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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애틀 닥터오 Feb 10. 2021

포기를 내일로 미루기

새벽 기상의 좋은 점

바닥까지 내려가기

40년 넘게 올빼미형 인간이었지만, 2021년은 조금 다른 나로 살아가고 싶었다. 새벽 기상이라는 미션으로 가장 쉽지만, 또 가장 어려운 일을 시작했다.

사실 작년 여름부터 시작은 했으나, 며칠을 하고 포기해 버렸다. 딱히 크나큰 목표도 없었고 아직 내 게으름이 바닥을 덜 쳤는지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나 자신을 나는 아직도 수용하고 있었다. 목표가 더 뚜렷해지고, 게으름이 더 이상 내려갈 바닥이 없다고 생각할 때까지 늦잠을 잤다. 밤에 잠이 오지 않으면 밤을 새우고, 낮에는 좀비처럼 졸며 하루를 보냈다. 죄책감과 우울감이 하루 종일 나를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네 인생은 실패의 연속이야!”
“아침에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하면서 무슨 일을 제대로나 할 수 있겠어!”

올빼미형 인간은 유전적으로 밤늦게 자고 아침 늦게 일어나야 한다라든가, 저혈압이면 아침에 잘 못 일어난다는 이런 말들은 더 이상 나를 위로하거나 합리화시키지 못했다. 이런 말들은 마치 ‘너의 운명은 바꿀 수 없어. 생긴 대로 살아.’라고 나를 틀 안에 가두고 몸과 정신을 옴짝달싹 못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유전적 후성학에서도 말했듯이, 선천적으로 받은 유전자는 환경과 습관에 따라 DNA의 메틸기가 풀어지고 하고 닫히기도 한다. 내가 원하는 유전자의 스위치는 끌 수도 있고, 켤 수도 있다는 말이다. 나는 이 과학적 사실이 매우 좋다. 희망적이다. 그래서 나는 올해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내 선천적 유전자를 메틸기로 꺼버리고, 숨어 있는 새벽 기상 유전자를 찾아 켜보려고 한 것이었다.




새벽 기상 일지

새해에는 달라지고 싶었다. 그동안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새벽 공기를 마시며 나 자신이 어떻게 변하게 될지 그저 구경하고 싶었다. 그래서 한 달 동안 나를 시험대 위에 올렸다.

30일간, 첫 10일, 두 번째 10일, 세 번째 10일간의 새벽 기상 일지를 쓰며, 내 몸의 변화들을 기록했다. 도중 3일간 몸의 컨디션으로 인해 한 시간을 더 잔 날을 빼놓고는 5:30 기상을 잘 이루어 냈다.


랜덤 스크린 샷 모음 ^^v 시작은 조금 과격하게 5시 기상으로...


첫 10일은 정말로 할 엘로드의 ‘미라클 모닝’에서 말했던 것처럼 아주 힘겨웠다. 매일 아침 죄 없는 알람에 대고 씩씩거리며 욕을 해댔다. 출근 시간이 늦은 나는 평소 8시가 되어 일어났기에 새벽 5시 반 기상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모두가 자고 있는 깜깜한 겨울의 새벽, 홀로 억지를 부리며 일어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매일 아침 일어나며 다짐했다. 한 달만 하는 거야. 그러고 나서도 싫으면 포기하면 되지. 알람을 여러 개 맞춰 놓고 일부러 몸을 일으키기 위해 알람을 저 멀리 두고 몸을 억지로 깨웠다. 그리고 잠을 달래기 위해 작은 의자에 몸을 엎드린 상태로 가까운 친구들에게 새벽 기상 인증샷을 날렸다. 친구들은 새로운 도전을 한 나를 흥미로워하며 잘 받아주었다. 나는 친구들에게 잘도 치댔다. 이 자리를 빌려 친구들에게 감사!!!

두 번째 10일은 아주 조금 나아졌지만, 여전히 힘겨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억지로 몸을 일으키고 좀비처럼 바닥을 기어 다니며 잠을 깨웠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어차피 한 달만 하는 거야. 조금만 더 버텨! 그리고 그 두 번째 10일을 버텼다.

세 번째 10일이 왔다. 오지 않을 것 같았지만, 20일의 시간이 지나갔다. 마지막 10일은 천국까지는 아니었지만, 꽤 괜찮았다. 알람이 울릴 때쯤, 정신도 곧 잘 깨고 나름 새벽을 즐기고 있었다. 여전히 졸리긴 했지만, 일부러 정신을 집중하려 하지 않아도 책도 술술 잘 읽히고 정신이 맑았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안 될 줄 알았는데, 되네...

새벽에 일어나는 사람들은 누가 봐도 입이 떡 벌어지는 일들을 했다. 전 세계 조간신문을 다 훑어본다든가, 전 세계 TV 뉴스를 섭렵한다든가, 새벽기도나 명상 등등을 한다든가, 글을 쓴다든가... 하지만, 이제 시작인 나는 조금 여유를 주면서 차근차근하는 중이다. 일단 시도했다는 것에 큰 상이라도 주고 싶은 마음이다. 어느 인플루언서처럼 4시 반은 아니더라도 5시 반에 일어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조금씩 찾아나가는 중이다.




새벽 기상의 좋은 점

나의 새벽 기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정말 좋은 게 있나 싶어 30일 도전을 해봤는데, 꽤나 괜찮은 것들을 얻었다.

첫 번째는 내가 그토록 원했던 우울감이 현저히 떨어졌다. 우울할 틈이 없었다. 상당히 졸린 날들이 많아 우울감에 빠질 일이 없었다. 그냥 정신이 없었다. 새벽에 일어났을 때의 이성적이고 또렷한 정신이 오래도록 지속되어 나의 하루를 잘 지탱해주었다. 아니 일부러 애쓰지 않아도 하루하루를 잘 지내고 있었다. 쓸데없는 감정 소비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두 번째는 일찍 일어난 덕에 해야 할 일과 들을 미리 해놓고 하루 종일 과제에서 벗어난 듯 마음이 홀가분했다. 숙제를 끝내고 난 자유로움은 학생 때나 지금이나 같은 느낌이었다. 새벽이 가져다준 여유로운 시간은 하루를 더 행복한 기분으로 살아가게 했다. 규칙적인 새벽 기상으로 멜라토닌과 세로토닌의 균형진 상태로 인해 세로토닌이 일을 잘해 내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렇지 않으면 이 기분은 무엇으로 설명하랴.

세 번째는 밤에 야식을 하고 싶은 마음이 저 멀리 사라져 버렸다. 하루의 끝자락까지 오늘도 잘 버텨냈다는 생각으로 저녁을 거하게, 푸짐하게 차려 먹고 싶다는 보상 심리가 줄은 것이다. 저녁을 적게 먹고도 배가 고픈 느낌이 없어졌다. 정말 말도 안 된다. 밥을 먹는 일은 나에게 하루 중 가장 큰 보상이기에 없어서는 안 될 큰 기쁨이었는데, 이제는 그 기쁨이 없어도 언제 그랬냐는 듯 잘 지낸다. 오히려 잠자리에서 배부른 느낌이 없어서 좋다.

네 번째는 새벽 기상의 목표가 있기에 저녁 9시 반에는 무조건 잠자리에 들기 위해 필사적으로 잠을 위해 준비했다. 잠을 안 자겠다고 보채는 아이를 겨우 재우는 일과 같았지만, 30일이 지나고 보니 내 안에 잠투정을 하던 아이는 점점 사라져 버렸다. 후성학이 맞다고 내 몸이 증명이라도 하는 것 같다.

이렇게 새벽 기상을 한지 한 달이 지났고, 힘에 부칠 때마다 한 달만 하겠다고 다짐에 다짐을 했지만, 이제는 중단 없이 계속하고 싶어 졌다. 새벽 시간이 덤으로 주어진 것도 좋지만, 그 시간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더 빠르고 유익하게 할 수 있는 이득을 버릴 수 없어졌다. 감정에 빠지지 않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좋아졌다. 하루 종일 편안한 기분이 좋다.




포기를 내일로 미루기

아침 일찍 일어나는 일을 한 달을 하고 나니 사람에게 좋은 것은 하루, 이틀 한다고 해서 인이 박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몸소 체험 중이다. 확실히 새벽 기상이 처음보다 쉬워진 것은 사실이지만, 한 달이 지났어도, 매일 아침 조금이라도 더 자고 싶은 마음은 금세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몸에 나쁜 것들은 누가 억지로 시키지 않아도 한번 빠져들면, 힘든 노력 없이도 중독이 되어 버린다. 자석이라도 붙여 놓은 것처럼 나를 세게 끌어당긴다.  새벽 기상을 실천하기 전, 나는 매일 밤, 아니 하루 종일, 자꾸자꾸 짜고 단 것이 먹고 싶었다. 나는 한밤중 케일이나 비트, 당근이나 오이가 미친 듯이 먹고 싶어 냉장고를 뒤지거나 마트로 달려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라면, 피자, 치킨, 떡볶이가 먹고 싶어서 한밤중에도 졸린 눈을 비비며 칼로리와 나트륨 덩어리를 입 안에 욱여넣고 말았다. 그리고 소화불량으로 며칠을 고생하기도... 참 희한하지...

아침에 잠을 더 자고 싶지 않다거나 벌떡 일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정신이 깼음에도 불구하고 알람이 울릴 때까지 눈감고 누워 있다가 알람이 울리면 오분만 더 자기 위해 자고 또 자기를 반복하기도 했었다.


새벽 기상을 해내고 있는 와중에도 어떤 위대한 자기 계발 베스트셀러 작가들처럼 새벽에 할 일들이 설레어 일찍 잠들고, 새벽에는 용수철처럼 벌떡 일어났다든가 하는 것은 아직 나에게 없었다. 애석하게도... 모두에게 그런 희망적인 경우는 없더라...

하지만, 나는 안다. 그런 날이 올 것이란 걸...

이제 시작이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내일로 미루고 남은 2021년의 남은 11개월을 살아내면 되겠지. 오늘도 새벽 시간을 얻기 위해 나는 내일을 준비한다.


* 독자님들, 구정 설 잘 보내시고, 감기 조심하세요!!!

참조:

National Human Genome Research Institute: Epigenomics fact sheet

Moodymonth: Serotonin - the happy neuro chemic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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