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부모라면...
인생을 잘 살아낼 수 있도록 해주는 무기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간단히 동네 마트에서 살 수 있다면 또 얼마나 좋을까?
어느 때 인가부터 나는 마음이 괴로워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한 마음으로, 흔들리지 않는 견고하고 꽉 찬 마음으로 살아낼 수 있는 무기를 찾기 시작했다. 돈과 성공이 아니었다. 바닷가에 흩어진 반짝이는 조약돌을 줍 듯, 내 마음속, 내 기억 속에서 흩어진 인생의 무기들을 하나둘씩 모아 보았다.
어느덧, 이런 것들이 갖추어지니 인생을 감당하기 조금 더 수월해졌다. 조금 더 행복하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부모가 된다면, 내 아이에게 나쁜 흔적이나 습관들을 물려주는 대신 내 마음의 조약돌을 건네주고 싶어 졌다.
긍정적인 마음
나는 주로 긍정적이지만, 그간 많은 연습이 필요했다. 그리고 금을 캐내듯 매일 긍정을 캐내고 있는 중이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의 긍정적인 마음을 더 많이 느꼈다면, 긍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연습이 필요할 만큼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다. 걱정을 끌어안고 살아도 잘 되지 않는 현실에서 잘 될 것이라는 밝은 긍정적인 마음이 오히려 힘든 세상에 절실히 필요하다.
이런 긍정적인 마음은 부모가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는 것으로 만들어진다.
“아무리 해도 안 돼!”
“너 같은 게 뭘 할 수 있겠어!”
“너는 안 돼.”
“돈이 없어서 우리는 못해!”
“포기해!”
아이들은 유전적으로 모습만 닮는 것이 아니라 양육 시절 부모의 말과 생각을 똑같이 닮는다. 어떻게 말하고 키우느냐에 따라 아이의 말 그릇, 생각 그릇이 달라진다.
“다시 해 보자.”
“너도 할 수 있어.”
“돈이 다 가 아니야.”
“저 사람, 열심히 했나 봐.”
“다 잘 될 거야!”
부모를 포함해서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면, 아이는 자라면서 뇌에는 향기를 내뿜는 말들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인생이라는 밭에 좋은 말 씨앗들이 그득히 심겨, 생존에 필요한 풍성한 열매들을 수확하게 되는 것이다.
감사하는 마음
감사하는 마음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작은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야 더 큰 것에도 크게 기뻐할 수 있다. 소확행이 유행이 되는 이유는 우리 사회가 작은 것에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확행이 우리 삶에 가득했다면, 힘들게 소확행을 외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새마을 운동을 외치며 큰 것을 좇아갔던 우리 부모들의 인생 방식이 우리에게 전수된 것이다. 큰 것을 따라갔더라도, 작은 것에 함께 자주 웃을 수 있고 감사했더라면, 평범한 인생들이 더 감사했을 것이다. 더 행복했을 것이다.
부모가 감사하다는 말을 내뱉는 것이 자연스럽다면, 말을 배우는 아이에게 따로 가르치지 않아도 절로 나올 것이다. 아이들은 부모들의 복사기이니까.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줄 아는 마음에 감사 한 스푼을 첨 한다면, 삐그덕거리고 흔들리는 인생들에 불안한 마음 대신 행복감으로 채워지지 않을까.
가족끼리 눈을 보고 편안하게 대화하기
가족끼리 편안하게 눈을 마주하며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사람들이 소중하다. 부모에게, 동생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칭찬 한마디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 일이 다반사다. 가족들끼리는 말 안 해도 다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큰 오류다.
어릴 때부터 TV를 멀리하고 부모와 깊은 대화를 하고 생각을 나누는 일이 하루의 일과였다면, 어땠을까? 유대인들은 열두 살이 되면 아버지와 매일 밤 ‘하브루타‘라는 전통 수업을 한다. 서로 질문하고 토론하며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것이다. 사람들은 ‘하브루타’를 보며 교육에 초점을 두지만 나는 대화에 더 무게를 싣고 싶다. 가족과의 대화, 타인과의 대화를 스스럼없이 자주 하게 되면 눈을 보고 하는 대화는 금세 쉬운 일이 된다.
나와 부모님도 주로 언성을 높이지 않으면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감정을 싣지 않고 평이하고 무난하게 안정적인 대화는 쉽지 않다. 자라면서 제대로 된 편안한 대화를 해보지 못했기에.
대체로 부부들 간에 질 좋은 대화가 없고, 자식들과의 대화도 자연스럽지 못하다. 대화할 줄을 모르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한 번도 대화의 기술을 배워보지 못했기에. 가정은 고사하고, 학교에 이런 수업이 있었다면 좀 달라졌을까.
남과 나누는 마음
내 부모님은 좋은 일이 있든 없든, 맛있는 것을 하면 항상 이웃과 나눔을 하셨다. 나는 떡, 호빵, 도넛, 부침개, 등등이 담긴 접시를 들고 옆집, 앞집, 뒷집에 심부름을 다녔다. 그때 그 기억이 소중하다. 나눔을 실천했던 엄마의 표정에서 나는 행복을 읽었다. 엄마가 행복하니 나도 행복했다. 지금도 나눔을 하면 엄마의 행복이 내 안에 살아 있음을 느낀다.
남을 생각하고 보듬는 행위는 천국을 이 땅에서 이루는 것과 같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행복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야 말로 세상을 더 행복하게 하지 않는가.
중학교 1학년 때, 물리선생님은 말씀하셨다.
“너희들, 배워서 남 줘라!”
남을 위해 공부를 하고 남을 위해 시간을 내어주고 노력을 나누는 목표가 있다면, 자기의 이득만을 챙기려는 사람보다 더 큰 성과가 있음은 성공한 사람들의 삶을 살펴보더라도 답은 분명하다.
부모도 연약한 사람이라는 것
부모는 자식들에게 당신의 약점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자녀들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금기라도 되는 것일까? 부모란 재력, 체력, 능력이 많아야 한다고 누가 그랬는가? 돈 많고, 강하고, 능력이 좋으면 누구에게 좋은 걸까? 자식 아니면 부모?
실제로 재정이 넉넉하고, 능력이 많은 부모를 둔 자식들은 주로 부모를 따라잡지를 못한다. 의사, 교수 부모를 둔 자식들은 부모의 발끝도 못 따라가는 사례를 주변에서도 많이 보았고, 부족한 것 없이 자란 자식들이 삶을 대하는 자세는 무기력하기까지 하다.
열심히 일하는 것을 좋지 않게 여기는 능력 많은 부모들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식을 과잉보호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자녀들이 힘겹게 일하는 것을 매우 불편해하여 자식에게 필요한 것 그 이상으로 입히고, 먹이고, 낭비한다. 이런 부모들에게 과연 그것이 아이를 위한 것인지, 자기 자신의 불편한 감정을 감당하지 못해 발생된 고의였는지 묻고 싶다. 이런 과잉보호로 생긴 유리 멘털의 자식들은 부모를 하찮게 여기거나,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 어차피 부모에게 받으면 그만이니.
반대로 부모가 재력, 능력, 체력이 달린다 해도 최선을 다해 부모의 역할에 충실했다면, 어딘지 살짝 부족해 보이는 부모의 모습을 보며 자식은 힘이 더 키우게 된다. 자식은 부모보다 더 큰 재력과 체력과 능력을 가지고 부모를 보호하려는 힘을 장착한다.
아이에게 부모도 실수를 하고, 때로는 방법을 몰라 답을 찾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설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일까? 잘못했을 때,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면 용서하지 못할 아이들이 없다. 아이가 자랄 때, 부모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진심으로 아이의 이해와 용서를 구한다면, 근본 없는 철부지는 되지 않을 것이다. 아이보다 더 낮은 자세로 몸을 낮추는 부모를 자녀가 더 높이 끌어올려 줄 것이다.
절대자에 대한 믿음
내 부모에게서 많은 좋은 것들을 물려받았지만, 그중에서 제일 감사하는 것이 신앙이다. 부모가 나에게 집착을 했든, 실수를 했든 상관없이 절대자의 존재를 알려준 것으로 인해 그 모든 것이 무마되었다. 내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부모의 실수를 0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가장 쉽고 탁월한 방법이다.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고, 함께 도우며 살아가는 것이 삶이다. 하지만, 인생의 모든 상황에서 내 부모가, 내 친구들이, 내 배우자가, 내 자녀들이 함께 할 수 없을 때가 있다.
부모가 완벽하지 않으니 부모보다 더 부모인 하나님을 소개하고 믿음을 전수하는 것이야 말로 자녀에게 인생의 큰 재산이 될 수 있다.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스스로 개척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이다. 자신의 한계에 부딪혔을 때, 부모 대신 도움이 되어 줄 수 있는 절대적인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은 긴급할 때뿐 아니라 매일의 평범한 삶에도 큰 도움이 된다.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밑바닥의 자리에서도, 모든 노력의 한계점에 도달했을 때에라도 절대자의 계획 아래 있음을 믿는다면,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힘겨운 자리에서, 아이는 헤쳐 나올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 그 믿음이 클 필요도 없다. 겨자씨만 한 작은 믿음이면 충분하다.
나에게는 아이가 없어 써먹을 데가 없지만, 아쉬운 대로 큰 아들이라 생각되는 남편에게 이 방법들을 실천한다. 긍정, 감사, 대화, 이타심, 인간적인 모습, 그리고 믿음을 전수 중이다. 나름 함께 행복하다.
나에게는 별 희망이 없어 보이지만, 절대자에게 믿음을 싣고, 아직 오지 않은 내 아이에게 이 무기들을 물려줄 기회가 오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