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애틀 닥터오 Nov 05. 2020

너는 왜 사니?

작가 허지웅에게 얻은 삶의 교훈 한 조각


* 서평도 광고성 글도 아닙니다.


작가 허지웅 씨(이하 허지웅)를 처음 미디어에서 접한 건 마녀사냥이었다. 마녀사냥이 처음 나온 것은 2013년이었던 것 같다. 당시 19금 내걸고 남녀 연애 이야기를 터놓고 이야기하는 프로라 상당히 자극적이고 센세이셔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막상 프로그램을 보고 있으면 그렇게 자극적이지도 않았다. 어느 정도 선을 그어놓고 진행하는 것 같아 많이 불편하지는 않았다.

그 프로그램에서 허지웅은 패널로 나왔고, 처음 보는 안면이라 조금 생소했지만, 왠지 슬퍼 보이고 어딘지 모르게 신비한 많은 것들을 감추고 있는 사람 같아 마음이 갔었다. 말하는 것도 정갈하고, 절제가 있어 계속 보게 되었다. 더군다나, 19금 토크쇼에 나온 패널이 자기 입으로 자기는 ‘무성욕’ 자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모습이 너무 재미가 있었다.

처음에는 듣보잡 연예인이 나왔다보다 했는데, 알고 보니 글을 쓰는 작가였다. 어릴 때는 작가라는 직업은 누구나 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졌기에 그가 다시 보였다.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토대로 무언가를 쓰고 사람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는 것이 말없는 조용한 경전 같은 느낌이 들었다. 특히 책을 내는 작가라는 직업은 일반 사람들이 할 수 없는 것 같아 마음으로 깊이 동경했다.

허지웅이 어느 날, 혈액암 투병을 한다는 기사를 접하고, 팬은 아니었지만, 마음이 아팠다. 또 한편으로 ‘이겨낼 수 있을까? 많이 힘들 텐데. 그래도 이겨 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으로 마음속으로 기도하고 응원했다. 조용히. 몇 년 후, 그는 ‘나 혼자 산다’로 소박하게 컴백했다. 반가웠다. 그리고 그의 투병생활 동안 겪었던 일들과 그 이후의 일들을 담담히 써 내려간 에세이 집이 나왔다. 냉큼 사서 읽었다. 그의 영글어진 진주알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 사실 아껴 읽었다.

4년 만에 나온 그의 책, ‘살고 싶다는 농담’. 제목이 내 마음을 먼저 사로잡았다. 어쩐지, 살고 싶지만, 살고 싶지도 않은 것 같은 생각이 뒤섞여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인생의 아이러니를 담고 있는 듯했다. 내 마음도 그러니까.

그는 병에 걸린 자신에게 힘내라는 메시지를 많이 받았다고 했다. 그것도 감사했지만, 완치가 된 후, 자신에게 고민 상담을 하는 팬들이 많아져 하나하나 답장을 써 주다가 이제는 힘에 부쳐 아예 유튜브에 ‘허지웅답기’라는 채널을 개설해 매일 들어오는 음성 사서함의 메시지들을 듣고 그에 대한 자신의 대답과 고민을 해결해 주는 삶을 살고 있었다. 한 고민자는 자신의 어머니가 허지웅과 비슷한 병에 걸려 힘들어하는 것을 알렸고, 그에게 방문을 부탁했다. 힘든 부탁이었을 텐데, 선뜻 그의 어머니를 찾아 주었다. 마음이 따듯해졌다.

그 이외에도 모든 고민들이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갈팡질팡 하는 상황이었다. 나의 고민도 그들의 고민과 다르지 않았다. 내 고민에 대한 대답을 듣듯이 허지웅의 대답을 들었다. 그는 이런 고민들에 하나하나 정성스레 마음을 담아 답해주었다. 그런 그의 태도에 가슴 깊이 감동되었다. 불치병을 겪고 이겨내면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허지웅답기’ 시즌 2가 시작되었다. 음성 사서함의 고민들 중, 죽고 싶다는 고민들이 종종 있었다. 그럴 때마다 지웅 씨는 직접 전화해서 그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죽지 말아야 할 타당한 이유들을 살갑게 이야기해주었다. 고민자들 중, 한 명이 허지웅에게,

지웅 씨는  사세요?”
“... 저는 얼마나  좋은 사람이   있을지 궁금해서 살아요.”

난 한동안 머리가 멍해졌다.

허지웅의 대답을 듣고 나는 살아갈 이유 하나를 더 찾았다. 내가 살아갈 이유는 몇 개 있지만, 그가 살아가는 이유 하나를 나의 살아갈 이유로 영입시켰다. 나도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나에게 그리고 그들에게. 내 삶은 가난하든 풍요롭든 항상 완벽하지 않았고, 실수투성이였고, 온전히 사랑받지 못했고, 20년 이상 만성 통증으로 시달렸다. 지금도... 때로 우울하기도, 공허하기도 하지만, 어느 환경, 어느 상황에서도 내가 좋은 사람으로 바뀐다면, 그걸로 삶이 설렌다.

모두가 사람은 안 바뀐다고 말하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사람이 변하더라. 나를 봐도, 내 남편을 봐도 그렇다. 17년을 함께 하고 우리는 서로에게 조금씩 좋은 사람이 되어 가고 있다. 허지웅의 말처럼 앞으로 얼마나  좋은 사람이 될지 궁금해서  살고 싶어 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음 청소하러 갈까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