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애틀 닥터오 Dec 17. 2020

달리기 잘하세요?

1등보다는 끝장보기!


요즘 ‘달리기’에 관한 책을 읽는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열정적으로 달리는 하루키 작가의 삶이 어쩐지 부러웠다. 요즘은 조금이라도 달리게 되면, 나는 하루 종일 발열과 목과 등 통증으로 하루를 다 날리기 때문이다.   


 인생에 달리기에 대한 기억은 대체로 그리 좋지 않다. 초등학교 때는 계주 선수를 도맡아 했고, 특활부는 육상부를 했다. 자발적으로  것이 아니라, 선생님의 강요 때문에 어쩔  없이 해야 했다. ‘착한 아이 신드롬 있었던 나는 거절을 못하고 시키면 다했다. 가장 친한 단짝 여자 친구도 선생님에게  떠밀려 나와 함께 육상부였다. 우리는 서로 다른 팀이 되어 달리기를 해야 했다.  친구는 나보다  빨랐다. 나는 그녀를 이길  없었다.   번도! 나는 항상 2등이었다. 베스트 프렌드와 상대팀이 되어 경쟁을 해야 하는 것도 싫었지만, 내가   번도  친구를 이길  없었던 것도 그리 재밌는 기억은 니었다.


행인지 불행인지, 2등을 해도 감정적으로 매우 힘겹지는 않았다. 살짝 아쉬울 뿐이었지,  친구가 싫어졌다거나, 1등을 못했다고 떼를 쓰지는 않았다.  번도 1등을 못했으면  번쯤은 대성통곡을 하며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드라마  편쯤 쓸만했는데, 그러지 않은  아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기특하다. 1등이  대수라고.


나는 주로 단거리를 뛰었다. 아무래도 장거리는 무섭다. 중학교 때 처음으로 체력장에서 장거리를 뛰었는데, 단거리는 2등 역사가 있긴 했지만, 장거리 달리기에서는 낙오 바로 직전까지 가는 상황이 민망했다. 그 이후로 단거리든 장거리든 달리기에는 소질이 없는 듯하여 스스로 나대지 않았다. 중학교 때부터 대학 때까지 이렇다 할 만한 달리기 이야기는 전무하다. 어른이 되고 달릴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았지만, 한 가지 기억이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2년쯤 지났을 때, 잠깐 일했던 회사에서 전국 회사 체육대회가 있었다. 계주 선수가 필요하다는데 다들 못한다고 발뺌을 했다. 별 수없이, 내가 나가겠다고 했다. 어차피 머릿수만 채우는 것이고, 성인이 되어서 등수가 뭐 그리 대단할까 싶기도 했기에.


하지만, 덜컥 계주를 뛴다고 해놓고 내심 걱정이 되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번도 단거리든 장거리든 제대로 달려  적이 없으니 보나마다 완전히 낭패를 당할 것이 뻔했다. 넘어지지만 않으면 그걸로 본전을 찾을  있을  같았다.


체육대회가 다가오자, 회사 일보다는 체육대회가 더 걱정되어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안 되겠다! 연습이라도 하자! 마땅히 동네에 연습할 데도 없고 해서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 인적이 뜸한 틈을 타, 우습지만 집 앞 기다란 동네 골목을 운동장 삼아 뛰어 볼 참이었다.     


검색 창에 ‘잘 뛰는 법’으로 이것저것 검색해 보니 단거리는 숨을 참는 게 관건이란다. 나는 골목 이끝에서 저 끝까지 숨을 참아가며 달리기 연습을 했다. 초시계로 시간도 재며, 기록을 조금씩 올려봤다. 숨을 참는 게 조금 효과가 있었는지 학교 다닐 때보다는 기록이 잘 나왔다. 왜 진작 몰랐는지.


일주일을 꼬박 연습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체육대회에 참가했다. 체육대회의 꽃, 계주가 맨 마지막으로 잡혀 있었다. 나는 다른 참가자들에 비해 조금 나이가 젊다는 이유로 마지막 주자가 되었다. 아! 이를 어쩐다! 학창 시절에는 제일 못 뛰는 축에 속해서 단 한 번도 마지막 주자는 해보지 않았다. 그런데 직장인이 되어 마지막 주자가 되다니! 별수 없었다. 꼴찌만 면하든지, 아니 그것도 안 되면 넘어지지만 않는 것으로 목표를 정했다. 계주에서 꼴찌 한다고 해고는 안 하겠지.


탕!

화약총의 시작으로 경기가 시작됐다. 내 앞의 주자들이 열심히 달려 주었다. 첫 스타트는 2등으로 끊었고, 두 번째 주자까지도 무리 없었다. 그런데 세 번째 주자가 선수들 사이에서 자리를 못 잡고 다리가 걸려 비틀거리다 넘어졌다. 왜 하필 우리 팀이! 넘어진 선수를 건너뛰며 다른 팀들이 더 빠르게 치고 나아갔다.


우리 팀의  번째 주자도 맥을  추고  바퀴 이상이 뒤져있었다. 머리가 하얘졌다. 포기의 압박감이 몰려왔다. 마지막 주자가 당해야  수치는 이미 예약해 놓은 꼴이었다. 나에게 바통이 왔을 때는, 이미 다른 선수들과  바퀴 반이  뒤져 있었다. 마지막 주자는 운동장 트랙을  바퀴도 아니고  바퀴를 뛰어야 했다.  속에서는 수많은 말들이 들려왔다.


‘이건 말이 안 돼!.’, ‘그냥 포기하는 게 나아!’, ‘별 수 없어!’ ‘그냥 걸어가!’

하지만, 바통은 받았으니, 뛰기는 뛰어야 했다.


연습한 것이 아까워서라도 나는 뛰어야 했다. 나와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나를 응원하기 위해 잽싸게 트랙 안쪽에 앉아서 나를 응원했다. 승리를 위한 응원이 아니라 그저 응원을 위한 응원이었다. 이건 이미 경기가 아니었다. 그냥 코미디였다. 어차피 코미디가 된 거 그냥 코미디로 응수했다. 나는 별 기대감 없던 응원팀에게 윙크를 렸다. 그리고 뛰기 시작했다. 다른 선수들은 어디에 있는지도 보이지 않았다. 최대한 숨을 참으며 무조건 달렸다.


두 바퀴를 거의 다 달렸다고 생각되었을 때쯤, 내 앞에 선수들이 보였다. 지친 그들의 다리는 확연히 느렸다. 숨을 참아서였을까? 반대로 내 다리는 더 빨라졌다. 그들을 마지막에서부터 하나둘씩 제치기 시작했다.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한 바퀴 반이 뒤지고 있었는데, 이들을 따라잡고 꼴찌를 면하고 있다니! 마지막 피니쉬 라인을 통과했을 때는 내 눈을 의심했다.


1등!!!
은 아니고, 2등이었다.


내 회사 동료들이 다 같이 뛰어나와 소리를 지르며 기뻐해 주었다. 기막힌 역전승이었다. 물론 2등이었지만!


어릴 때는 참 언짢은 2등이었는데, 이렇게 값진 2등을 이뤄내다니! 상품으로 2단 자동우산을 받았다. 우산도 2단이네! 왠지 숫자 2가 좋아지려 한다.


회사 체육대회가 끝나고 직원들 사이에서 나의 계주 역전승 이야기가 몇 달을 갔다. 드라마틱했던 그 흐뭇한 이야기가... 며칠 동안의 짧은 연습을 제대로 써먹은 듯하여 기분 좋았다.


달리기를 추억할 때면 그때 그 기억이 떠오른다. 1등은 아니라도, 한 바퀴 반이 뒤진 상황에서 꾸준히 달려 2등을 이뤄낸 쾌거! 결국 모든 일에는 꾸준함이 답이었음을 알려주었던 좋은 인생 교훈이었다.


2020년이 지려한다. 코로나 덕에 수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나는 아직도 꾸준히 달리고 있는지 생각해본다. 1등이 아니어도 좋다. 계속해서 꾸준히 달려보자! 이번에도 또 기분 좋은 2등을 이뤄낼지 누가 알겠는가!






















매거진의 이전글 통증, 이제 너를 그만 떠나보내려 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