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입문 후, 3주의 시간
직업병으로 찾아온 디스크 병증 때문에 재활을 하고 있는 동안 생각이 많았다. 이대로 도태되어 쓸모없는 인생이 되어 버리는 건 아닌지, 재생 불가의 몸으로 통증을 평생 달고 살게 되는 것은 아닌지. 아픈 와중에도 내 머리는 생각을 멈추지 않는다.
오랫동안 일기와 메모를 써온 덕분인지, 실력이 한참 미달인데, 어느 날인가 막연히 내 이름이 박힌 책을 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부터 가끔 밑도 끝도 없이 남편에게 책을 출간하고 싶다고 했더니, 요즘에는 아무나 책을 출간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니 시작해 보라는 말을 밥먹듯이 해댔다.
누구나 글을 쓰고 출판이 가능한 세상이 되었다고? 나 같은 평범한 사람도 출간이 가능하다고?
내가 생각했던 글을 쓰고 책을 출간하는 사람들은 일단 ‘작가’라는 멋진 타이틀과 함께 이야기가 될 만한 특별한 인생을 소유하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여 꿈도 못 꾸었다.
그들의 글과 인생은 뇌의 전두엽을 자극시키고,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도 깨닫지 못한 숨겨진 자아를 깨우는 그런 일들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개척자나 선구자의 일을 하는 숭고한 사람들이 작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래야 한다는 생각은 아직도 변함이 없다. 하지만,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작가에 대한 표준이 너무 높아져 버린 내가 무슨 글을 쓸 수 있을지. 삶의 엄청난 깨달음이 있어 누군가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내공도 없을 뿐만 아니라, 내 인생이 그리 드라마틱하지도 않고, 흙수저가 금수저를 뛰어넘는 전대미문의 인생으로 탈바꿈하여,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성공을 이뤄 낸 것도 아닌데, 무엇으로 글을 쓴단 말인가. 그동안 이뤄놓은 내 인생이 보잘것없어 보여 언짢은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 이런 날은 오래가지 않았다. 내 안의 다른 누군가가 축 쳐져 있는 나를 강제로 일으켜 세워 일을 시키기 시작했다. 일단 기대와 표준을 낮추기로 했다.
그게 선인지 악인지 분간하기도 전에, 강하게 밀어붙이는 그 목소리에 즉각 반응하여 타이핑을 해 나갔다. 책을 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이 언젠가는 이루어질지도 모른다는 참깨만 한 믿음이 생기는 걸 어쩌란 말인가. 출간을 하든 안 하든 상관없이 일단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이었다. 혹시 먼 훗날, 앨범을 열어 보듯, 추억을 곱씹으며 따사로운 주말 오후 시간을 보낼 나만의 글이 필요할지도 모르니 사진 앨범처럼, 글 앨범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유학을 준비하고, 미국 땅을 밟고, 정착까지 이어지는 내 과거의 삶을 쭈욱 훑어 내려갔다. 지금과는 상관없이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가시밭길을 지나온 것 같아 또 마음이 울적해지긴 했다.
일단 쓰기 시작했으니 평가가 궁금해졌다. 성격에도 맞지 않는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SNS에 링크를 달았다. 엄청난 관심을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지인들의 ‘좋아요’와 댓글로 격려가 늘어갔다. 내 글의 링크를 타고 들어와 나를 알아챈, 소식이 끊긴 친구들이 하나둘씩 친구 신청을 보내왔고, 모두의 진정성 어린 피드백을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것이 SNS의 힘인지도.
많이 망설였지만, 그들의 응원에 힘입어 내친김에 요즘 핫하다는 작가들의 모임인 ‘브런치’에 지원을 했다. 하도 힘들다는 말을 많이 들어 지레 겁을 먹고 몇 번을 떨어질 각오를 했다. 이미 SNS에 선을 보인 첫 세 개의 글을 포트폴리오처럼 제출했다. 5일을 기다리라는 자동 메시지를 보고 긴 기다림이 될 것이라 여기고 다른 일에 집중했다. 브런치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을 알았기에 일단 마음을 비웠다.
그런데 그다음 날, 브런치에서 연락이 왔다. 내가 ‘작가’가 된 것을 축하한다는 메시지였다. 이렇게도 빨리. 하찮게만 여겨졌던 내 자신이 갑자기 브런치의 연락으로 자신감 급상승! 너무 기쁘고 감사했다. 한참 미달인 나의 글을 좋게 봐주는 브런치가 고마웠다. 평가받는 일은 두려운 일이지만, 까다로운 평가 후, 수용되는 일은 큰 용기가 되는 일이었다. 남편은 17년을 같이 지내면서 내가 그렇게 기뻐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고 한다.
‘브런치’ 작가로 승인을 받고 3주가 갓 지났다. 아직 채 한 달이 넘지 않았다. ‘작가’라는 타이틀을 준 고마운 브런치에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조금 정성을 들이고 싶었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힘 안 들이고 쿨하게 쓴 글을 바로바로 올리기는 쉽지 않다. 내 작업장에는 이미 수많은 글들이 줄을 지어 있지만, 하나하나 다시 꺼내 수많은 퇴고를 거치고 ‘브런치’에 발행하는 일은 많이 망설여졌다. 다른 작가분들의 글을 읽으면 한 자 한 자에 정성스러운 노력이 배어 있음에 마음이 숙연해진다. 정중히 예의 바르게 쓴 글들을 마주하고 나면 함부로 쓴 내 글들은 세상 밖을 구경할 수가 없지 않은가.
브런치에 발행한 내 글들은 아직 몇 개 안 되지만, 나의 글을 구독하는 분들이 꽤 많아졌다. 숫자가 작가의 능력이나 글의 인기를 설명하는 것은 아니지만, 구독자가 한 명씩 늘어 갈수록 내 어깨의 책임감도 함께 늘어감을 느낀다. 독자들은 SNS를 타고 들어온 내 지인들도 있고, 순수하게 ‘브런치’ 내에서 내 글을 읽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름에도 불구하고 내 글을 구독하는 분들이 있다. 이런 모든 분들의 관심은 나에게 적잖은 기쁨과 설렘을 안겨 준다.
얼마 전에는 내 예상과는 다르게, 글들 중 여러 개가 ‘브런치’ 인기글이 되어 몇 주간 날개를 달았었다. 소중한 나의 독자들의 ‘라이킷’을 알리는 알림이 울릴 때마다, 풍선에 바람을 넣듯, 글이 조금씩 제 모양을 갖추어 가는 것 같았다. 시체 같은 내 글에 독자들이 숨을 불어넣으면 내 글은 생명력을 얻는다. 조회수의 숫자가 주는 힘과 관심을 알리는 ‘라이킷’의 힘이 대단하다. 조금이긴 해도 이런 것에 연연하는 나는 어쩔 수 없는 연약한 중생에 지나지 않음을 고백한다.
이제 곧 9번째의 글을 올려야 하는데, 자꾸 제동이 걸린다. 가장 힘들었던 기억이라서인지 글이 잘 써지질 않는다. 소심해서 인지 많은 퇴고를 거치는 일도 순탄치 않다. 지난 글들을 시작으로 나의 과거의 고통과 상처를 연속으로 마주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다 나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하지만, 내 안의 또 다른 자아는 다 괜찮다고 나를 또 밀어붙인다.
꾸준히 글을 쓰려고 노력하니, 글쓰기 이전과 이후의 삶이 조금 달라졌다. 글을 쓰면서 머릿속이 정리가 되고 마음이 조금 더 차분해지기 시작했다. 나도 말이 적은 사람은 아니라 이미 뱉어 버린 정숙하지 못한 말들을 교정하지 못해 후회하는 일이 잦았다. 하지만, 글이라는 것은 연필과 같아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우면 그만이었다. 이제 실수가 많은 말들은 점점 아끼게 된다. 말이 적어지니 후회할 일도 적다.
글을 퇴고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세상의 사물을 더 자세히 관찰하고 삶의 이치를 더 깊이 묵상하며 조금 더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최대한 글 안에 좋은 기운을 불어넣으려고 하는 기특한 마음이 나도 모르게 조금씩 자라난다. 글 쓰는 것 하나로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요즈음이 신기하다. 나는 아직도 많이 부족한 사람이지만, 쓰는 것을 통해 달라지는 나를 체험하며, 글쓰기는 마음을 수양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올바른 수단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마음속의 생각들이 한꺼번에 와락 쏟아질 때가 많다. 백화점 세일에 모여든 쇼핑 군단처럼 내 머릿속으로 우르르 밀고 들어와 이리 밀치고 저리 밀친다. 와글거리며 질서 없이 달려드는 글감들을 잘 달래며, 한 자 두 자 적어나간다. 밀치던 아이들은 마지못해 줄을 서기 시작한다. 거칠게 몰아치던 머릿속의 무질서가 문자가 되고, 글이 되면 어느새 내 정신은 말끔해진다. 이 기분은 청소를 마치고 난 후의 개운함이다.
나는 이제 ‘미운 오리 문과생’의 다음 글을 연재하러 가련다. 두서없이 몰려든 글들을 가지런히 세우고 수정하고, 퇴고를 반복하는 과정을 겪어야 한다. 수십 번의 퇴고를 거치면서 나의 과거의 고통과 치부를 반복해서 보아야 한다. 싫어도 어쩔 수 없다. 과거 내 마음속에 자리 잡았던 쓰레기 더미와 곰팡이 썰은 내 마음을 청소하고 치워야 한다. 케케묵은 과거의 기억들 속에서 피어오르는 역겨운 냄새를 감내해야 한다. 마음속이 개운해지는 그날 까지!
자, 그럼 이제 마음 청소하러 가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