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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애틀 닥터오 Dec 11. 2020

알몸 슈렉 괴물아, 너는 누구냐!

방독면이 문제냐, 뭐든 해야지!


기다란 직사각형의 나무궤짝이 보였다. 이었다. 뚜껑 열려 었다. 체형이 남자처럼 보이는 몸뚱이가 하얀 붕대를 칭칭 감은채 누워있었고 얼굴이 가려져 있어 누구인지   었다.

 

방 한가운데 관이 놓인 테이블 주변으로 서너 명의 사람들이 나와 함께 얼굴을 마주하고 서 있었다.  간호사가 죽은 자의 몸상태와 얼굴을 살피는 것처럼 방을 왔다 갔다 했다. 나는 그들이 주검의 얼굴 쪽을 확인할 때는 무서운 생각이 들어 일부러 보지 않으려고 얼굴을 돌렸다.


그렇다고 볼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간호사가 얼굴을 덮고 있던 커버를 벗겼다. 얼굴이 드러났다.


그의 얼굴은 밝은 초록색으로 칠을 한 모습이었다. 슈렉 괴물 같았다.


그 간호사는 그의 찌그러진 눈과 코를 만지작 거리며 제대로 모양을 잡고 있었다.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때, 배추벌레 색을 닮은 괴물은 한쪽 눈을 힘겹게 뜨더니,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뒷걸음쳤다. 그는 다른 한쪽 눈을 뜨더니 산 사람처럼 자리에서 서서히 일어났다.  


그의 목적은 나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초록색

으로 뒤집어쓴 알몸 괴물은 붕대가 다 벗겨진 채로 나를 쫓아오기 시작했다.


나는 공포에 떨며 도망을 쳤다. 도망이 성공할 리가 없었다. 초록색 몸뚱이와 나는 관이 놓여 있던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뱅뱅 돌고 있었다. 소리를 질렀다. “아! 악!”


잠에서 깼다. 꿈이었다. 얼른 남편을 확인하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겁을 집어먹고 남편을 찾아 작은 방으로 갔다. 방문이 열려 있었다.


“자기야!”

“응!”


나는 얼른 달려가 남편이 자고 있던 침대 위 옆 자리에 퐁당 누웠다. 남편 가슴팍에 앉기며 말했다.


“자기야, 나 도저히 혼자 못 자겠어.”

“그래, 오늘부터는 같이 자자!”


우리는 며칠 째, 각방을 쓰고 있다. 남편의 심한 코골이 때문에. 13년을 살면서 작정하고 각방을 쓴 적이 없었는데, 요즘 들어 남편의 코골이 때문에 내가 며칠을 잠을 못 자고 몸살이 났다. 결국 남편은 각방을 결정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고 내가 악몽을 꾸자, 각방을 포기했다.


남편의 코골이는 신혼 때부터 시작됐다. 나는 불면증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는 늦게 잠이 든다. 남편은 머리만 대면 30초 안에 바로 잠이 드는 기질이 있고, 나는 5분에서 10분은 기다려야 잠이 든다. 내가 잠을 기다리는 동안 그가 코를 골기 시작하면 나는 10분이 아니라 30분, 아니 한 시간이 지나도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코골이를 멈출 수 있는 치과 장비나 양압기를 써보자고 제안했지만, 몸에 밴드 하나만 붙어 있어도 잠을 못 잔다는 남편은 내 수면의 질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귓구멍 속에 들어가는 새끼손가락 한마디 만한 귀마개를 쓰는 것으로 일단락하고 이제껏 살아왔다.


그 덕에 내 귓구멍은 많이 커졌다. 하지만, 남편의 코골이는 더 나빠졌으면 나빠졌지, 좋아지지 않았다. 요즘에는 귀마개를 쓰고도 남편의 코 고는 소리가 내 두개골을 뚫고 들려온다. 처음으로 잠을 못 자고 몸살이 나니 이제야 남편이 각성을 하고 뭐든 하겠다고 먼저 나선다. 가장 쉬운 방법이 각방을 쓰는 것이었지만, 나의 악몽 때문에 포기했다.


나는 악몽뿐, 아니라 자다가 중간에 깨서 남편이 옆에 없으면 순간 공포가 몰려온다. 평소에는 남편보다 내가 더 대범하지만, 자다가 깬 나의 무의식은 공포로 가득하다. 신혼 초에는 한밤 중 자다 깨서 남편이 자고 있으면, 누군가 하고 깜짝 놀라곤 했는데 이제는 반대로 그가 없으면 더 깜짝 놀란다. 사람의 습관이란.  


남편은, 

“내가 방독면이라도 쓰고 잘게!”

“방독면? 웬 방독면?”

“군대에서도 코 골아서 선임들이 잘 때 방독면 씌웠어.”


그의 코 고는 습관은 군대 때부터라고 하니, 아무래도 과체중이나 과로 때문에 생기는 것은 아닌가 보다. 구조적인 문제일 수도.


남편이 방독면이라도 쓸 정신이라면, 이제는 치아에 쓰는 치과 장비라도 충분히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싸! 내일은 남편의 코골이 스플린트를 위해 몰드를 떠야지!)


아무래도 악몽 속, 누드 괴물은 남편이었던 것 같다. 어젯밤, 운동을 마친 그가 덥다며 샤워를 하겠다고 알몸으로 안방과 화장실을 오락가락한 기억이 스친다.


알몸 슈렉 괴물이라도 좋으니 제발 코만 골지 말자, 자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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