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반찬은 어디로 갔을까?
하루 종일 추적추적 비가 왔다.
한국은 눈이 왔다는데...
오늘은 달마다 찾아오는 지랄병이 도져 진통제와 더불어 간단한 아침 식사를 하고 오전부터 졸고 있었다. 다행히 일을 가지 않는 날이어서 하루 종일 책이라도 읽을까 했지만, 책도 안 읽힌다. 이런 날에는 말이 많은 유튜브를 보다 잠드는 게 꿀이다.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뜬 다큐멘터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3일 전에 올라온 걸 보니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다큐다. “The Fight for the Soul of Seattle.” (직역하면, 시애틀 사람들을 위한 투쟁, 이 정도가 좋겠다.) 한 시간 반 가량에 해당하는 다큐멘터리는 시애틀의 민낯을 다 보여주고 있었다. 시애틀 다운타운에는 집 없이 떠도는 노숙자들, 정신이 온전치 못한 사람들, 마약을 투여하고 거래하며 영육이 병들어가는 사람들이 지천이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아무 상점에나 들어가 도둑질을 일 삼고, 밤에는 상점 유리를 부수고 들어가 닥치는 대로 물건을 들고 나왔다. 날이 더해 갈수록 그들의 삶은 더 피폐해졌고, 더 폭력적이 되었고, 경찰들도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부랑자들은 길거리에 다니는 사람들을 이유 없이 때리고 지나가는 일이 일상 다반사가 되었다. 작은 상점은 말할 것도 없고, 다운타운의 반짝이던 모든 대형 상점들마저 우후죽순으로 문을 닫고 있었다.
3rd Ave(3번가)와 Downtown Emergency Services Center (or DESC; 다운타운 응급 서비스 센터) 주변은 시애틀의 수뇌부라고 할 수 있는 지역이다. 지금 특히 이곳에는 길거리 부랑자들의 천국이 되었다. DESC에서 도움을 주러 나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곳저곳에서 마약거래가 이루어지고 폭행이 자행되고 있었지만, 그 어디에도 경찰의 모습은 볼 수가 없었다.
문제는 시의회의 솜방망이 처벌과 그들에게 적절한 도움이 제공되지 않는 것이었다. 마약 중독으로 거리를 헤매다 회생한 사람의 증언은, 거리의 부랑자들이 단지 집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들이 집이 있다 해도 집 안에서 불법을 자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진정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적절한 의학적인, 정신적인 도움과 잘못된 행동에 대한 법적인 처벌이었다.
시애틀의 뒤를 이어 샌프란시스코도 부랑자들의 아지트가 되고 있었다. 이 비슷한 사태를 손놓고 지켜보기만 한다면, 샌프란시스코마저도 불명예를 안게될 것이다. 왜 아름다운 도시들이 무법자들의 천지가 되고 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마음이 아팠다. 그들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 자신과 시의회의 무능한 대처에 화가 났다. 2017년에 신나게 이사를 오고, 이제 와서 시애틀의 가슴 아픈 모습을 보니, 나라도 이 시국에 정치를 해야 하나, 생각이 들다가 졸음에 빠져들었다.
한참 졸고 있는 와중에, 초인종이 울렸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어제 주문해 놓은 반찬이 배달 온 것이었다. 현관 보안 카메라를 확인하니 반찬 배달이 확실했다. 낮잠을 좀 자고 들여놔야겠다, 생각하고 잠이 들었다.
몇 시쯤 되었을까? 머리가 깨질 듯 아파 잠에서 깼다. 배가 고파 당이 떨어졌는지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두통이 왔다. 시간을 보니 1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부랴부랴 귀찮은 날의 단골 메뉴 밥, 김치, 김을 꺼내어 입에 욱여넣었다. 먹을 반찬이 없네, 하고 생각해 보니 오전에 초인종만 누르고 가버린 반찬 배달이 생각났다. 들뜬 마음으로 현관문을 열었다.
어라?
반찬이 없다.
뭐지?
등골이 싸해진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