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의 추억
나와 남편은 연애 때부터 많이 싸웠다. 지금은 싸움이 잘 되지 않지만, 그 옛날 피가 끓을 때는 불꽃 튀게 잘도 싸웠다.
물어보지 않아서 그의 목적은 모르겠지만, 내 싸움의 목적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그의 사랑을 확인하는 것이고, 둘째는 그의 폭력성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의 사랑을 확인하는 것으로는 격하게 싸우는 중에 내가 집을 나갔다. 연애할 때는 나를 잘도 따라 나와서 멀찌감치서 나를 잘 지켜주더니 결혼하고 나서는 내가 나가거나 말거나 신경도 안 쓴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그 짓을 그만두었다. 사랑 그거 뭐, 싸움하고 가출한 사람 잡으러 오지 않으면 사랑이 없는 건가. 그렇게 정의 내리는 건 너무 주관적이잖아!
두 번째 이유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조금 과격한 행동을 했다. 내가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었다. 폭력성을 확인하기 위해 폭력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좀 아이러니했지만, 그 방법으로 나쁜 남자를 걸러 낼 수 있다고 스스로 믿었으니 실행에 옮길 수밖에.
가슴 아픈 과거지만, 아버지가 폭력적이셨다. 주로 술이 아버지를 괴물로 만들었다. 뉴스에 등장하는 가정 폭력, 데이트 폭력이 내 이야기였다. 주된 피해자는 엄마였지만, 어린 나에게 그 수많은 날밤의 기억이 안전하지 않았다.
이런 어린 시절을 보낸 나는 폭력적인 남자는 절대로 만나지 않기를 기도했다. 남자 친구에 대한 감정이 깊어지면서 그에게 혹시 잠자고 있는 괴물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나는 종종 남자 친구의 비위를 건드렸다. 싸움의 기회가 생길 때마다, 화가 많이 나지 않았지만, 화가 많이 난 것처럼 할리우드 액션을 취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사악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좋은 남자를 선택하기 위해 힘든 투쟁을 하는 중이었고 큰 도전을 하는 중이었다. 폭력성이 있는 남자와 평생을 함께 하느니 혼자 사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를 많이 사랑하고 있었음에도, 그를 잃어버릴 수 있었음에도 나는 그 시험을 강행했다.
그 시험의 일환으로 나는 주로 물건을 던졌다. 망가져도 괜찮을 만만한 것들을 던졌다. 최대한 안전을 고려하여 사람 가까이에는 던지지 않았다. 던지기 전에는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최소한의 피칭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나의 계획은 좀처럼 드라마틱하게 마무리되지 않았다.
처음 내가 던졌던 물건은 안경이었다. 싸움 도중, 감정이 격해져 순간적으로 던질 물건을 스캔했다. 주변에 던질 만한 물건은 마땅히 보이지 않았다. 마침내 던지기로 결정한 물건은 쓰고 있던 안경이었다. 오른손으로 재빨리 안경을 벗어 있는 힘껏 바닥에 내동댕이 쳤다. 시원스럽게 와장창 소리가 나면서 깨졌으면 좋았겠지만 아니었다. 그 당시 내 안경은 그리 비싸지는 않았지만, 세상에서 제일 가볍기로 소문난 안경테였음을 잊고 있었다. 돌바닥에 던져도 잘 깨지지 않았다. 그런 데다가 내가 안경을 던진 바닥은 폭신폭신한 카펫 바닥이었으니 나는 우스운 꼴이 되었다. 남자 친구는 우스워진 나를 그냥 안아주었다.
또 한 번은 내가 저녁식사를 준비할 때였다. 나는 도마 위에 가지런히 놓인 팽이버섯을 썰고 있었다. 말싸움으로 다투다가 비위가 상한 그는 예쁘고 하얗고 야들야들한 팽이버섯을 바닥에 던져 버렸다. 내 최애 베지터블, 팽이버섯을 못쓰게 만들다니! 아, 이제야 숨겨진 짐승이 나오는구나! 그래 오늘은 끝장을 보자! 나는 팽이버섯보다 더한 것을 던져야 했다. 오른손에 서슬 퍼런 날카로운 부엌칼이 들려 있었지만, 티 안 나게 살포시 내려놓았다.
그 빠른 시간에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월마트에서 싼값에 산 머그컵이었다. 볼 때마다 계속 마음에 들지 않았던 컵을 끝낼 참이었다. 오냐! 오늘 나의 희생제물은 너다. 냅다 컵을 낚아채고 아파트 벽에 던져버렸다. ‘와장창 소리를 내며 산산조각이 났다.’라고 쓰고 싶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미국의 캘리포니아의 아파트 벽은 한국과 다르게 콘크리트가 아니라 나무 아니면 알루미늄 벽이었다. 내가 던진 그 못생긴 월마트 머그컵은 알루미늄 벽에 정확히 꽂혔다가 떨어졌다. 죄 없는 벽은 움푹 파였고, 못난이 머그컵은 그 모양 그대로 유지한 채 살포시 카펫 바닥에 떨어졌다. 그날도 나는 그의 숨겨진 괴물을 보기는커녕, 스펀지 같은 그의 가슴팍에 안기고 끝이 났다.
우리의 싸움의 마지막은 거의 항상 개그였다. 던져도 깨지지 않는다거나, 자주 혀가 꼬여 이상한 말을 내뱉었다. 싸움의 정점을 찍을 때, 화가 최대치까지 오르면, 말이 잘도 헛나왔다.
“내가 바야바냐?!” (아메바를 말하고 싶었음; 한밤 중 졸음이 쏟아질 때 싸우게 되면 정신이 혼미해져 아무 말이나 나옴)
“나도 감정 동물이야!”(‘나도 감정이 있는 사람이야’라는 말임)
“컴퓨터가 박테리 걸렸나 부지!”(컴퓨터가 바이러스에 걸리지 박테리에 걸리나? 박테리아면 박테리아지 박테리는 뭐야?)
우리가 싸움을 우아하게 끝내지 못하는 이유 중 또 하나는 허기였다. 싸우다가 끼니때가 되어 배가 고프면 나는 만 국민의 소울푸드 라면을 끓였다. 이것도 일종의 퍼포먼스였다. 나와 남편이 많은 면이 다르지만, 몇 안 되는 공통점 중 하나가 배가 고프면 못 참는다는 것이었다. 보글보글 라면이 조리가 되면, 온 아파트 방 안에 향내가 그득하게 퍼졌다. 배고픈 나와 그는 향긋한 라면 앞에 감정 따위는 포기한지 오래였다
혼자 먹으려다가도 마음이 약해서 혼자 먹지를 못하고, “와서, 쳐 먹어!”라고 조금 과격하게 소리를 친다. 이 말을 다시 해석하면, ‘내가 라면을 먹으라고 해서 내 화가 풀린 건 아니야. 배가 고프니 잠깐 먹기만 하는 거야.’였다. 그도 못 이기는 척 스르르 와서는 허기를 채웠다. 배가 불러진 나와 그는 금세 순둥이가 되어 몇 번 더 투닥거리다 싸움을 종료시켰다.
여러 경우에서 다양한 종류의 싸움을 하며 알았다. 내 남자에게는 숨겨진 괴물이 없다는 것을. 그 사실에 대한 확신이 들자, 내 안에 만들어진 괴물도 조용히 사라져 버렸다. 남자 친구의 폭력 괴물을 확인하기 위해 격하게 싸움을 연출했지만, 그때마다 사악했던 나를 버리지 않고 잘 버텨준 그가 많이 고맙다. 시간이 오래 지났어도 그를 보고 있으면 격렬하게 싸우던 그때가 생각이 나 더 마음이 측은해지고, 그가 더 사랑스럽다. 아무래도 나는 이 남자 아니면, 안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