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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애틀 닥터오 Oct 10. 2020

잔소리의 흔적

잔소리는 필요한가?


나는 마흔 넘은 애 없는 아줌마다.
애가 없으니 아직도 애 같아서 애줌마라는 말이 더 맞을까.
아줌마나 애줌마나 늘 그렇듯이, 애나, 강아지나, 고양이나, 물고기나, 집에서 기거하는 생물체들에게 말을 많이 한다. 잔소리라는 이름으로.

나는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라고는 남편 하나뿐인데, 잔소리를 많이 하는지 안 하는지 나 스스로는 판단이 불가능하다. 듣는 사람이 제일 잘 알겠지. 잔소리의 정도와 빈도수를 떠나서 듣는 사람에게는 잔소리는 이미 투머치일 것이다. 사실 생각해 보면, 외부에서 들어오는 잔소리 외에 내부 잔소리도 만만치가 않다. 언제 어디서고 갑자기 뚝튀어 나와 지적질을 퍼붓는다. 왜 이거 밖에 못하느냐고, 더 잘하라고 채근한다. 적어도 외부 잔소리에는 스위치가 있다면 잠시 꺼두고 싶다.

유재석이 하는 예능 프로에서 어린이 시민에게 물었다.

“잔소리와 충고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잔소리는 기분이 나쁘고요. 충고는 더 기분 나빠요.”

뭔가 서로 다른 정반대의 정의가 나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잔소리 위에 충고라니. 결국 둘 다 듣기 싫다는 말이다. 어린이에게 듣는 잔소리와 충고의 의미는 잔소리 꽤나 하고 산 어른들에게까지 심오했다. 어린이도 듣기 싫어하고 나 자신도 듣기 싫어하는 이 잔소리를 왜 우리는 멈추지 못하는 것일까?

마음에 들지 않아서다. 내 잔소리를 들어야 하는 사람이 맞지 않는 길로 가기 때문이다. 고쳐주고 싶어서다. 내 말이 맞을 것이라는 오만에서 오는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아서 한번 내뱉은 첫 말로 그가 바뀌지 않는다면 끊임없이 같은 말을 반복하게 된다. 결국 두 번째 말부터는 잔소리라는 꼬리표를 달게 .

대부분 사람들은 누군가의 잔소리를 듣고 바뀌지 않는다. 자신의 잘못된 습관이라 할지라도 잔소리를 듣고는 더 고치지 않는다. 금연을 돕는 공익광고에서 흡연자들에게 오랜 흡연으로 인해 다 망가진 시커멓게 된 폐 사진을 보여주고 대차게 경고를 하며 금연할 것을 종용하지만, 이런 광고를 보고 금연을 결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오히려 그 광고는 흡연자들에게 담배를 더 부르는 결과를 안겨주었다고 한다. 잔소리는 이런 금연 광고와 같다. 사람을 더 겁주고 몰아세워 진절머리가 나게 하고 격려가 되지 않으며 우울해져 지레 포기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잔소리는 하지 말아야 할까.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잔소리는 듣기는 싫어도 그 의도를 생각해보면 사랑이 아닐까. ‘이렇게 하면 더 좋을 것 같은데’, ‘이렇게 하면 더 행복할 것 같은데’라는 케어의 마음이 깃들어 있기에 잔소리를 멈추라고 말하기엔 이것도 적잖이 잔소리 같다.

구약 성서에서 하나님도 선지자들을 통하여, 타락하고 부패한 선민들을 향하여 무던히도 잔소리를 하셨다. “나에게 돌아오라”라고. 하지만, 그 소리를 듣고 마음을 돌이키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걱정하는 선지자가 자기 말을 듣지 않을 거라고 하나님께 불평한다. 하나님은 그에게 말씀하신다.


“내 말도 안 듣는데, 네 말은 듣겠냐!” 어차피 하나님도 아신 것이다. 인간이라는 피조물이 잔소리라는 것을 듣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끊임없이 잔소리를 하시기 위해 선지자를 보내셨다. 왜 그러셨을까. 마지막으로 하시는 하나님의 말이 그 답을 알려준다.


“네 말을 듣지는 않아도 내가 너를 보냈다는 것은 알겠지.” 그거다. 그거면 된 것이다. 끝까지 성실히 사랑을 표현했다는 것만 알아주면 그걸로 족하다는 말이다.

내 남편은 내가 한국에 잠깐 가 있는 동안에는 나와 같이 지낼 때보다 더 정갈하게 삶을 사는 것 같다. 내가 했던 잔소리 그대로 집 모양새를 잘 가꾼다.  곳곳  잔소리의 흔적이 묻어난다. 잔소리 귀신이 집을 떠나지 못하고 남편을 하루 종일 갈궜나 보다. 여정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면, 내가 있을 때보다 집은  깨끗하다. 냉장고 안까지 빛이 나게 청소가 되어 있는 모습이 생경하지만, 남편이 기특하기도 하다.

그러다가 괜히 내가 쓸데없이 너무 과한 잔소리를 한건 아닌지 반성하기도 한다. 남편은 참말인지 거짓인지 '보고 싶었다'고 강아지마냥 아양을 부린다. 그게 참말이라면, 옆에 있을 때는 그렇게 듣지도 않더니, 떨어져 있으니 보고 싶은 마음에 귀에 쟁쟁거리는 잔소리라도 반가워서 잘 들어 보려고 그랬나 보다. 잔소리가 사랑이라는 숨을 불어넣어 변화를 일으킨 건가.

잔소리는 그저 잔소리로 끝나야 제맛인 것 같다. 잔소리에 무슨 효과를 바라거나, 엄청난 기대를 해서는 안 되겠지. 어차피 듣지도 않고, 바뀌지도 않는 우리에게 잔소리는 그저 사랑의 메아리로 남아 있어야 하는 게다.


오늘도 나에게 잔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짜증을 멈추고,

그 안에 사랑을 읽어보자.

그리고 말해보자.

“알았어. 나도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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