점 조명 빛이 달라지고 있었다. 벽의 페인트 색은 비슷한 듯했지만, 새로 바른 지 얼마 되지 않은 산뜻함이 묻어났다. 이미 복도는 따뜻한 LED 조명이 가득 차고 있었다. 오른쪽 벽에는 ‘Birth Center’라는 사인이 걸려 있었다. 누가 봐도 새로 단장했음에 분명했다. 경황이 없는 와중에도 입가에는 살짝 미소가 지어졌다. 새 건물에서 첫 아이를 보게 되다니. 이런 작은 횡재가.
또 다른 두 개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오른쪽으로 기다란 접수 데스크에 세네 명의 간호사들이 앉아 있었다. 휠체어가 가까이 다가가자 따뜻한 미소로 나를 맞아 주었다. 그들의 미소와 새로운 냄새와 분위기를 마주하자 긴장이 풀리며 온몸이 나른해졌다. 마음이 안정을 찾았다. 마치 연옥을 지나 천국으로 들어온 듯한 느낌이 이런 것일지도.
응급실에서 이미 연락을 받은 담당 간호사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나에게 인사했다. 50대처럼 보이는 열정이 넘치는 여자 간호사였다. 최대한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 밝고 따뜻한 얼굴을 하고 나를 대기 병실로 옮겼다. 어떻게 된 것인지 이것저것을 물어보며 긴장을 풀어주려 했다. 이야기가 오고 가는 중간중간 진통 센서에 대해 설명하며 잠잠이가 꿈틀대고 있는 배 위에 센서 몇 개를 부착했다. 컴퓨터 화면으로 진통의 정도를 확인하는 것이라고 했다. 양수가 계속 흘러나오는 와중에도 잠잠이의 움직임은 멈추지를 않았다. 한 번 움직일 때마다 국그릇 한 사발 정도의 물이 쏟아졌다. 이러다가 양수가 다 쏟아지는 것은 아닌지, 뱃속 아기가 괜찮은 건지 간호사에게 물었다. 모니터로 확인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2시가 조금 지나고 있었다. 간호사가 나가고 당직 의사가 들어와 나의 상태를 확인했다. 그날 밤, 담당 산부인과 주치의가 당직이었으면 좋았겠지만, 아니었다. 잘 모르는 의사의 손에 아이를 맡기는 것이 약간 긴장이 되었지만, 마음을 내려놓고 분만팀에 아이를 맡기기로 하고 마음을 내려놓았다. 당직 의사는 현재 모니터 상으로는 진통이 빠르지 않으니 아침 8시에 수술을 진행해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와, 양수가 쏟아지는 상태에서 여섯 시간을 더 버틴다고?’
기다리는 시간 동안 잠이 올 것 같지도 않고, 초조함만 더해 갈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의사의 말대로 기다려 보기로 했다. 자궁 수술 경력이 있기 때문에 진통이 갑작스럽게 온다면,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